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7. 벚꽃이 떨어진 자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젠 나는 너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아주 잠깐이라도 네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네 심장 소리를 듣고 싶었다. 너의 심장이 어떤 속도로 뛰는지 알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나를 네 곁에 두는 이유를, 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와 어머니는 정신을 추스를 새도 없이 이곳저곳을 뛰어다녀야 했다. 사람 하나가 세상을 떠난다고 해서 저절로 정리되는 건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아버지의 사망 신고를 위해 동사무소로 향하는 길, 나는 어머니 옆에서 떨어져 걸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앞서 걷는 어머니의 어깨가 유난히 작아 보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내내 아버지의 식구들을 뒷바라지하며 살았다. 어머니의 시가 식구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결국 두 분이 오롯이 함께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어머니는 시가 식구들을 챙기느라 나는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품이 아닌 이모할머니 댁에서 3살 때부터 3년이란 시간을 살았다. 금요일 저녁이면 어머니가 나를 데리러 왔다가, 일요일 저녁이면 다시 보내는 생활이 반복됐다.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이모할머니 댁의 맨션 창문에 걸터앉아 하염없이 부모를 기다리며 내가 본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자식까지 남의 손에 맡겨가며 힘겹게 살아온 아버지의 형제들은, 결국 우리를 외면했다. 어느 날 아버지의 형제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왔을 때,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왜 아빠한테 한 번도 오지 않았어요?. 그러자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살다 보니 바빠서 그렇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안에서 무언가 확 끊어졌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욕이 목구멍 아래까지 치밀어 올라와 참기가 힘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내 안에 깊고 근본적인 의문이 생겼다. 그래, 각자의 삶이 중요하지. 그럼, 예전의 어린 내 삶은? 우리 가족의 삶은? 그들의 삶은 소중하고, 우리는 어떻게 살던 괜찮았던 걸까. 사람들이 쉽게 내뱉는 말 중에, 딸은 어머니의 인생을 닮는다. 는 말이 예전에도 싫었지만, 더 싫어졌다. 어머니의 희생이 가득 담긴 삶을 닮고 싶지 않았다.
그대로 이어져 산다는 것.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도 모를 터였다.
나 하나 지키는 데만 집중하며
이기적으로 살기로 했다.
어쩌면 사소하지만
분명한 내 삶의 방향을 바꾼 계기였다.
나의 어린 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직업상 1년에 몇 번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셨고, 겨울에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연탄불이 들어오는 따뜻한 아랫목은 자식과 고모, 삼촌에게 내주었다. 부모님은 연탄불도 들어오지 않는 윗방 냉골에서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주무셨다. 그 후에 지금의 본가로 이사하고 고모와 삼촌은 가정을 이루어 나갔지만, 또 다시 아픈 시부모의 수발. 큰 조카들의 밥 수발. 자식을 키우며 어머니는 자신의 시간을 다 보냈다.
어느 하나도 나의 어머니에게 고마워하지 않았다. 으레 자식들이 다 그렇듯, 나 역시 어머니에게 고마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 시절 어머니가 문득문득 하는 말이 싫었다. 나는 너희들 버리지 않고, 밥 먹이고 재우는 것으로 부모의 도리를 다했다.라는 말.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나는 어머니의 그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고된 삶 속에서 어머니는 자신의 의무를 버리지 않았다는 걸. 세상에 나와보니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기엔 녹록지 않았고, 버거웠다.
삶의 순간순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올랐다. 어머니는 그 고생 끝에는 아버지와 행복한 시간을 기대했을 텐데. 이제, 아버지는 없고 어머니 혼자 긴 길을 걸어가야 했다. 집에서 동사무소까지 그리 짧은 길이 아니었는데, 너무 짧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겁이 나 물어보지 못했다. 이제 아버지는 서류 한 장으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될 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시절 그렇듯 원해서 사별을 한 것도 아닌데, 남편을 먼저 잡아먹은 과부가 된 어머니를 둘러싼 온갖 구설수가 들려왔다. 좋은 얼굴을 하고 있던 이웃들은 아버지의 부재가 생기자 서슴없이 본색을 드러냈다. 입에 담기조차 노골적인 말들, 차마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을까 싶은 지독한 말들. 너무도 악의적이었다. 과부 팔자가 되느니, 이혼한 여자가 더 낫다는 게 이런 거구나. 이혼한 여자는 드세다 욕하면서 건들지 않는 세상이었다.
그때 나는 ‘뼈를 씹어먹어도 성에 차지 않는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같은 공간에 숨을 쉬는 것조차 끔찍할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는 게 어떤 감정인지도 알았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못 들은 척, 모르는 척, 그렇게 묵묵히 견뎌냈다. 내가 아들이었으면, 내가 다 큰 성인 남자였더라도 이 미친 사람들이 그랬을까. 아무리 발버둥 쳐도 헤어나 올 수 없는 무기력함이 나를 짓눌렀다. 견딜 수 없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런 말들을 그냥 넘길 성격이 아니었다.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달달달달 떨렸던 그 느낌이 생생하다. 그리곤 악에 받쳐 소리를 질러댔다. 내 목소리가 어디까지 퍼질지 몰랐다. 멀리멀리 퍼져야 어머니를 건드리지 않을 텐데.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동네 한가운데 잘 버려진 식칼을 들고 죽여버리겠노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그때 내 나이 20대 초반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온실 속 화초처럼, 가장 이뻐야 할 때. 나는 그 동네 성격 있는 미친년이 되었다.
그날 이후, 동네 사람들은 드세고, 성격 있는. 나를 보며 ‘아비 없이 자란 티나 난다’라며 수군거렸다. 집 앞까지 나를 데려다주는 남자친구들이 동네를 드나들기 시작하자, 남자 그게 뭐라고. 동네에서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남자를 바꿔가며 만나는 발랑 까진 저 집 애. 흥. 알게 뭐람. 누가 들으면 아비 없이 자란 게 10년은 넘은 줄? 뼈 가루가 아직 다 식지도 않았겠다. 그들이 날 두고 무슨 말을 하든지 상관없었다. 보잘것없는 어린 내가 가족을 지키는 방법으로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화살을 나에게로 돌리는 것.
분명 상관없다. 생각했음에도,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내 안은 계속 썩어 들어갔다. 너에게 당장이라도 달려가 나를 살려달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네가 해줬으면 했던 일이었다. 나를 지켜달라고. 하지만 너에게는 부탁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고, 너는 몰랐으면 하는 일이었다. 나는 너에게 빛이 되고 싶지, 어둠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너에게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가 되고 싶지, 마구잡이로 바람에 날려 꽃이 볼품없이 떨어진 채 잎이 날 때까지 예쁘지 않은 벚나무가 되기 싫었다.
너와 나의 사이에 바람이 분다. 아주 가벼운 바람에도 벚꽃 잎은 흔들렸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꽃잎들은 가지를 떠났다. 처음에는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처럼 바람을 타고 허공을 가르며 솟구쳐 올랐다. 마치 그 순간만큼은 자유로워지고 싶은 것처럼. 하지만 오래지 않아, 꽃잎들은 땅으로 내려앉았다. 조용히. 아무런 소리도 없이 그렇게 온 세상이 벚꽃으로 가득 차는 순간, 벚꽃의 시간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