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석산(꽃무릇)의 찰나

사사로운 이야기 16

by Jin

* 국립생물자원관의 생물기록에 따르면, 꽃무릇의 정식 명칭은 '석산(Lycoris radiata (L'Hér.) Herb.)'입니다. 분류체계는 Plantae > Magnoliophyta (피자식물문) > Liliopsida (백합강) > Liliidae (백합아강) > Liliales (백합목) > Amaryllidaceae (수선화과) > Lycoris (상사화속) > radiata (석산)입니다. 우리나라 거의 전역에서 식재하거나 야생화하여 자라며, 중국, 일본 등에 분포합니다. 한국산 상사화 속 식물들과는 달리 잎이 9월에 나와 봄이 되면 없어지며, 수술이 화피편보다 2배 이상 길어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관상용으로 심으며, 독성이 있는 비늘줄기는 삶아서 식용이 가능합니다. 꽃무릇, 가을가재무릇이라고 부릅니다.







운이 좋았다.라고 말 할 수밖에 없었던 메밀꽃밭을 찾은 날. 메밀꽃밭은 나에게 다양한 풍경을 보여주었다. 그 풍경들을 바라보며 행복이 느껴졌다. 웅웅 거리는 수많은 생의 소리를 어디에서 들을 수 있을까. 그러던 도중 서로를 붙들고 흔들리는 하얀 포말 꽃물결 사이 새빨간 석산 몇 줄기가 눈에 들어왔다.



Photo by Jin / 통도사



석산은 구석진 곳에 피어 잡초와 뒤섞인 채 방치되어 있었다. 화려하게 군락을 이룬 석산도 좋았지만 처음보는 풍경인 흰 메밀꽃밭 한 구석에 조용히 자리 잡은 석산도 좋았다. 새하얗고 흰 포말 속에 슬며시 스며든 이 토록 붉디붉은 석산이라니. 마음이 두근거렸다.


새하얀 무명천에

스며든 붉은 피같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누군가의 슬픔이 비정하게, 비통하게 토해져 나온 것 같은 모습에 나는 고민 없이 셔터를 눌렀다. 석산을 바라보며 이런 감정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석산 군락지를 보며 강렬한 생명력 같은 것들을 느낀 적은 있지만, 단 한 번도 ‘비정하다’, ‘비통하다’는 단어를 떠올린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은 유난히 그렇게 느껴졌다.



Photo by Jin / 통도사



날이 흐려서 그랬을까?

슬픔이 진득하게 밴 풍경

넋을 잃고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Photo by Jin



예전에 상사화와 석산(꽃무릇)을 개망초와 계란꽃처럼 한 식물이 다양한 이름과 별명을 가진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둘 다 수선화과(Amaryllidaceae)에 속하고 꽃과 잎이 만날 수 없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그러나 상사화는 잎이 진 뒤에 꽃이 피고, 석산은 꽃이 진 뒤에 잎이 돋는다. 는 점에서 상사화와 꽃무릇은 서로 다른 종의 식물이었다. 무엇보다 상사화는 우리나라의 고유종이며, 석산이라 불리는 꽃무릇은 중국에서 관상용으로 들여온 원예식물이라는 점에서 놀랐었다.



Photo by Jin / 통도사



석산(石蒜)은 말 그대로 돌과 마늘이라는 뜻이다. 돌이 많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비늘줄기가 마늘과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꽃무릇이란 별명으로 불리게 된 연유는 생각보다 심플했다. 실제 ‘무릇’과는 다른 식물이지만, 꽃대만 자란 후 꽃을 피운다는 것이 비슷해 ‘꽃이 화려한 무릇’이라는 뜻으로 꽃무릇으로 부른다고 했다.


국립생물자원관에는 등록되어 있지 않지만 또 다른 별명으로는 피안화(彼岸花)라고도 불린다. 피안은 일본식 이름을 그대로 직역한 것으로 ‘가을의 피안(가을에 찾아오는 어떤 경계의 시점, 이쪽과 저쪽의 사이, 생과 사·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때)’ 무렵에 핀다고 해서 붙여진 뜻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Photo by Jin / 통도사



또한, 불교적인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는 석산의 생육 환경과 활용 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였다. 옛사람들이 독성이 있는 석산을 경작지를 보호하는 데 보호할 목적으로 묘지, 제방, 사찰 주변에 석산을 심었다고 전해진다.


특히, 사찰에서는 터를 지키는 용도뿐만 아니라 석산의 뿌리에는 방부 성분이 있어 이를 갈아 만든 풀로 불경을 묶거나 탱화(불교 신앙을 그린 그림)를 붙이고, 고승들의 진영(불교 종파의 조사나 고승을 그린 그림)을 부착하는 데에도 사용했다고 한다.


Photo by Jin / 통도사 암자에서



이런 실용적 쓰임새와 더불어 꽃과 잎이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특성 덕분에 석산은 자연스럽게 ‘저편의 꽃’, ‘죽음의 경계의 꽃’이라는 뜻으로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하거나 떠나는 이를 배웅하는 인식과 상징이 덧입혀지며 불교적 의미가 자리 잡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Photo by Jin / 통도사 암자에서



석산에 가까이 다가서니 향이 없는 꽃인데도 왠지 코끝에서 비릿한 냄새가 피어오를 것만 같았다. 짙은 향 냄새로도 숨겨지지 않는. 커다란 범종의 울림에도 숨겨지지 않는 비통한 울음이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석산의 붉음이 비통하게 울부짖는 듯 느껴졌던 건, 아무래도 최근에 읽은 책의 영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눈을 감았다. 마음이 일렁일 때마다 이를 가라앉히기 위해 해오는 나의 습관 같은 행동이었다.



Photo by Jin / 부산 백양 운수사



2025년의 석산을 담은 사진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을 것 같았다. 행복한 마음으로 셔터를 누르든, 그렇지 않은 마음으로 누르든, 내 감정을 사진으로 차곡차곡 정리하는 일은 오래된 나의 습관이자 삶을 정돈하는 방식이었다. 말로는 다 풀어낼 수 없는 감정을 사진 속에 토해내는 이 작업은 내게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되어준다.






높은 벼랑 끝에 서서
발끝 아래를 내려다보면,

까마득한 지면이 다음 발걸음을

받아줄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를 떠올렸다.


바람에 나부끼는 나를 위해

묵묵히 운전해

나의 찰나를 채워주는 그를.


나를 기다릴

그를 떠올리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 사이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어이 찾아낸다.


나비다.

물고기네?

예쁘다.


나는 미련 없이

벼랑 끝에서

두 걸음 물러난다.


살아야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