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주에 이어 93년생 예비 법조인인 '민지'라는 친구를 인터뷰한 내용 두 번째입니다.
누군가 인터뷰이가 되어 주신다면 기꺼이 달려가고 싶을 만큼 저는 '인터뷰'를 보는 것도 좋아하고 하는 것도 좋아한답니다. 인터뷰라는 형식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의 밀도가 굉장한 희열을 주거든요.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
민지 : 93년생, 로스쿨 졸업생으로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음.
화숙 : 민지의 엄마, 작가이자 페미니스트이자 세월호 연대 활동가.
하덕 : 민지의 아빠, 목사이자 페미니스트.
창창 : 나는 대학 때 여성학을 배운 적이 있지만 사회에 나와서 잊고 살았어. 화숙을 만나 페미니즘을 공부하게 되었고 민지와도 만났지. 주변 여성들이 '82년생 김지영'에는 동감하고 울며 봤다면서도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는 거부감이 든다는 소리를 많이 하거든. 민지에게는 페미니즘이 뭐야?
민지 : 페미니즘은 나의 삶과 연결된 모든 영역을 보는 방식을 확장하게 해 주었어. 여성에게 요구되는 화법과 행동들에 순응해야 한다는 데서 자유로워진 것도 큰 변화야. 대학 때까지 내 얼굴과 목소리에 자신이 없었던 게 사실이야. 그래서 성격도 소극적이고 소심했지. 그런데 이제는 나의 외모가 아닌 내가 지닌 가치관과 철학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고, 이젠 나의 모든 게 사랑스러워졌어.
창창 : 민지가 치마를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원래 안 입어? 화장도 거의 하지 않는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어?
민지 : 둘 다에 거부감이 있긴 해. 화장하는 이들을 이해 못하는 건 아냐. 꾸밈노동은 개인 의사에 맞게 하면 된다고 생각해. 다만 나는 거기에 시간을 할애하기 싫어서 안 하는 거야. 치마도 없어. 중고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좋아해서 틈만 나면 운동장으로 달려나갔는데, 치마를 입으면 제대로 놀 수가 없잖아.참고로 난 색깔도 분홍색을 좋아하지 않아. 사회에서 만난 이들이 오빠라고 불러달라 요구하는 것도 질색이고.
창창 : 민지에게도 큰 변화를 주었구나. 민지네 가족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어?
민지 : 화숙이 자연치식으로 바꾼 이후 우리 가족 모두 채식으로 바꾸었는데, 가스레인지를 사용할 일이 적은 채식 조리법이 생활을 심플하게 만들었어. 서울 목사관에서 지내는 하덕도 과일, 채소로만 밥을 차리니까 간편해서 좋다고 해. 채식으로 바꾸니 생태와 환경 문제에도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어.
친할머니가 3개월마다 오셔서 3개월 동안 지내다 삼촌네로 가시거든. 할머니 돌봄을 하덕이 전담하고 있어. 화숙은 작가이자 페미니스트, 세월호 연대 활동가로서의 삶에 충실하고, 나는 로스쿨 공부에 전념하는 예비 법조인으로서의 삶에 충실할 수 있게 된 것도 페미니즘 덕이라 할 수 있지.
창창 : 남성인 목사가 아내를 따라 페미니스트가 되겠다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민지 : 하덕은 사랑하는 이 사람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화숙이 이혼하자고 울부짖을 때 자기 손을 놓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대. 만약 화숙에 대한 신뢰가 쌓이지 않았다면 하덕이 그렇게까지 자신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무조건 아내를 따르겠다고 하진 않았을 것 같아.
두 사람이 서로를 믿는 마음이 깔려 있었기에 그 난관을 뚫고 함께 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십 년 동안 페미니스트로 걸어온 두 사람을 보며 나는 저런 사랑도 있구나 하고 사랑의 의미를 더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어. 일방이 희생하는 사랑이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사랑에 대해.
창창 : 민지 이야기를 들으니 나를 떠나야만 살 수 있다고 했던 그(전 남편)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그를 믿어주지 못했거든. 가끔 화숙을 좀 더 일찍 만나고 페미니즘을 일찍 알았더라면 나부터 건강하게 바뀌고 그 사람과도 당면 문제를 잘 풀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
민지는 느닷없이 울고 있는 나를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우리 사이에는 맥주잔이 놓여있었다.
민지가 나긋한 목소리로 나를 위로했는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창창도 애썼을 거야" 그런 의미의 말이었는데, 녹음을 꺼 놓았을 때이고 메모도 멈춘 때라서 담지 못했다.
창창 : 그동안 나는 화숙네 부부와 아이들이 부럽기만 했어. 다섯 식구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페미니즘이라는 길을 선택하기까지 가족 모두 부딪치고 싸우고 울었던 시간은 깡그리 없었다는 듯이 현재의 겉모습만 보았던 거지.
민지의 이야기를 들으니 화숙 커플이 생사를 걸고 그 길을 찾았다는 것과 두 사람의 신뢰가 단단했기에 낯설고 쉽지 않았을 새로운 사랑 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어. 나 엄청 부끄럽다.
민지 : 각자의 때가 있는 게 아닐까. 창창도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해 그런 일들을 겪는 게 필요했을지도 모르고.
창창 : 위로해 줘서 고마워. 그래도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네. (분위기를 바꿔 질문)
참, 로스쿨 학비가 엄청 비싸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준비했어?
민지 : 공무원 생활 3년 동안 번 돈과 장학금으로 해결했어. 올 1년 동안 더 공부해야 하는데 거기까진 가능할 것 같아. 어릴 때부터 검소하게 생활하는 게 몸에 배어서 직장 생활하며 돈을 쓸 일이 별로 없었고 꽤 많이 모았어. 나를 치장하는 데 쓰는 돈이 거의 들지 않으니까 모으는 게 자연스러웠어.
창창 : 지난번과 오늘에 이어 두 번이나 만나줘서 고마웠어. 난 즐거웠는데 민지도 그랬다면 좋겠네. 인터뷰 소감을 들려줄래.
민지 : 내 삶을 몇 시간씩이나 들어주고 물어봐 주어서 고마워. 나의 서른 해를 정리한 것 같아 특별한 경험이었어. 어디 가서 이런 얘기를 늘어놓겠어.속엣말들까지 편안하게 꺼낼 수 있도록 질문해 주는 능력이 아무에게나 있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창창이 잘하는 것 같아.(엄지척 하는 민지)
창창 : 민지가 칭찬해 주는 말 한 마디 듣겠다고 엄청난 빌드업을 한 셈이 되었네. (둘 다 웃음)
대학로에서. 채식 실천가 민지가 나를 배려해 새우튀김을 주문해 주었다.
두 번의 인터뷰(한양대와 대학로에서), 밀도 있는 일곱 시간 동안의 대화, 한 달 동안 글로 정리하기까지, 단편소설 한 편 이상을 쓴 것처럼 품이 들었다.
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것은,자신의 알을 깨고 성장하고 있으며건강한 철학을 지닌 MZ 세대 민지의 삶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향후 우리 사회의 여성, 노동, 인권 분야에서 '나는 반대한다'며 당찬 목소리를 낼 법조인이 될 사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