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짐, 마음 정리
아빠가 살던 집을 정리하기로 했다.
2011년부터니까 8~9년 동안 생활했던 곳.
중간에 병원에 입원하셨던 기간을 제외하더라도 꽤 오랜 시간 아빠가 머물면서 생활했던 집을 정리했다.
이제는 아빠가 없는 곳,
아무도 없는, 텅 비어버린 그 집 문을 여는 게 너무나 무섭고 싫었다.
유품 정리 업체의 도움을 받을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언니는 직접 아빠 집을 정리하고 싶어 했다. 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나도 업체에 맡기는 것보다는 힘들더라도 내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집을, 짐을 정리하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차곡차곡, 하나하나, 구석구석, 여기저기 짐들을 꺼내고 버릴 건 버리고 챙길 건 챙겨 두고
커다란 책장, 의자 등 가구를 꺼내는 일도 언니와 나, 둘이서 하기에는 너무 힘든 작업이었다.
그래도 차근차근 정리했다.
이틀에 걸쳐서 치우고 나니까 또다시 한번 텅 비어버린 집...
아빠가 살았던 흔적들이 사라지고 나니까 그 집이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사람이 살면서 참 많은 흔적을 남기는구나 생각했다.
뜬금없지만 나는 최대한 간소하게 살아야지. 다짐했다.
혹시라도 내가 가고 남겨진 사람들이 내 물건을 정리할 때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빠의 물건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유품'이 되어버렸다.
아빠가 사용했던 그릇들, 이불, 입었던 옷, 타던 자전거...
그런 것들이 다 유품이 되어버렸다.
주인을 잃어버린 물건들이 내 눈에는 외로워 보였다.
물건들에 진하게 남아 있는 아빠 냄새.
냉동실에 보관된 오래된 포장 음식. 나랑 같이 먹고 남겼던 음식들...
이제는 그 모든 게 내 마음속에 추억으로만 남겠지.
텅 비어버린 집처럼
내 마음속 어딘가도 텅... 완전히 비어버렸다.
한 번도 가득 찬 적 없지만 그래도 아빠가 존재했던 곳,
아빠와의 기억이 있던 곳, 아빠와 하고 싶은 것, 아빠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던 곳
그곳이 텅 비어버렸다.
이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아빠가 살던 곳에 또 다른 누군가가 들어와서 살겠지?
누가 올진 모르겠지만....
건강하고 씩씩하고 밝은 분들이 와서 지내셨으면,
행복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