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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May 06. 2024

당찬 예비 법조인을 만나다

예비 법조인 민지 - 2024년 4월 11일



작년부터 여성 단체 <함께 크는 여성 울림>에서 두 달에 한 번씩 회원 인터뷰를 맡아오고 있다. 

4월 인물로 민지라는 예비 법조인을 만났다.


재작년 '씨네페미니즘'이라는 온라인 토론에서 민지를 처음 알게 되었다.

로스쿨에 다니 있던 민지는 지성과 정의감을 갖춘 93년생 청년이.

5개월 동안 격주로 이루어진 시한부 토론에서 예닐곱 번 만났다.


민지는 페미니즘에 막 발을 들여놓은 내게는 보이지도 않는 '문제의 장면'들을 콕콕 집어내곤 했다. 예컨대 너무나 익숙하 당연지만, 가부장제의 폭력성이 숨어 있는 장면들 따위를 말이다.

토론회가 끝날 때 똑똑하면서도 겸손한 민지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게 아쉬웠데.


몇 달 뒤 페미니즘 토론 모임 <IF>에서 민지를 다시 만났다. 엄마이자 브런치 작가인 김화숙이 진행하는 모임이었다.

민지는 4년 차 회원, 나는 새내기였다.

IF는 성별, 나이, 직업이 다양한 이들이 평어로 토론하는 모임이다. 평어 대화는 화숙의 제안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덕분에 민지와 나는 23년의 나이차를 넘어 평어로 대화하는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민지는 서울에서 아빠와 지내면서 로스쿨 공부 중이고 가끔 안산의 엄마에게 내려오기 때문에 만날 기회가 없었다.

똑똑한 사람 앞에서 주눅 드는 타입인 나는 팬심만 안은 채 언제 저 친구랑 대면할까 하는 해바라기의 마음이었다.


그러다 인터뷰를 하게 됐으니 기쁘고 설레서 떨리고, 질문을 어리석게 할까 봐 떨리고, 내향형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나의 외향형을 조절해야 할 텐데 하는 조심스러움 때문에 떨렸다.

온갖 마음을 품고 안산 한양대 캠퍼스에서 민지를 만났다.




민지 안녕? 자기소개 부탁해.

안녕? 나는 로스쿨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민지라고 해. 하고 싶은 일이 아주 많은 페미니스트 청년이고, MBTI는 INFJ야. (창창이 MBTI를 물어보았음. 창창은 ENFP)


함께크는여성울림에는 언제 가입했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2019년 전후였을 거야. 화숙이 울림 활동을 하고 있는 건 알았지만, 로스쿨 진학을 앞두고 공부를 해야 하니까 후원회원이라도 되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어.


민지 만날 생각에 며칠 전부터 많이 떨렸어. 엄청 만나고 싶었는데, 이제야 소원 성취하네. 인터뷰에 응해 줘서 고마워.

예전 같으면 소심한 성격이라 핑계를 대고 인터뷰를 피했을 거야. (웃음) 페미니즘이 나를 이곳에 나올 수 있도록 바꿔  거야. 이런저런 눈치 보지 않고 내 생각을 말하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게다가 창창이랑은 토론도 여러 차례 한 사이라서 마음먹기 쉬웠어.


민지는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어? 화숙 통해서 본 여러 사진에서 치마를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없었어. (민지는 검소하고 수수하게 하고 다녀서 더 마음에 드는 친구이다.)

바지를 즐겨 입어. 운동을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 틈만 나면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는데, 치마를 입으면 제대로 놀 수가 없잖아. 참고로 난 색깔도 분홍색을 좋아하지 않아. 사회에서 만난 이들이 '오빠'라고 불러달라 요구하는 것도 질색이고. 외모를 보고 평가하는 문화에도 거부감이 들어.

그렇다고 화장하는 사람들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냐. 나도 대학 때랑 공무원 시절엔 화장을 했거든. 꾸밈노동은 개인이 알아서 하면 된다고 생각해. 다만 난 별로 취미가 없고 거기에 시간을 할애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뿐이야.


'평생직장'으로 선택했다는 공무원에서 어떻게 법조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는지 들려줄래?
공무원 입사 첫해부터 퇴사를 생각했어. 내가 하나의 부품일 뿐이고 내가 하는 일에 전문성을 발휘할 수 없다는 한계가 절감됐어.

이과생처럼 기술이 있는 것도 아냐, 예술적으로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야, 여성으로서 내 경력이 중단되지 않고 전문인으로서 커리어를 쌓아갈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니 전문인이 되어야겠다는 결론을 얻었어.

마침 2019년 3월에 화숙이랑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를 봤어. 영화를 보고 나와서 화숙이 "이것이 네가 가야 할 길이다."하고 말했어.

로스쿨로 방향을 잡고 공부하자고 다짐했지.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무기는 법이다. 그래, 법조인이 되자.


그 영화는 어떤 내용이야?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타협하지 않는 여성 판사였어. 영화에는 그녀가 사회적 약자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사회의 부조리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나와.
 
https://youtu.be/xRdCeF6 oB7 M? si=8 hTW7 aS-OYt4 V-bX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 (RBG) 메인예고편



민지는 살고 싶은 법조인의 모습이 루스 베이더와 비슷하겠구나?
여성, 인권, 노동 등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어. 혹자는 돈이 안 되는 분야라고 하지만, 어떤 사안이냐,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수임료를 많이 받아내면 될 거라 생각해. 변호사로 5년 임기를 마치면 판사가 될 수 있어서 여성 판사로서도 일하고 싶어.
 
평소에 법을 모르고, 막연히 보수적이고 딱딱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민지는 어떤 점에 매력을 느꼈어?
법은 세상을 보는 아주 특별한 렌즈야. 법을 공부하니까 뉴스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 법은 사회 구성원을 통제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회를 확장하기 위해서 필요해. 차별금지법 등 새로이 생기는 법 조항들은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회가 될까 모색한 결과거든.

법을 어떻게 바라보고 적용하느냐가 무척 중요한데 여성의 언어로 해석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시험공부로도 벅차지만, 페미니즘 독서를 하고 토론에 빠지지 않으려는 이유야.
 

왼쪽 창창, 오른쪽 민지.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에서.


소심했다면서 IF 토론할 때(지금도) 말을 너무 잘하던데.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되었는지 궁금해.

어릴 적부터 대학 2학년 때까지는 소심이의 흑역사였. 얼굴과 목소리에 자신이 없기도 했고. 남자 목소리 같다고 어릴 적부터 놀림을 많이 받았거든. 덩치가 크다는 소리도 들었고.

3학년에 올라가 우연히 과 학생회장이 되었고, 그때부터 내 안에 숨어 있던 적극적인 에너지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던 것 같아.

졸업한 뒤 공무원 시험 공부하느라 여유가 없었는데, 2016년 '강남역 묻지 마 살인사건'이 현실에 순응해 가려던 나를 깨웠어. 나를 포함한 모든 여성이 묻지 마 살해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공포를 느꼈거든.

그즈음 간암 진단을 받은 화숙(엄마)이 가부장제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망가뜨렸다며, 페미니즘만이 자신을 살릴 수 있다고 판단했고, 그 길을 함께 가지 않을 거라면 이혼하자고 하덕에게 선언했어.

화숙을 살리긴 해야겠고 가족 모두 심리적으로 힘든 과정을 지났어. 어찌 보면 각자 삶의 조건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답을 찾은 셈이었어. 

하덕은 화숙이 진행하는 <이프>에 함께했고, 뒤에 나도 합류하면서 페미니즘 토론하고 실천하는 가족이 된 거지.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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