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도록 차가운 봄날의 벚꽃

Episode 5. 벚꽃이 떨어진 자리에

by Jin

< 기억이나 할까 모르겠지만, 바닥에 떨어진 벚꽃잎들이 휘몰아치는 바람에 날아오르는 걸 보고 나는 너에게 벚꽃이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때 너는 뭐라고 했었더라. 그때는 너의 말 한마디가 마음에 사무쳤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었다. 영원한 것들이 어디 있을까.>




무단 사용 금지


그해 여름, 아버지는 위암 4기 진단을 받았다. 그 시절 위암 4기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지금처럼 치료법이 발전하지도 않았고, 수술 기술이 좋았던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점점 예민해지셨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날카로워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암 덩어리가 자리 잡은 위를 잘라내려 수술을 시도했지만, 아버지는 너무 젊었고 암세포도 그만큼 젊어 이미 몸 전체에 퍼져있었다.


의사는 결국 수술을 포기했다. 아버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식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어떤 날은 밥상을 엎었고, 또 어떤 날은 잠든 우리를 흔들어 깨웠다. 매일 아버지의 기분을 살피며 가족들은 하루를 보냈다. 그때 세상은 마치 내가 무너지길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에게 종교가 있었다면, 매일 기도라도 했을 텐데. 나는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다.


내 마음만 헤아리느라 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차마 먼저 너에게 안부를 묻지도, 찾아갈 수 없었다. 가끔 네가 나에게 먼저 안부를 물어올 때도, 나는 그저 짧은 답장만 보냈다. 하지만 너를 돌아설 용기가 없어 그저 시간에 나를 버려뒀다. 그 시간은 유난히 길고, 더디게 흘러갔다. 가을이 지나고 길고 긴 겨울이 시작되었다. 그 사이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하셨고 가족이 돌아가며 간호했다. 아무리 더뎌도 시간은 흐른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유난히 벚나무가 많았다. 산에서 부는 차가운 바람이 잦아들며 벚나무마다 작은 망울이 맺혔다. 조금 더, 조금만 더. 햇빛이 따스하게 머무는 순간을 기다리며 잔뜩 웅크렸던 몸을 천천히 풀어내고, 마침내 툭, 투둑. 팝콘 터지듯이 하나, 둘 연분홍빛으로 세상을 채우기 시작할 때. 아버지는 우리와 작별했다.


6개월.

위암 선고를 받은 지 꼭 6개월 만이었다.


아버지의 부고는 빠르게 친구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친구들 몇 명 외에는 몰랐던 일이었다. 왜 말하지 않았느냐고, 왜 이런 걸 혼자 겪게 하냐고, 혼이 났다. 부리나케 달려온 친구들에게 걱정과 미안함을 가득 담긴 말들을 들으니. 이들을 걱정시키기 싫었다. 나는 기쁘다, 슬프다.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봐서 감정을 갈무리하는 법을 잘 몰랐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그래서 너를 떠올렸다.


너는 가끔 대답하기 어려울 때,

어떻게 했더라.

이 상황에도 네가 생각났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었다. 찰나의 고민을 끝낸 나는 친구들에게 너를 보며 배운 대로 더듬더듬 어설프게, 입술 끝을 살짝 올려 웃었다. ‘아니, 그냥 더 사실 줄 알았지, 뭐.’하고 애써 감정을 숨겼다. 울 수 없었다. 지금 내 감정을 꺼내는 건, 시한폭탄의 타이머를 맞추고 스스로 자폭하는 것과 같았다. 울다 혼절을 반복하는 엄마, 죽음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는 내 어린 동생들. 이미 조각조각 금이 간 내가 완전히 산산조각 나버릴 것만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밀어내던 그날. 나를 안아주던 너의 온기를 떠올리며 나는 버텼다. 버텨서, 너를 만나고 싶었다. 발인하는 아침. 아버지의 마지막을 보았다. 아버지는 편안해 보였다. 홀가분해 보였다. 더 이상 아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고통의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이승이 더 낫진 않을 테니까.


화장터에서 아버지는 오랫동안 불타올랐다. 젊은 사람이라 암에 걸린 부분을 제외하고는 튼튼해서 잘 타지 않는 것 같다는 사람들의 말을 엿들었다. 엄마는 무너져 내렸고, 나는 무너지는 엄마를 받았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날에 아버지는 그렇게 자신의 첫사랑을 두고 멀고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때 아빠의 나이가 40대 초반이었다.


아무리 슬퍼도, 아무리 괴로워도

시간은 흘러간다. 내 삶은 내 고통에

동조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자신이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장례를 마치고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학교에서 가장 큰 벚나무는 과 건물 가까이에 있었고, 오랜만에 학교에 간 나는 그 벚나무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화려하게 핀 벚꽃 사이로 스며든 햇빛이 윤슬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일렁이는 푸른 윤슬을 보고 있으니, 눈이 부시게 빛나는 네가 보고 싶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너는 늘 그렇듯 나를 만나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후우- 잠시 숨을 고르고,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내 이분법처럼 구분된 연락처 속에서 너를 찾았다.


가족_

고등학교_

대학_

병원_

‘너’

중학교_

초등학교_

친구_

너는 그 자체로 너였기에,

다른 이들처럼 따로 범주를

지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너에게, 이 불쌍한 나를.

한 번만 봐달라고 애원할 셈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