배우자이신 이도윤 님이 생일 선물로 뭐 받고 싶어?라고 하길래 절에 가고 싶다고 했다.
늘 그렇듯 입에 넣고
사탕 굴리듯 굴려보는 단어.
절.
모태 신앙이 절이라 그런가 딱히 절에 대한 불심이 깊지도 않으면서 절이 좋은 나. 그렇다고 불자라고 말하기엔 애매한 위치. 부처님께 딱히 빌고 픈 소원은 없지만 굳이 빌어야 한다면 세상 모든 이들의 안녕? 정도 랄까. 부처님만 보면 자동반사처럼 세 번의 절을 하고 미련 없이 떠난다.
도장 깨기도 아니고 원.
지난주엔 생일 전야제로 허 황옥 황후가 어머니를 그리며 창건했다는 김해 '모은암(母恩庵)'을 다녀왔고, 생일날엔 승려 조일현이 창건한 국내의 유일한 마애불군 사찰인 부산 병풍암 '석불사 (屛風巖 石佛寺)'을 다녀왔다.
은행나무 사진을 찍은 곳의 좌표는 알 수 없다. 김해 모은암을 가던 길에 우연히 발견한 곳인데 생일 전야제라 배우자님께서 특별히 차를 세워 주셨다. 내가 사진을 찍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며 배우자와 아이는 기다린다. 하지만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나 역시 그들을 기다리는 입장이니까.
그들이 나를
가끔 기다리는 것이
무엇이 그리 대수란 말인가.
처음 가보는 길은 모두를 긴장하게 한다. 특히나 길이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할 땐 더 그렇다. 김해 '모은암(母恩庵)' 주차장 아래에 주차를 해 두고 경사진 길을 오른다. 경사진 길을 오를 땐 몸이 저절로 앞으로 숙여진다. 내가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경사진 이 길 앞에선 누구나 고개를 빳빳이 들고 걷지 못할 터였다.
길을 오르다 보면 모은사 주차장이 나온다. 나비 한 마리가 날아다니다 차에 앉았다. 정비가 잘된 돌계단을 하나씩 밟고 오른다. 조금씩 아래로 지는 햇빛에 가을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선다. 가을의 그림자는 여름의 그림자와는 다르게 노란빛이 돈다. 그리고 옅다.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처럼.
숨소리가 거칠어질 때쯤 산 꼭대기에 가까운 절이 모습을 드러냈다. 탁 틔인 풍경은 덤으로. 나의 인생이 절을 오르는 메인코스라면 나의 인생에 덤은 무엇일까. 끝도 없이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하루하루 주어진 이 시간이 내 인생에 덤이라면 얼른 써 버려야지.
사람들은
오늘의 유통기한이
24시간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하루의 소비기한은 1초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김해 '모은암(母恩庵)'의 검은 바탕에 그려진 탱화가 굉장히 장엄한 느낌이 났다. 다녀본 곳들은 부처님을 굉장히 크게 표현해 두었는데 불상이 작은 것이 너무 귀여워 쓰다듬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우리 모두 각자의 마음으로 부처님 앞에 엎드렸다.
물이 담긴 곳에 산이 담긴다. 내가 담을 수 있는 만큼 가득 담는 일은 최선을 다하는 것과 같다. 깊고 큰 호수가 산을 온전히 담는 것과 작은 그릇이 산의 끝자락만 담는 것이 어찌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불심이 아닐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보여줘서 무엇하며, 내가 담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담으려 하면 결국 넘쳐흐를 뿐인 것들. 넘쳐흐를 까 걱정하고 사느니 나는 내가 가진 그릇에 적당히 담아 살고 싶다. 누군가가 모자라면 선뜻 내어 줄 수 있는 정도만 더 채워서 살고 싶다.
절에서 내려와 지는 해를 바라본다. 눈울 감고 붉은빛을 한가득 나에게 채워본다. 그리고 깊은 숨을 들이쉰다. 그리고는 매 순간이 소비기한처럼 허겁지겁 셔터를 눌러 배를 채워본다. 하지만 이 허기짐은 채워지지 않았다. 이 허기짐이 어디에서 오는 허기짐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알고 있기에 더없이 슬퍼졌다.
다음 날, 주차장에서 오르막으로만 700m_ 내 생일을 볼모 삼아 가족들을 데리고 또 산을 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산에 있는 절에 가는 길이었지만, 내 육체를 이렇게까지 고달프게 하는 일은 어쩌면 부처님 앞에서 큰 번뇌 없이 마주 서기 위함은 아닐까.
가족의 힘들어를 한 귀로 듣고 흘리며 오르고 또 오르다 보면 부산 병풍암 석불암이 나온다. ‘석불사(石佛寺)’와의 첫 만남은 그저 부처님이 모든 것을 굽어 살피실 만한 자리에 앉아 계시다 정도의 인상이었다. 그런데 본당 옆길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보니, 내가 알고 있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초록창에서는 석불사를 <조용선 선사에 의해 1930년에 창건. 마애불상군(石佛寺磨崖佛像群)은 대웅전과 칠성각 위쪽으로 약 20m와 40m 높이의 자연 암석에 스물아홉 구의 불상이 새겨져 있다.> 설명하고 있었다. 그 설명을 읽을 때는 ‘아, 그렇구나’ 하고 넘겼는데, 막상 눈앞에서 마주하고 보니 나는 규모를 제대로 가늠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면 상단에 자리한 불상은 십일면관음보살 입상으로, 오른쪽 어깨를 살짝 걸친 변형 편단우견의 형식으로 입었으며, 오른손은 선정인(禪定印)을 하고 왼쪽 팔꿈치를 허벅지에 대고 어깨 높이까지 왼손을 올려 보주를 손바닥 위에 두고 있다. 그 형식과 양식적 특징이 경주 석굴암 석굴(慶州石窟庵石窟)의 십일면관음보살상을 계승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불상 오른쪽 암벽 불상은 앞쪽으로부터 남방 증장천왕(南方增長天王), 동방 지국천왕(東方持國天王), 약사불 입상이 조각되어 있다.(tmi : 나는 약사불을 좋아한다.) 남방 증장천왕은 검, 동방 지국천왕은 비파, 약사불 입상은 약합을 지물로 가졌기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불상 왼쪽 암벽 초입의 불상들은 앞쪽부터 차례로 서방 광목천왕(西方廣目天王), 북방 다문천왕(北方多聞天王), 비로자나불 입상이다. 서방 광목천왕은 용과 여의주 혹은 뱀과 여의주를, 북방 다문천왕은 탑과 깃발을 지물로 들고 있다. 또한 석불사 마애불상군의 사천왕상 중에서, 서방 광목천왕만 유일하게 의좌(依坐)하고 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고 있자니 압도되는 기분이 들었다.
관음보살상 옆으로는 가파른 계단이 있다. 계단을 본 순간, 머릿속에서는 즉시 위험 신호가 울렸다. 여기서 발을 헛디디면 구른다. 구르면 디진다. 기필코 목뼈가 부러져도 부러지고, 다른 곳도 최소 하나 둘은 부러질 거다… 같은 생각이 연달아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한 계단, 또 한 계단 조심스레 올라서면 어느 순간 관음보살님의 눈높이에 설 수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관음보살님이 바라보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높은 곳에서 어리석은 중생들을 바라보며 관음보살님은 어떤 마음일까. 조금 더 있고 싶었지만, 옆에서 배우자와 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아, 나는 혼자가 아니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접고 다시 위로 올라갔다.
두번째 쉬는 포인트로 올라와 위를 바라보니 노랗게 익은 사람주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하필이면 자리 잡아도 이 곳에 사람주나무라니. 번뇌로 가득한 이름이로세. 그러다 문득 관음보살님도 혼자이니 중생을 살필 수 있는 것이지, 만약 가족이 있었다면 중생이고 뭐고 “나부터 살려주세요!” 하고 외치지 않았을까?
그 생각에 미치니,
피식.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아래로 내려와 다시 한 번 아찔한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여기 선 우리 모두가 잘 구경하고, 무사히, 안전히 내려올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성공이 행복이라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아마 이런 때가 아닐까. 크나 큰 성취만이 성공이 아니라, 오늘 마음먹은 일을 무사히 마무리한 것 또한 성공이라 말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초역 부처의 말』p.239
모든 것은 매 순간 시시각각 무너지고 조금씩 소멸해갑니다. 따라서 당신은 찰나도 헛되이 보내지 말며 게으름도 피우지 말고 정진하세요. 이것이 곧 죽어갈 내가 당신에게 스승으로서 남기는 마지막 유언입니다.
— 장부경전 『대반열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