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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May 28. 2024

우리, 잘 먹고 잘 살자

부여에 간 네 여자 이야기




부여로 달려가는 동안 재잘거리는 오잼이와 사잼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였다.

세 모녀와 만나면 천하의 창창이 기가 빨리곤 하는데, 경차는 고 텐션의 네 여자를 태우고 잘도 달렸다.  

오잼사잼의 이야기를 듣긴 들었는데 흐릿한 걸 보니 정신이 혼미하긴 하였나 보다.


게다가 두 잼잼은 나와 제 엄마가 둘이 이야기 나누는 꼴을 못 본다. 만나서 시간이 지나 이모란 사람이 식상해질 때까지 아이들 말을 실컷 들어주려고 노력하나, 어떨 때는 이렇게 소리치고 싶어 진다.

"얘들아! 나는 너희 친구가 아니라 엄마 친구라고. 우리 둘이 얘기 좀 하게 두면 안 되겠니?"

내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어른들 사이에 끼어들던 아들에게 한 말이었다. 이런 경고성 멘트는 제 어미가 하는  나을 테니 여유롭게 웃으며 기다린다. 그러면서 에구, 너희들도 몇 년 있으면 중2병이 올 것이고, 그 다음엔 더 훨훨 날아가 버리겠지. 착 달라붙어 놀아달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


오잼과 사잼 엄마 '영영'은 부여에서 제법 좋은 리조트를 구하였다. 몇 해 전부터 영영은 휴가 기간에 좋은 숙소를 잡아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오고 있다. 세 모녀만의 특별한 추억을 만드는 귀한 시간이다.

외벌이라 퍽 검소하게 생활하는 영영이 이때만큼은 아낌없이 돈을 쓴다고 한다. 안전하고 안락하고 따스한 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작년에도 세 모녀의 포천 리조트 여행에 동행하였는데 덕분에 고급스러운 숙소에서 호강을 하였다.


영영과 창창이 딸들을 데리고 여행할 수 있는 것은 둘 다 싱글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니 덕분이다.

각자 남편과 헤어지기로 한 그해 겨울, 우리 둘은 새벽에 전화기를 붙들고 울고 있었다. 미취학 아동 둘을 홀로 키워야 할 어미인 영영과 한 번도 혼자 살아본 적이 없는 유리 같은 존재인 내가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하던 새벽, 우리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그때만 해도 부서질 것만 같던 존재인 우리가 지금은 얼마나 단단해졌는지.

영영과 나는 100일 글쓰기 시즌 3부터 시즌 9까지 함께 글을 써 왔다. 영영은 돈도 벌고 글도 쓰고 두 아이를 건강하게 먹이기 위해 진심으로 요리하고 틈나는 대로 자연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고 도서관에 책 읽으러 가는, 참 좋은 엄마이다.

이 년 전부터는 내가 소속된 여성단체의 회원으로 가입하여 우쿨렐레 소모임을 이끌고 있으며, 두 딸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페미니즘을 공부하겠다는 엄마이다.  


우리 글쓰기 밴드에서 영영네 일상 이야기는 다른 글벗들의(주로 언니들의) 추억을 돋게 하는 것은 물론 경외심이 들게 한다. 너무 멋진 엄마라서. 글벗 언니들은 영영네 세 모녀의 열렬한 팬이며, 두 딸은 우리 모두의 딸이 되었다.  


어느 날 내가 영영에게 장하다고 했더니 영영이 도리어 이렇게 말했다.

"언니, 나한테는 온기를 두 배로 나눠주는 아이들이 있어서 힘든 줄 몰라. 언니한테는 누가 체온을 줄까. 잘 견뎌내고 있는 언니가 더 대단해."

내가 그리워하는(아직까진) 그 남자를 스무 해 동안 보아서 너무 잘 아는 영영이 해 주는 말은 위로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우리 네 여자의 여행이 그래서 더 애틋하고, 이런 여행을 기획해 준 영영에게 고마웠다.

돈 많은 사람들 부럽지 않게 단 며칠만이라도 부린 사치 덕분에 고급 리조트에서 명랑한 두 딸과 안온하게 자고 먹고 놀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 주었으니. (내년엔 내가 거하게 쏠 수 있기를.)


박물관에 재미를 붙이지 못한 내가 마루에서 명상하고 있을 때 왼쪽엔 오잼이, 오른쪽엔 사잼이 책상다리를 하고 함께 명상을 했다. 십여 분 동안 동영상을 보며 간간이 명상하도록 안내 방송이 나와서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체험이었다.


디지털 쉼터 <백제를 실감하다>. 왼쪽 긴 마루가 있어 맞은편의 디지털화면을 보며 안내에 따라 명상을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국립부여박물관)


숙소에서는 트럼프 놀이를 했다. 아이들이 나를 그대로 두지 않을 게 뻔하니 두 아이를 위해 트럼프를 준비해 갔던 것은 신의 한 수 였다.

나는 우리 아들, 학원 아이들과 놀아본 경험이 쌓여 보드게임 자신다. 늘 1등을 한다는 게 아니라 웬만한 게임을 잘 설명할 수 있고 새 게임에 금세 적응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단순하지만 스릴 있 '도둑 잡기'와 초등 1학년에겐 어려울 수 있지만 사잼의 영특함을 믿어보기로 하고 '원카드'를 가르쳐 주었다.

두뇌명석한 녀석들은 금세 알아들었다. 한 녀석은 도둑 잡기로, 다른 녀석은 원카드로 나를 이겨먹었다. 분하다 분해, 일부러 성을 냈지만 난 게임 잘하는 아이들을 정말 좋아한다.


밤에 그냥 자기 아쉬워서 지하 게임숍에 내려가 따로 또 같이 놀았다.

영영은 오잼과 사잼과 나에게 동등하게 동전을 나눠주고 놀라고 하였다. 우린 아껴가며 꼭 놀고 싶은 놀이를 신중하게 골랐다.

영영은 나와 농구랑 볼링을 하며 한껏 쾌활하게 웃었다. 그러나 딸들처럼 나를 두 게임 모두에서 이겨버렸다.

승부사 세 모녀한테 모든 게임에서 패배한 창창!

설욕전을 도모하였으나 내가 이길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약이 올랐지만 우선은 자자. 자고 힘내자!


이튿날 부소산성을 산책하러 갔을 때 기회로 삼았다. 걷기 힘들다고 찡찡거리는 여덟 살배기 사잼을 꼬여서 가위바위보로 걷게 만들기! 여기에 나의 눈속임 대잔치가 펼쳐졌다. 으하하하.

사잼이 이겼다고 좋아하며 앞으로 걸어갈 때마다 나는 뒤에서 몰래걸음으로 바짝 따라붙었다. 내 아들이 어릴 때 무수하게 이 수법을 써 먹어서 도가 튼 나를 사잼이는 곧이곧대로 믿었다.


사잼이 수십 번을 순진하게 속아 넘어가 준 덕분에 낙화암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돌아올 때도 그런 방식으로 주차장까지 쉽게 돌아왔다. 이 방법은 심리적 축지법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걷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뛰게 만드는 마력의 놀이이니까. 게다가 사잼은 내기만 하면 가위를 냈기 때문에... 하하




영영아,

스무 해 동안 우리 다투고 울고 서운해하고 오해도 하였다가 풀기도 하며 뜨겁게 서로를 좋아했.

이제는 적당한 온도로 서로의 면면을 이해하고 서로를 귀히 여길 줄 알지. 어쩌면 너와 나 사랑했던 이를 잃어본 사람들이라 어떤 온도가 서로를 살리는 온도인지 알아서일지도 모르겠어.

혹독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렇기에 우린 상상치 못한 어쩌면 더 아름다운 삶의 색이 펼쳐진 공간으로 온 것 같아. 너와 나와 우리가 함께하는 글벗들과 여성 동지들.


누구보다 나를 많이 웃게 하는 너, 내 이야기에 귀 쫑긋 세우고 들어주는 너, 나도 너에게 그런 존재이기를 바라.

너와 오잼, 사잼의 하루하루, 모든 시간에 축복이 있기를.

나약한 나이지만 너희들 곁에서 기쁜 일, 슬픈 일 함께 나누는 언니이자 이모이자 친구가 될게. 초긍정의 색채를 가진 너, 앞으로도 씩씩하 나아가기.

나의 자랑스러운 친구 영영, 너와 사잼, 오잼 이야기를 쓸 수 있게 해 주어서 고마워.

우리, 잘 먹고 잘 살자.^^





**이 노래 들어보세요.

[그렇게 살아가는 것 - 허회경]


https://youtu.be/hmOOkmynj4A?si=s_5bAYPfp5wwc6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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