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4. 영원한 것들이 어디 있던가.
‘너’라는 그 봄날의 수선화
수선화는 땅 가까이에서 피고, 줄기는 곧고 단정했다. 꽃은 한 방향을 응시하지만, 그 시선의 끝이 어디인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해를 향한 동경이라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모습 같다고도 했다. 너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세상 어딘가를 바라보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스스로 더 깊이 들여다보고 있는, 너는 나와는 다른 의미에서 봄날의 조용하고 고요한 수선화였다.
나는 그런 너에게 햇빛이 되고 싶었다. 너를 비추고, 너의 하루에 작은 온기를 보태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햇빛이 되면 너에게 조금은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햇빛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니까. 그러나 봄날의 수선화로서의 너는 다른 꽃들처럼 햇빛을 향해 정면으로 서지 않았다. 조금 비켜선 곳, 자기 자신만의 방향으로 고개를 틀어 스스로 서 있었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주저하지 않고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서는 사람이었다. 조용하지만 단단했고, 부드럽지만 쉽사리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이 너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왜인지 너는 나를 곁에 두면서도, 결코 네 안으로 초대하지 않았다. 선을 그었다. 그 선은 분명 보이지 않는 것이었지만, 다가가려고 할 때마다 희미하게 느껴졌다. 너는 원치 않은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너는 내게 다가올 만큼만 다가왔고, 조금 가까워지려 하면 조용히 멀어짐을 반복하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너는 나에게 꽃샘추위 같은 가혹함이었다. 어쩌면 너는 자연스럽게 너의 방식대로 살았을 뿐인데, 나는 이 거리감을 두고 혼자서 애가 탔다. 가까운 듯하지만 닿을 수 없는 네가 정해준 그 경계선 밖에 서서, 스스로 햇빛이라 여기며 너를 볼 수 있는 것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너는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봄날의 햇살이었다. 그리고 담담하게 고개를 들어 자신만의 길을 바라보는 수선화였다.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지키며 피어나는 꽃. 나는 너의 곁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무엇을 견디며 피어나는지, 어떻게 자신을 지키며 서 있는지를,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시간이 오면 담담히 고개를 숙이고 자연스럽게 다음을 맞이하는 것.
영원한 것들이 어디 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