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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일지] 2. 아빠 집 정리

집, 짐, 마음 정리

by 적정철학 Mar 25. 2025

아빠 집 정리


아빠가 살던 집을 정리하기로 했다.

2011년부터니까 8~9년 동안 생활했던 곳.

중간에 병원에 입원하셨던 기간을 제외하더라도 꽤 오랜 시간 아빠가 머물면서 생활했던 집을 정리했다.


이제는 아빠가 없는 곳,

아무도 없는, 텅 비어버린 그 집 문을 여는 게 너무나 무섭고 싫었다.

유품 정리 업체의 도움을 받을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언니는 직접 아빠 집을 정리하고 싶어 했다. 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나도 업체에 맡기는 것보다는 힘들더라도 내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집을, 짐을 정리하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차곡차곡, 하나하나, 구석구석, 여기저기 짐들을 꺼내고 버릴 건 버리고 챙길 건 챙겨 두고

커다란 책장, 의자 등 가구를 꺼내는 일도 언니와 나, 둘이서 하기에는 너무 힘든 작업이었다. 

그래도 차근차근 정리했다. 


이틀에 걸쳐서 치우고 나니까 또다시 한번 텅 비어버린 집...

아빠가 살았던 흔적들이 사라지고 나니까 그 집이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사람이 살면서 참 많은 흔적을 남기는구나 생각했다.

뜬금없지만 나는 최대한 간소하게 살아야지. 다짐했다. 

혹시라도 내가 가고 남겨진 사람들이 내 물건을 정리할 때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빠의 물건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유품'이 되어버렸다.

아빠가 사용했던 그릇들, 이불, 입었던 옷, 타던 자전거...

그런 것들이 다 유품이 되어버렸다.

주인을 잃어버린 물건들이 내 눈에는 외로워 보였다.


물건들에 진하게 남아 있는 아빠 냄새.

냉동실에 보관된 오래된 포장 음식. 나랑 같이 먹고 남겼던 음식들...

이제는 그 모든 게 내 마음속에 추억으로만 남겠지.


텅 비어버린 집처럼

내 마음속 어딘가도 텅... 완전히 비어버렸다.

한 번도 가득 찬 적 없지만 그래도 아빠가 존재했던 곳,

아빠와의 기억이 있던 곳, 아빠와 하고 싶은 것, 아빠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던 곳

그곳이 텅 비어버렸다. 

이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아빠가 살던 곳에 또 다른 누군가가 들어와서 살겠지? 

누가 올진 모르겠지만....

건강하고 씩씩하고 밝은 분들이 와서 지내셨으면,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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