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는 산에 둘러 싸인 분지 지형이다. 특히 내가 살던 동네는 산과 가까워서 빽빽한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길 하나를 건너면 675미터 정도 되는 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산 밑에는 그럴싸한 주택 단지가 조성되어 있었는데 지붕이 UFO처럼 특이하게 생긴 집도 있었고 또 빨강머리 앤이 사는 초록 지붕 집처럼 예쁜 유럽식 주택도 있었다. 당시 아파트에 살던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등산을 갔는데, 주택단지를 지날 때마다 나는 엄마 아빠에게 주택으로 이사를 가자고 조르곤 했다. 강아지도 키우고 마당에 그네도 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우리는 정말 산 밑 주택가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게 된 까닭이다. 주택 단지를 오고 가며 봐온 집들을 떠올리며 나는 어떤 집에 살게 될까, 한껏 기대에 들떴던 나는 오히려 집을 보고 나서 실망한 채로 돌아왔다. 좋은 집이었지만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일반적인 다세대 주택과 흡사한 회색빛이었고 오색찬란한 꽃들이 피어날 정원도 없었기 때문이다.
며칠 뒤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가 계약하려던 집에 살던 할머니께서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이사 못 간다!'라고 불호령을 내리신 것이다. 부모님은 아쉬워하셨지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몇 주 뒤 부모님은 새로운 집을 찾아내셨다. 지금까지 살고 있기도 한 이 집은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들었다. 외관이 아주 특이하거나 예쁘진 않았지만 빨간 벽돌로 지어져 따뜻한 분위기가 풍겼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잔디밭이 깔린 작은 마당이 나왔고 돌계단을 올라가면 더 큰 마당이 나왔다. 꽃과 나무를 심고 그네까지 설치하기에도 충분해 보였다. 그리고 집은 천정이 높아 탁 트인 느낌이 들었고, 2층 내 방에서는 창문 밖으로 산이 보였다. 비록 다락방은 기어 다닐 만큼 낮고 좁아서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쓸 순 없었지만 그럼에도 정원이 있는 2층 집에 살게 된 나는 꿈을 이룬 듯 행복했다.
엄마와 시간이 날 때마다 화훼단지에 가서 꽃과 묘목을 사 와 정원을 꾸몄다. 여러 종류의 꽃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어우러지도록 심고 나면 물을 흠뻑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 땅에 뿌리를 내리고 햇볕을 흠뻑 머금은 꽃들이 자랑이라도 하듯 피어나기 바빴다. 작년에는 튤립 구근을 심어 꽃을 봤다. 꽃다발 속에 가지런히 놓인 튤립만 보다가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온 힘을 다해 꽃을 피운 튤립을 보는 것은 꽤나 다른 느낌이었다. 진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어릴 적 사온 묘목들은 어느새 내 키를 훌쩍 넘어섰다. 향이 진하고 멀리까지 간다고 해서 만리향이라고도 불리는 금목수는 오렌지빛 꽃을 활짝 피우면서 기분 좋은 향을 내뿜는다. 감나무는 알이 열렸다 안 열렸다 하지만 감이 주렁주렁 열릴 때면 동네 새들의 사랑방 노릇을 한다. 사계절 푸른 소나무는 거친 겨울에도 여전히 생명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게다가 소나무 밑동이 꽤나 아늑해서 강아지 별로 먼저 떠난 반려견 달래가 여름날 더위를 피하던 휴식처가 돼주었고, 1년 전 마당에서 냥줍한 시소가 몰래 집을 나갔을 때, 다시 돌아와 엄마가 문을 열어주기만을 기다리던 대기소가 되어주었다.
정원은 각자 떨어져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가족들을 한 데 모아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한 집에 있어도 아빠는 TV를 보고, 엄마와 나는 각자 방에서 유튜브를, 동생은 컴퓨터를 하는 시간이 많다. 하지만 정원 일을 할 때만은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다. 엄마와 나는 식물을 심고 가꾸고 아빠는 사방팔방을 뻗치는 가지를 정리한다. 동생은 밀짚 모자를 쓰고 잔디를 깎는다. 고양이는 나무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우리를 참견하고. 그렇게 서로의 땀과 노력이 스민 정원에서 함께 한 추억이 쌓여간다.
정부 땅을 서민에게 저렴하게 장기 임대해주고 정원으로 쓸 수 있게 하는 클라인가르텐 단지. 독일에는 이런 작은 정원 단지가 현재 120만 개 달한다. 베를린에서 가장 큰 정원 단지인 보른홀머 가르텐은 125주년을 맞아 일반인에게 개인 정원을 오픈했다.
독일말로 클라인가르텐은 ‘작은 정원’이란 뜻이다. 150년 전 독일 킬 도시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직접 채소나 과일을 재배해 먹을 수 있게끔 작은 땅을 나눠준 것이 시초였다. 클라인가르텐은 슈레버 가르텐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교육자이자 의사였던 슈레버 박사의 이름을 땄다. 하지만 그가 직접 정원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슈레버 박사는 아이들이 늘 위험한 거리가 아닌 정원에서 뛰어놀 수 있기를 바랐다. 그의 사후 가족들이 그를 기리는 광장과 정원을 만들었고, 식물을 직접 키우고 체험하는 정원이 나중에 아이와 부모들의 교육 프로젝트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작은 정원을 슈레버 가르텐이라 부르게 되었고, 1919년에는 ‘할당 정원 및 소규모 임대 규정’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클라인가르텐 운영의 기초가 되었다. 클라인가르텐은 제1,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감자와 채소를 공급하는 농지로 쓰이다가 전쟁 이후 꽃도 가꿀 수 있는 정원이 되었다.
베를린 북쪽, 프렌츨라우어베르크와 베딩 지역 사이에 위치한 보른홀머 가르텐Bornholmer Gärten은 베를린에 있는 클라인가르텐 단지 중 가장 큰 규모에 속한다. 총 500여 개의 작은 정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보른홀머 가르텐은 정원을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이곳을 지나다니는 동네 사람에게도 소중한 쉼터이자 산책길이며 개방된 공동의 정원이다. 각종 새와 나비, 벌이 모여드는 자연의 터전이자 야생 여우와 너구리가 사는 집터이기도 하다. 놀라운 것은 이 대규모 정원 단지가 베를린 도심 한복판에 여전히 남아 있고, 125년 동안 그 역할을 톡톡히 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식물을 키우고 정원을 가꾸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진 요즘, 독일의 클라인가르텐의 인기는 더욱 높아져 정원을 빌리려는 대기자가 계속 늘고 있다.
클라인가르텐의 울타리는 누구나 정원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낮게 설치되어 있다. 단지를 지날 때마다 그때그때 피는 꽃을 만날 수 있는 이유다. 그 만발한 꽃을 구경하고, 수십 년 된 나무를 보고, 정원에 나와 식물을 손질하거나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한다. 가끔 정원에서 딴 사과나 자두, 베리, 꽃을 바구니에 담아 밖에 놔두는 경우도 있다. 같이 나누고 즐기려는 마음이다. 집 밖을 나다니기 힘든 코로나 시대에 이런 개인 정원의 존재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좁은 아파트에 갇혀 있지 않고 작은 정원에서 자연을 느끼고 휴식을 취하며 답답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신세계 빌리브 매거진
공동 정원이라니! 정말 멋지다.
독립한 나는 지금 서울의 오래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유년을 보낸 정원은 이제 가끔 본가에 갔을 때만 볼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이 정원을 떠나 살아간다. 하지만 독일의 클라인가르텐 같은 공간과 제도가 마련된다면, 전 세계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숨 쉴 틈 없이 일하는 우리들에게 진짜 '숨 쉴 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빽빽한 빌딩 숲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인간과 자연을 지속적으로 이어 줄 수 있는 공간을 지속적으로 마련되면 좋겠다.
'빌리브'는 신세계의 라이프스타일 주거 브랜드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빌리브 매거진'이라는 카테고리를 운영하는데 공간이라는 틀 속에서 건축, 환경,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를 다룬다. 처음에는 눈에만 보기 좋은 잘 꾸민 집들에 대한 정보를 쫓아왔는데, 이메일 뉴스레터를 구독한 이후 볼수록 공간과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대한 생각할 거리와 국내외 제한 없이 매력적인 인물들을 조명해주어 2019년부터 쭉 지켜보고 있다. 지구 반대편의 색다른 공간과 새로운 인물을 만나고 싶다면 빌리브 뉴스레터를 구독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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