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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Apr 21. 2024

강화, 세렌디피티

강화도 여행에서 만난 사람


*세렌디피티(serendipity)

의도하지 않았는데 얻게 된 행운이나 예상치 못한 성공을 가리키는 말. BTS 지민이 부른 동명의 노래를 듣고 관심 갖게 된 말.




 년 전.

강화에 혼자 가게 된 건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워서였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엄마, 친정집에 홀로 남으신 아버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친정을 나서긴 했는데, 뻥 뚫린 마음으로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강화도에 진입한 상태였다. 강북에서 성산대교가 아닌 행주대교로 향했을 때부터 안산으로 돌아갈 마음이 없었던 거다. 나만의 애도 시간이 필요했 것 같다.

어둠이 내릴 즈음 친정을 떠난 터라 강화에 도착했을 때는 캄캄했는데, 휴대폰 배터리가 4%에서 3%로 줄어 있어 애가 끓었다. 휴대폰이 꺼지기 직전 저 너머 언덕 위에 반짝이는 호텔을 찾았고, 체크인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바다로 뻗은 둘레길을 걷고 걷다가 저녁나절에 안산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때의 기억이 안온해서 일 년에 한 번씩은 강화 여행을 하였다.

길이 밀리지 않는다면 안산에서 90분 정도 걸리는 강화는 산과 바다를 모두 느낄 수 있는 지역적인 특성이 있는 데다 유적지도 많아서 퍽 입체적인 여행지이다.




작년 이월.

갑자기 짧은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동행하자고 청하면 응해 줄 친구들이 떠올랐지만, 발길 닿는 대로 혼자 다녀보기로 하였다.

한옥 카페에 글을 쓰다가 해 질 무렵 네*버에서 게스트하우스 '배꽃집'을 검색한 뒤 전화를 걸었다.
단단하고도 부드러운 목소리의 여자분이 전화를 받았다. 시 수업에서 시인이자 교수님'목소리 지문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쥔장의 목소리에서 긍지가 느껴졌고 단박에 신뢰가 갔다.


배꽃집으로 가는 도중 해가 지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빛깔에 취해 사진을 찍으려고 정차할 곳을 찾았지만, 산이나 건물이 장애물이 되었다. 체념할 무렵 시야에 탁 트인 벌판이 펼쳐다. 차에서 뛰어내린 나는 몇 컷을 사진에 담았다. 저녁놀을 좋아하는 내게 반가운 선물이었다.


배꽃집 근처 벌판의 해넘이


배꽃집은 논 한가운데 있었다. 지나친 채 서행하는데 쥔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검은색 카니발 맞나요? 기다리고 있을 테니 조금만 돌아오실래요?"

쥔장으로 보이는 여자분이 오른팔에 깁스를 한  마당에서 주차할 곳을 알려주었다.

차에서 내려 둘러보니 타샤의 정원이 떠올랐다. 


실내의 문이 열리는 순간 을씨년스러운 공기에 추위를 잘 타는 나는 잠시 주춤하였다. 감기에 걸릴까 조심스러웠다. 코로나 시국에서 막 해제된 때라서 아직은 조심스러운 시기였으나 쥔장의 환대에 미끄러지듯 실내로 들어갔다. 10인실 도미토리룸과 쥔장 가족의 본체 사이에 거실이 있었다.


거실의 벽에 붙은 메모지들을 보니 배꽃집 역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거실에서 함께한 따뜻한 시간에 대한 글들, 쥔장 부부에게 고맙다고 남긴 메모들이 보였다. 인정이 가득한 배꽃집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쥔장은 강력한 난로를 켜 거실을 훈훈하게 만들어 주었다.



배꽃집 거실. 코로나 이전 여러 손님들의 만남의 장소였다고 한다.




쥔장으로부터 주변의 식당을 소개받은 나는 저녁을 먹으러 나가기 전까지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을 먹고 와서도 두 시간이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코로나 때문에 손님을 받지 못하였다가 나를 만난 쥔장은 사람이 반가운 것 같았다.


쥔장의 표정과 그녀가 선택하는 어휘들들에서 우리는 서로 통한다고 느꼈다.

"거실에서 좀 늦게까지 글을 써도 될까요?"

쥔장은 기꺼이 그러라고 허락했다. 그녀의 눈에서 빛이 났다.

"제가 오래전부터 함께 글을 쓸 사람들이 고팠거든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쥔장은 게하를 운영하는 십여 년 동안 블로그에 게시글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나는 내가 소속된 매일 글쓰기 모임과 격주 합평 모임을 소개하였다. 쥔장이 얼마나 좋아하던지.

"저는 피드백을 받고 싶어요."

합평 모임으로 초대하기로 하였다. 블로그에 글쓰기 10년이라면 검증을 따로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게하 대표 금보리와 손님 창창한 날들이 글벗으로 만나는 순간이었다.


이튿날 아침 일어나니 밤새 눈이 내렸다. 거실에서 찍은 풍경.


이튿날 아침, 눈 쌓인 마당을 걷다가 들어왔다. 금보리와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길을 나서려는데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시간 괜찮으면 좀 더 계시다 가실래요? 이런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절실했어요. 창창님과 대화를 나누니 묵은 체증이 다 가시요."

"하하, 그럴까요?"

꿰어 신던 신발을 벗고 다시 거실로 들어갔다. 팔이 불편한 금보리 대신 내가 차를 준비했다.
전날 밤은 책과 글과 강화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이제는 개인사들이 연줄 연줄 나왔다.


금보리는 이십 년 동안 국내외 혼자 여행을 한 여장부였다.
부부가 둘 다 내향형이면서 여행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런데 남편보다는 금보리가 여행을 더 좋아한 덕분에 홀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단다. 혼자 하는 여행이 무섭기도 하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미안하여 머뭇거리자, 남편이 금보리에게 아이들 케어를 맡을 테니 어디든 다니라고 독려하며 이렇게 말하더란다. 
"당신의 경험이 우리 모두의 경험이야."


"남편의 그 말이 무슨 뜻일까 오래 생각했는데, 최근에 알았어요. 제가 여행에서 경험치를 늘리고 성장한 만큼 저 자신은 물론 아이들과 주변 사람에게 사랑으로, 지혜로, 수용으로 나눠줄 수 있을 것 아니겠어요. 남편의 큰 그림이었죠."

엄마가 다양한 체험을 통해 터득한 지혜와 정서가 모두를 편안하게 만들 거라는 믿음 것다.

그 말을 하는 금보리의 눈동자에서 지금의 나로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아우라가 뿜어졌다.


금보리네 부부는 금슬이 좋아 보였는데, 십 년 전, 그러니까 부부가 쉰이 막 넘어갈 즈음부터 '십 년 전쟁'을 치렀다고 한다.

남편이 집을 나가던 날을 이야기할 때 금보리의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아직도 상처로 남은 이야기였나 보다.

나 역시 작은 보따리를 들고 현관문을 나가던 X가 떠올라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창창 님, 남편 분께 나 버리지 말라고 잡지 그랬어요."

"코로나 시작되자마자 그 사람 마음은 이미 멀리 가 버린 것 같았어요. 그걸 뒤늦게 깨달았어요. 저 자립하라고 헤어질 시기를 일 년이나 기다려 주었고, 전세 대출도 받아준 사람이에요. 더 바라면 안 되었어요."

우리 부부에게는 종전 선언과 동시에 완전한 결별이라는 장벽이 세워졌다면, 금보리 부부는 그 전쟁을 '함께하는 평화'로 탈바꿈시켜 무사히 건너다. 두 분에게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저 곧 깁스 벗어요. 금세 다시 놀러 오세요. 여기저기 함께 놀러 다녀요."

우리는 깊은 포옹을 나누었다. 금보리가 다친 팔로 나를 안아주었다.

금보리가 차문을 여는 내게 말을 건넸다.
"저에게 선물로 와 주셔서 감사해요."
"저야말로 큰 선물 받았습니다."


강화도 보문사의 찻집에서.



<쿠키 영상>

작년 이월에 쓴 글을 조금 수정하여 이번 브런치북으로 소개하게 되었다.

배꽃집에는 그해 사월에 두 친구와, 오월에 합평 모임 글벗들과 여행을 갔다.


금보리는 그날 이후 우리 합평 모임의 애정 충만한 글벗으로 함께하고 있다.

금보리는 올해 이월에 브런치 작가 보리남순이 되어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녀가 여행했던 곳들에 대한 이야기를 발행하고 있다.


보리남순의 브런치

https://brunch.co.kr/@bau6307/118    


새로운 만남은 우리 삶을 예상치 못한 질감과 양감으로 풍성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뇌과학자 박문호 선생은 '기억은 경험을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이전 기억이 옷걸이 역할을 하여 새로운 기억이 덧붙고 저장된다. 전혀 다른 경험을 쌓는다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라고 하였다.


여행에서 만난 이들의 환대가 새삼 고마워지는 밤이다.




#만남 #새로움 #새로운 #강화여행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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