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사랑이든, 동경이든 그 둘의 경계 어디쯤이든.

Episode 2. 체념

by Jin

너는 나에게 다정했다. 나는 그 다정함에 필사적으로 매달렸고, 너는 묵인했다. 그냥 싫다는 한마디면 되었을 텐데.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네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너는 나와 만나는 동안 사소한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였고, 성의 있게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수많은 대화와 질문 속에서 정작 내가 가장 궁금했던 건 단 한 가지였다.


‘왜 네 곁에서 내가 계속 맴돌게 놔두었을까.’


무단 도용 금지


너는 그 이유를 한 번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까만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 모퉁이에서 너는 왜 나에게 입을 맞췄을까. 좋았던 건지, 나빴던 건지. 시간이 지나버려 이제는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로에게 기대어 안겼다. 태풍 전야 같은 고요함. 너와 나의 숨소리 외엔 세상이 멈춘 것만 같았다.


그 순간만큼은 네가 나를 온전히 안아주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착각이 아니었을지도. 따뜻한 온기에 오히려 더 정신이 선명해졌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도는 우리의 관계. 가까이 다가갔다고 생각하면 더 멀어지는 거리감, 아무리 애를 써도 넘을 수 없는 선이 너와 나 사이에 존재했다. 나는 왜인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 내가 너와 가까워지길 원했던 건 이런 물리적인 거리가 아닌, 마음의 거리였는데… 나를 부르는 너의 목소리가 나를 일깨웠다.


“더는 안 될 것 같아.”


너는 입술 끝에 힘을 주며 말했다. ‘더는 안 될 것 같아.’라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함께한 시간이 쌓일수록, 아무것도 바라지 않겠다던 나는 결국 너에게 바라는 것이 생겨버렸다. 아마도 너는 그걸 알아차렸겠지. 누구보다 사람의 감정에 기민했던 너였으니까. 그것까지 해줄 수 없다고, 나에게 선언하는 것과 같았다. 처음부터 예정된 결말이었다. 나의 사소한 물음까지도 진심을 담아 대해주었던 너여서 나는 순순히 물러났다. 너의 성격에 오랜 시간 고민했겠지.

너는 결국 사막의 신기루처럼 내 손에 닿지 않았다. 신기루를 향해 손을 뻗는 일이 본질적으로 무의미한 것처럼, 나는 결국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허락된 것은 물리적 거리, 거기까지라는 걸. 그 물리적 거리도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는 것이었음을. 너에게 내 마음만큼을 바라는 것은 무례한 일이었고, 내 욕심이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너는 나에게 최선을 다했다. 내가 널 욕심을 내지 않았다 한들 얼마나 너의 옆에 있을 수 있었을까.


오랜 시간이 지난 타임캡슐 같은 외장하드가 쏘아 올린 공으로 인해 이 글을 쓰며, 나는 너에게 다 갚지 못할 빚을 졌음을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너를 만났던 그 시기에 마음 둘 곳 없는 집보다‘이서씨’라고 다정하게 불러주는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따뜻하게 잡아주던 손이 좋아서, 몇 시간을 기다린대도 너의 학교 앞 자그마한 카페가 나는 마음이 편했다. 기다리면 너를 볼 수 있고,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줄 테니까. 나의 수다스러운 말에도 슬쩍 웃어 주던 너를 버팀목 삼아 나의 힘들었던 시간을 버텼다.


너라는 사람은 내가 어떤 사람이라 소문이 나더라도 네가 보고 판단한 것 외엔 나를 향한 태도가 변하지 않을 사람이란 걸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 같았다. 너를 바라보며 나의 부족함을 알았고, 너를 쫓으며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그려나갔다. 그때 어떤 심정으로 나를 받아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너는 단 한 순간도 나를 가벼운 시선으로 바라본 적 없었다. 함께 보낸 모든 시간에 진심을 담아 마주해 주었다. 그런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나는 살고 싶었다. 삶에 의지가 없던 나에게 너는 새로운 삶을 안겨주었다. 너는 내 이상이었고, 온 마음을 다해 지키고 싶던 세계였다.


그게 사랑이든,

동경이든 그 둘의 경계 어디쯤이든.

너는 나의 구원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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