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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Apr 14. 2024

정연스러운, 이정연

리뷰 <서른 살이 되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이정연, 와우라이프, 202


우연히 시작된 듯 보이지만 우연이 아닌 일이 많다. 우연인 듯 보이는 점들을 이어보면 내 성향과 성격으로 선택한 일들의 조합이었다.

 

이정연 작가의 브런치를 처음 방문하여 그녀의 첫 글을 읽은 날은 우연히 2022년 11월 28일이었다.


그해 11월, 나는 혹독하게 아팠다. 코로나 확진으로 죽다 살아난 격리 기간에 내가 평생 등대로 삼았던 스승님을 잃었다. 조문도 가지 못한 나는 선생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지 못한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마음 둘 데를 찾지 못하였다.


아프던 끝에 이정연 작가의 글집을 방문하게 된 나는 그녀의 문장, 정확히는 정서에 매료되었다.

이정연 작가의 글을 알게 되고, 애독자가 되고, 지금 이렇게 작가의 책 리뷰를 쓰기까지 우연인 듯하지만, 우연이 아닌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니까 '창창한 날들'이라서 지금 여기, 이정연 작가와 만났고, 그녀의 책을 리뷰하고 있다는 말이다.

 



브런치에서 구독을 결정하고 성실한 독자가 되기 위해 나는 아래의 과정을 밟는다.

작가 소개-브런치북 제목-첫 글-최근까지 글이 발행되고 있는가

작가를 이해하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첫 글을 찾아보는 일에 특히 공을 들인다.


우연히 알게 된 작가가 첫 글로 '일상' 이야기보다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배경'을 썼다면 마음이 더 쉽게 열린다. 작가를 이해하는 데 가장 빠른 길을 제시해 주어서 무척 고맙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정연 작가는 첫 글에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자신의 상황과 심리를 솔직하게 고백하였다. 그래서 마음에 딱 들었다. 아래는 그녀가 쓴 첫 글이다.


https://brunch.co.kr/@yeseul0812/8



오랫동안 국어를 강의해 사람으로서 '해학'이란 말과 정서를 좋아한다.

'웃음으로 눈물 닦기'라고도 하는 해학은 '슬픔이나 어려움 속에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웃음으로 그 아픔을 이겨내려는 태도'를 뜻한다.

희망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하는 한국인의 강인한 정신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정연 작가의 글에서 느낀 것이 바로 해학, 웃음으로 눈물 닦기였다. 아래 문장에 그녀가 웃음 만들기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다.


나는 타인이 나로 인해 웃을 때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이기도 하다.(12쪽)
은희경 선생님의 소설을 읽고 있었다. 창문은 열리지 않았고, 설령 열리더라도 나는 뛰어내릴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용기 있는 인간이 되지 못하니까. 책의 결말에도 도달해야 하고, 주말에 무한도전도 보아야 한다. 그래서 웃기로 했다. (33쪽)



운한 일이 와락 덤벼 드는 순간이었는데, 작가는 무한도전 때문에라도 웃기로 했다고 위트 있게 말한 것이다. 그런 문장을 나는 뽑아낼 자신이 없다. 유머 유전자가 없어서일까. 후천적 예능감이 없어서일까.




이정연 작가가 드디어 자신의 종이책을 출간하였다.

팬심을 안고 텀블벅에서 그녀의 책을 예약한 뒤 기다렸다. 출간 과정을 브런치로 공유해 주어서 편집진의 마음 조금 보태어 참여한 듯, 책을 손에 받기도 전에 애정이 장착되어 있었다.



http://aladin.kr/p/FqoA3

 


드디어 책이 배달되었다. 펼쳐보니 행간이 넓어서 좋았다. 안통으로 고생하는 나에게는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행간이 넓어서 읽기에도 기분에도 좋은 책,  직접 사진 찍고 정성스레 쓴 엽서.


십여 년 동안 생사를 넘나든 작가의 깊은 생각을 간결하고 소탈하게 전달하는 문장이었다.

호들갑스럽지 않은 가의 목소리를 글로 읽다 보니 지금 당장 만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댓글과 대댓글, 이메일로, 만남을 약속였지만 아직 날은 잡지 못한 상태였다.

만난다면!


이정연 작가는 어떤 목소리로 말할까? 어떤 표정을 가지고 있을까? 이정연 작가의 미소와 웃음은 어떤 형태일까? 정연 작가와 나는 산책하는 속도가 잘 맞을까?


화면으로 읽는 글과 종이책은 느낌이 아주 다르다. 재작년에 합평 모임 친구이자 브런치 선배가 책을 출간했을 때 의리로 책 구입은 했지만 브런치로 읽은 터라 크게 기대하진 않았는데, 종이책은 훨씬 좋았다. 특히 밑줄 그으며 읽는 독자는 작가에게 훨씬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마음껏 사랑할 때 솟아오르는 행복 호르몬.


나는 보이는 그대로의 사람이기도 하고, 결코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면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어쩌면 당신도 그런 사람일지 모른다. 우리는 평생 스스로에 대해 완전하게 알 수 없을 것이고, 타인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19쪽)


나는 '그(미지의 사람, 새로 사귀게 될 사람)가 궁금하고 그를 조금이라도 알고 싶다'는 소망을 지니고 사는 타입이다.

그를 완전하게 알고 싶다는 꿈은 꾸지 않는다. 다만 대화를 나누는 그 시간, 웃음을 나누는 그 순간이 소중하다는 것만은 완전히 믿는다. 이정연 작가가 딱 그렇게 말한다. 어찌 통하지 않겠나.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하고 싶은 순간이 있을 것이고, 누군가를 소개받고 싶은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호기심들이 결국 우리 삶을 다채롭게 물들일 것이고, 삶은 조금 더 재미있어질지도 모른다. (19쪽)



이정연 작가는 어린 나이에 생사를 오락가락하는 일들을 겪었다. 스물다섯에 ESRD로 투석을 받게 되어 삼십대 중반까지 투병하며 지낸 작가의 마음을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다.

생을 포기하고 싶은 숱한 순간이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정연 작가는 거기에서 한 걸음 나아간다.


버티고 또 버텼다. 잘 살아왔다고는 감히 말할 수 없지만, 그 누가 묻던 지간에 잘 버텨왔다고는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버티는 일이 때로는 생에 가장 능동적인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시간 속에서 알았다. (71쪽)

아플수록 더 아파 보이지 않는 나는 계속 더 삶 속으로 파고들어서 남과 같이 살고 싶습니다. (109쪽)


이런 문장은 작위적으로 나올 순 없을 것이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배어나올 테니까. 오랜 시간 무너졌다 다시 일으켜 세운 마음으로서만 할 수 있는 말일 테니까.


이정연 작가는 매주 월, 수, 금에 투석하러 병원을 오가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왔다.

대중교통 안에서 스치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과 짧은 말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낯설고 차가운 순간을 만나기도 했다. 작가를 좋아한다며 다가온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입기도 했다. 소극적인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었을 테다.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누군가를 내 인생에 들여놓을 생각 따위 하지 말아야지. 내게 호의를 보이는 사람에게 속지 말아야지. 아마, 앞으로도 내 인생에 영원히 사랑은 없을 테지만 내가 나를 사랑하므로 괜찮다. (171쪽)


하지만 기차 안에서 만난 여성 승무원의 호의를 떠올리며, 타인뿐 아니라 자신을 건강하게 살리는 길은 방어보다는 믿음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래, 세상은 생각보다 친절하다. 내가 친절한 세상을 믿지 않았을 뿐. 앞으로 조금 덜 방어적으로 살아간다면. 친절한 세상을 믿어본다면 어떨까?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혼자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121쪽)

나는 아프다. 죽지 않는 한, 영원히 이 병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나를 책임지며 살고 있고, 나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 아니, 그에게 상처받기 이전보다 나를 더욱 사랑한다. (170쪽)


어쩌면 인생도 이런 건지 모르겠다. 최악이라고 생각하고 기분이 처져 있었는데, 바로 다음 순간에 최고의 일이 찾아올 수도 있는 거지! 그러니까 최악의 상황을 만났다고 해서 마냥 실망하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 그저 평온한 마음으로 감내하고 버티면 이렇게 다음 순간 맛있는 밥을 먹을 수도 있는 거야! 203쪽


정연 작가의 글에는 신파가 없다. 신파는 슬픈 일이 있다고 말하다가 자기 한탄으로 흐르는 정서 아닌가.

정연 작가의 상황은 신파로 흐를 법한데(그렇다 해도 누군들 그녀를 나무랄 수 있을까. 십여 년 동안 희귀 난치성질환으로 병마와 싸워 온 그녀에게...)


자신을 '병팔이 아이돌'이라 너스레를 떨면서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일에 갇히거나 독자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맛있는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 앞으로의 삶을 희망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나의 눈도 희망의 눈이 된다.


나는 대체로, 맛있는 걸 아껴두었다가 마지막에 먹는다. 그래서 어쩌면 내 인생도, 맛있는 것들은 조금 더 나중에 잔뜩 남아있을지도 모른다고 늘 생각한다. 204쪽



스물다섯부터 투석해야 했던 자신이 불행하기만 한 게 아니었다고 돌아볼 줄 아는 정연 작가.

그녀는 자기 앞에 닥친 일 중에서 역대급 파장을 일으키는 순간조차 흐르는 삶 중에 어디메쯤 서 있는 것뿐이라고, 자신과 주변을 토닥일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알면 그렇게 무소의 뿔처럼 빠르게 나아간다. 이미 수십 번 오른 시술대인걸. (중략) 씩씩하다는 말을 정연스럽다로 대체해도 될 정도가 아닌가. 13, 15쪽


 



브런치북 <지금이 젤로 젊다 GOGO>는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기획이다.

이번 글에서는 브런치라는 여행에서 만난 이정연 작가를 소개하였다.


우리는 온라인 여행으로 만났지만, 지난 4월 2일에 서로가 최적의 공간이라 꼽은 한강 양화 공원에서 만났으니 오프라인 여행까지 세트 여행을 함께했다.


아기다리고기다리던데이트!

벚꽃이 피기 전이었지만 연둣빛으로 뿜어대는 나무들을 정연 작가가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처음 눈을 맞은 댕댕이(강아지)처럼 깡충거리며 좋아하는 그녀를 보니 내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덕분에 그녀에게 '잘 웃는 창창'이라는 첫인상을 남겼다.


정연 작가가 건네준 꽃다발. 앗, 꽃 이름을 잊어버렸다.


정연 작가의 목소리는 약간 허스키했는데 자꾸 듣다 보니까 요즘 빠져서 시청하는 드라마 <눈물의 여왕>의 남주 김수현의 말투가 떠올랐다. 그래서 "김수현 목소리 같아요"라고 말해 주었다.

정연 작가는 남자 같다는 말로 듣지 않고 러블리한 캐릭터 같다고 들었고, 매우 즐거워했다.


정연 작가는 글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이를테면 식당에서 나가기 전 의자를 탁자 밑으로 넣어줄 줄 아는 몸에 밴 배려 같은 것, 내가 말할 때 상체를 앞으로 가져와 눈을 마주하고 상대에게 몰입하며 듣는 자세 같은 것.

 

씩씩하다는 말을 정연스럽다로 대체해도 될 정도가 아닌가! (15쪽)


씩씩한 이정연 작가, 오늘도 내일도 정연스럽게 나아간다.

나 역시 정연 작가가 쏘아 준 에너지로 마음 꽉꽉 충전해서 정연스럽게 나아가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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