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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May 19. 2024

나의 치트키, 방귀 똥

어린이와 친구가 되는 창창비법


어린이와 쉽게 친구가 되는 나만의 비법이 있다.

방귀, 똥에 관한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하는 건 무조건이고, 실수하여 이미지가 추락한 이야기를 슬랩스틱 섞어 들려주면 강렬하게 꽂힐 수 있다.


간혹 자기는 더러운 걸 싫어한다며 점잖을 떠는 어린이도 있다. 그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듣고 싶은지 의향을 물은 뒤 그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 다. 그 아이도 결국 방귀와 똥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걸 털어놓게 되지만...


어린이 앞에 서면 나는 딴사람이 된다. 어느 상황에서든 잘 스며들고, 누구한테든 잘 맞춰준다는 뜻으로 내게 카멜레온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친구도 있다.

애초에 그런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걸까. 일종의 사회성으로 익힌 걸까.

오잼(가명, '오므라이스 잼잼'을 엄청 좋아함) 자매와 친해진 것도 나만의 방법이 주효했고, 우린 제법 친하다.


얼마 전 오잼네와 함께 여행을 했다. 오잼은 4학년, 사잼은 1학년 자매이다. 그들의 엄마인 '영영'은 나보다 아홉 살이 적은 예전 동료이자 20년 지기 친구이다. 나는 그녀의 결혼과 아이들의 출생을 모두 보아왔다.


오월 초에 세 모녀가 부여를 여행한다며 나를 초대했다. 내가 동행한다니까 두 아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런 말을 전해 듣는 내 기분이 한껏 흥분되었다.

그 애들은 사람을 무척 좋아하고 그 마음을 솔직히 드러내는 타입들이다. 그중에서도 나를 특별히 반가운 손님으로 맞이하는 까닭은 내가 방귀나 똥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기 때문이다. 똥침을 무수히 당해 주었고.


부여 가는 날, 영영이 D전철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를 차에 태웠다.

사잼이 머리를 앞으로 들이밀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모, 엉덩이춤 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요."

깔깔 웃는 사잼. 내가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잊어버리고 어리둥절해 하던 나는 영영의 웃음에서 뒤늦게 알아차렸다.


내가 들려준 이야기를 잊지 않고 있다가 몇 달 만에 만나서 이모의 치부를 들추어내는 사잼은 정말 영리한 장난꾸러기이다.

오잼은 언니답게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이모를 만나자마자 그런 말부터 하면 어떡하니?" 하면서도 웃었다. 이 녀석들.  


사잼이 알은체한 엉덩이춤 이야기는 고등학교 1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나의 흑역사를 말한다.

미션 고등학교인 성가 경연 대회에서 나는 지휘를 맡았다. 상의는 흰 티셔츠, 하의는 청치마를 입기로 했는데 청치마가 없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대체제를 잘 찾는 나는 사촌 언니의 실내복인 파란색 A라인 면치마를 입고 갔다. 그것이 얼마나 나풀거릴 줄도 모르고.  


대강당의 단상에 선 지휘자가 '영광 영광 할렐루야'를 지휘하며 두 팔을 휘저을 때마다 슬쩍슬쩍 속바지(실은 팬티였을 텐데...)가 보였나 보다. 지휘하던 내 뒤통수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노래를 멈출 수 없어 끝까지 열정적으로 지휘를 하였다.

노래가 끝나 뒤돌아 섰을 때 강당 안의 2천여 명이 코미디를 본 듯 박장대소하는 광경을 보면서도 얼떨떨했다. 이거 인기인가? 이 반응 뭐지?

 

그날의 얘기를 영영네 집에 놀러 갔다가 아이들을 재우고 둘이 맥주 한 잔 하며 들려주고 있었다. 방에서 자는 줄 알았던 아이들이 달려 나오더니 깔깔거리며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엉덩이춤 엉덩이춤 이모 엉덩이춤췄대."

내가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의 '제제'도 아니고...


그날 밤 오잼과 사잼은 잠들기 전까지 그날의 지휘 모습을 재연해 달라고 부탁하기를 반복했고, 나는 기꺼이 놀림을 받아주었다. 다시 해 보라 하면 다시 해 주었다. 애들은 재밌다고 생각하면 무한반복 하며 한껏 즐기는 존재이니까.   

실은 이 사건 이후 나는 극심한 우울감에 빠졌고 공황장애 비슷한 채로 고 1 내내 어두운 소녀로 보낸, 그야말로 흑역사였지만, 이날만큼은 기꺼이 어린 친구들의 우스운 존재가 되어 주었다.

부여 가는 길의 차 안은 그날의 엉덩이춤 이야기로, 우리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부여가 여행지인 이유는 그들 세 모녀가 박물관 견학을 좋아하기 때문이란다.

나는 야외에 있는 유적지는 좋아도 박물관은 별로인데, 그래도 어쩌랴. 그들이 여행의 주체, 나는 이틀 동안 게스트인걸.


오잼은 여행 중에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자꾸만 웃더니 "저는 창창 이모의 팬이에요."라며 엄지척을 해 주었다. 사잼도 "나도 나도" 하며 웃었다.

아, 이거 참.(자뻑으로 웃음) 전 연령대에서 두루두루 인기가 좋은 편인 나, 내 또래의 이성에게선 반응을 얻기 어렵지만 만족해야 할까. 

하여튼 우쭐했다. 이 친구들의 영원한 개그우먼이 되어 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부여 부소산성에서. 창창, 오잼, 사잼(엄마인 영영이 우리 뒤에서 촬영)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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