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창창한 날들 Apr 08. 2024

제부도가 보내준 친구

ENFP끼리 친구 되기




혼자 제부도 바다를 찾아 나 날이었다. 그즈음 나는 매주 토요일이면 제부도로 달려갔다.

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새로 생긴 카페를 발견했다. 송산 포도밭 한가운데였다.

제부도와 누에섬을 걷느라 고달팠던 다리를 쉴 겸, 이쁜 카페를 구경할  카페 들어갔다.


이십대로 보이는 종업원인지 대표인지 알 수 없는 분이 밝은 목소리로 맞아주었다.

눈망울이 크고 호감 가는 인상이었다. 게다가 센스도 있고 상냥했다. 주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내가 그분의 권유대로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진하고 맛있었다.


노트북을 켜고 브런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분이 삼촌네가 농사짓는 포도라면서 연두 포장지에 싸인 포도송이를 접시에 받쳐 건넸다. 꽃다발처럼 보이는 포도의 포장지를 살살 풀어서 한 입에 넣었다. 향기가 짙은 데다 알이 입안에 가득 찰 정도로 큼직하고 과즙이 달콤 새콤했다.


내가 앉은자리 옆의 통창을 저녁놀이 덮기 시작했다.. 저녁놀을 좋아하는 나는 글 잘 써져서 예정된 시간보다 두 시간을 더 머물렀다.



집에 돌아와 온라인 모임을 하는 중 노트북 화면이 어두워지더니 꺼져 버렸다.
'앗! 충전기!'

가방을 샅샅이 뒤졌지만 충전기가 없었다! '아, 그 카페!'
휴대폰의 작은 화면으로 온라인 모임을 겨우 이어갔다.


카페 주소를 검색하니 다음 날인 월요일은 휴무였고, 화요일 문 여는 시각이 오전 8시였다.

일요일 밤과 월요일이 더디게 흘러갔다. 노트북으로 학생들 수업도 해야 하고, 글도 써야 하는데 몹시 답답하였다. 과장처럼 보일지 모르나 뇌마저 정지된 것 같았다.


느닷없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에서 딸이 엄마 집에 모자를 두고 가던 장면이 생각났다. 친정 갔다가 뭘 두고 올 때가 곧잘 있는데, 그럴 때마다 그 영화를 떠올리곤 했다.

무언가를 놓고 가는 건 그 장소로 돌아가고 싶다는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니, 그곳에 다시 가고 싶었던 걸까.




화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카페로 달려갔다.

카페 앞에 주차하는 내 모습을 보았는지 그분이 문을 활짝 열고 달려 나왔다. 그녀의 손에 충전기가 들려 있었다.


충전기를 받으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려던 나는 그녀의 다정하고 친근한 행동이 좋아서 청포도 에이드를 주문하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

오전에 계획한 일이 분명 있었는데 다 접어버렸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보다 급한 건 없다고 보는 성향인지라.


에이드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지난번에 저 창가 자리에서 글이 잘 써졌어요. 덕분에 한 편 완성했어요."

"혹시 작가님이세요?"

"브런치라는 글 쓰기 플랫폼에 글을 올리고 있어요."

"저 글 읽는 거 좋아해요. 브런치 어떻게 까는 건지 알려주세요."

그녀의 휴대폰을 고 브런치 앱설치하는 걸 도와주며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카페가 이쁘고 그날 마신 라테가 맛있어서 인스타도 올리고 <100일글쓰기>에도 올렸다고 말해 주니 아가씨가 활짝 웃었다. 마스크 안의 표정이 다 보이는 성격이었다.

"매일 글을 쓰세요? 대단하시네요."

그녀는 자기 일을 하러 돌아갔다.


꽤 시간이 흘러 글을 수정하고 있는 내 앞으로  다가 머뭇거리 말했다.

"선생님, 방금 맨 처음 글 두 편 읽었어요."

그녀는 큰 눈망울로 나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두 손을 내밀었다.

"선생님 손 좀 잡아 드려도 돼요? 안아드리고 싶지만 그건 안 되겠지요?"

마스크를 절대 빼지 않을 정도로 철저한 그녀다운 말이었다.

'와 안 되겠노? 나는 누구하고도 말을 섞을 수 있는 대한민국의 엔프피 아줌마다.'

게다가 무해한 사람을 잘 가려 사귀는 눈만큼은 가졌다고 믿는 사람이다. 냉큼 일어나서 그녀를 안았다. 우리는 서로 토닥이며 그렇게 서 있었다. 그녀에게도 말 못 할 아픔이 있는 걸까.


"선생님, 글이 잘 읽히고 뭉클하기도 했어요."

"피드백 고마워요. 제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위로가 될까, 궁금하기도 하고 고민이 많았거든요."

"도움 될 거예요. 저도 순간이지만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 가족 이야기를 기 시작했고, 나는 그날도 제부도에서 오는 길이란 걸 얘기했다. 누가 봤다면 이모(혹은 고모)와 조카 같은 풍경이었을 테다.

그녀는 처럼 낯선 이 별로 경계지 않 사람 같았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 화들짝 놀란 듯 손님 시간을 방해하면 안 된다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한참 뒤 그녀가 탁자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삼촌네가 농사 짓는다는 청포도다.

그 마음이 고마워서 빵을 주문하겠다고 하니 아직 굽지 못했다며, 연습용으로 만든 더블 치즈 휘낭시에를 줄 테니 먹어보겠느냐 물었다.

"론 먹지요!"

새콤한 치즈향의 휘낭시에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이었다.


그녀와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었다. 침 손님이 나밖에 없었다.

"요기 와서 좀 앉을래요? 저랑 이야기 더 나누다 가요."

휴무 뒤라 할 일이 많다면서도 그녀는 내 앞에 앉았다.

그녀는 카페 오픈을 하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나는 그날 왜 혼자 제부도에 갔는지, 작년부터 매일 글을 왜 쓰게 됐는지 들려주었.


그녀가 문득 물었다.

"혹시 MBTI 관심 있으세요?"

"네, 저 엔프피예요."

"어머나, 저도예요."

단시간에 무장해제하는 스타일인 두 여자의 이야기는 그 후로도 삼십 분 여 이어졌다. 

여기에 쓸 순 없지만 서로 내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사람을 알고 싶어 함. 충동적 의사 결정. 촉이 좋음. 공감 능력이 뛰어남. 활동가. 모든 시도하려 함. 들어줌. 굉장한 열정. 감성적임. 주는 좋아함. 흥분함.


이런 성향을 지닌 우리는 서로를 지인 목록에 넣었다.

그녀는 에세이를 추천해 달라다. 방에 있던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김화숙/생각비행/2022.9.20)를 건네주었다. 그 책은 간암 치유뿐 아니라 자기 혁명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녀에게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간암 투병했던 글친구가 쓴 책이에요. 며칠 뒤에 찾으러 올게요, 읽어 봐요."

며칠 뒤에 찾으러 온다는 말에 그녀가 손뼉 치며 웃었다.




오늘 오후에 일을 마치고 그녀의 카페에 들렀다.

주차 라인에 차를 대는 나를 알아본 그녀가 활짝 웃으며 나왔다.


3, 40년 된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기쁨이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새롭고도 경쾌한 에너지를 준다. 우연하게 들어간 공간이 만남의 장소가 되고 새 추억이 쌓이니 말이다.


삶에 대한 기대가 없다가도 예상치 않은 곳에서 누군가와 말을 트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삶이 내게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내일을 향해 걸어가도 좋아!

그 신호는 오늘을 맞이하는 이유로 다가온다.




(지금이 젤로 젊다GOGO 브런치북에서는 새 여행에서 만난 인연 이야기를 쓸 계획이었어요.

헌데 요즘 구직활동으로 바빠서 여행을 갈 수 없는 사정이에요.

이 글은 2022년 시월에 제부도에서 돌아오던 길에 만나 인연이 된 친구 Y 이야기니다.)

이전 03화 평화전망대에 간 사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