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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Mar 31. 2024

방 말고 집

리뷰 <방> 강화길


강화길의 등단작인 단편 <방>의 첫 문장은 이렇다.


우리는 이 도시에 함께 도착했다.


재인과 수연은 함께 살 수 있는 을 구하기 위해 이 도시에 왔다. 소설에는 언급되지 않은 원인으로 폭발된 도시이다. 도시를 재건하는 프로그램에 지원한 둘은 가난한 성소수자로 보인다. 그러니까 둘은 집도 아니고 방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이 도시에 온 것이다.  


재건 프로그램에 참여한 지 한 달 만에 두 사람의 몸 상태가 무너진다. 수연은 몸이 붇고 굳어버려 24시간을 서 있어야 하는 몸이 되고, 재인은 마실 수 없는 물을 마시는 바람에 몸이 갈라지는 통증을 견뎌야 한다.


재인은 세 배의 급여를 주겠다는 팀장에게 성폭력까지 당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수연이 ‘카페’를 차릴 자금까지 구하자고 하여 도시를 탈출할 날을 일주일 미루게 되었고, 둘의 미래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셀 수 없이 많은 뼈마디, 다리가 길거나 짧은 기형적인 몸들, 코가 없는 사람과 입이 없는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중략) 한데 엉킨 두 형체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사람의 형태였는데 아이처럼 작았다. 끌어안고 있는 두 사람. 나는 눈을 감았다.


그들은 둘이 살 수 있는 을 구하기 위해 단기간 위험을 감수하려고 했을 뿐이다. 오염과 악취와 더러움은 물론 죽음의 위협까지 견뎌냈는데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죽어감’이었다. 그들이 처리해야 할 무수한 기형의 시체들처럼.


수연은 그 자리에 여전히 서 있다. 나는 그 옆에 앉아 있기로 했다. 큰 컵에 수돗물을 한가득 따른다. 그녀의 다리에 몸을 기대고 앉는다. (중략) 나는 손으로 그녀의 다리를 토닥인다. 괜찮아. (중략) 갈라진 손가락이 뱀처럼 똬리를 튼다. 전구가 끊긴다. 어두워진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장 위험한 순간에 가장 혹독한 곳으로 내몰린다. 소리와 냄새, 공기, 먹을 것을 선택할 수 없다. 인스턴트 음식, 빛이 사라진 방, 매캐한 검은 연기, 자꾸만 피어나는 곰팡이, 횟가루가 나오는 수돗물을 감당해야 한다.

재인과 수연이 선택한 것처럼 위장됐지만, 그들에게 선택권은 전혀 없었다.


이 작품이 너무 처참하고 어두워서 재밌게 읽어보라고 추천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타인에 대한 연민의 마음자리 조금 내어주고 읽어보자고.(착한 소비 권하듯 정의로움만 요구하는 건 아니다. 이 소설이 만든 공간과 인물, 전개 모두 강렬하다. 십여 년 전 등단작인데도 잊지 못할 만큼.)

소설은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인가 묻는 일이고, 그 일을 잊지 말라고 경고하는 일이 아닐까.

 

강화길의 <방>이 실린 기억하는 소설(창비, 2021년)에는 '너무나 쉽게, 너무도 빨리 잊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들'이라는 문구와 함께 여덟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세월호 유가족 연대 활동을 하는 '별을 품은 사람들(별품사)'에서 4월의 토론서로 선정하여 이 소설집을 고 있다.

나 역시 잘 잊어버리는 인간이고, 무거운 책은 피하고 싶지만. 소모임 활동은 편안함에 익숙해지는 나의 뇌를 톡톡 친다.

'사람은 간사한 동물이라 잊어버린다고. 봐라, 또 무너진다.' - 『기억하는 소설』표지에 쓰인 문구

 









* 강화길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방>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당선될 당시 ‘주제를 장악하는 힘, 꾸밈없이, 흔들리지 않고 인물과 주제를 탐구해 나간 점에서 당선작으로 뽑는 데 오랜 논의가 필요치 않았다.’는 심사평을 들었다.

단편 「방」은 소설집 『괜찮은 사람』(문학동네, 2016.)에 실렸으며, 출판사는 이 작품에 대해 ‘유토피아를 꿈꾸기 위해 디스토피아를 견뎌야 하는 청년, 여성, 소수자의 모순된 삶을 그리고 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소설집 《괜찮은 사람》, 《화이트 호스》, 장편소설 《다른 사람》등이 있다. 한겨레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 작가상,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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