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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Jun 27. 2024

초중등 독서의 쓸모

이래 뵈도, 릴스 중독자다. 틈만 나면 릴스를 본다. 불면인 주제에 잠자리에서도 대책 없다. 실시간으로 나를 한심해 하지만 도파민은 힘이 셌다. 도파민에 뇌가 절여지고 나서야 알았다. 책을 읽을 수 있는 건 축복이었다. 올해 상반기, 일과 무관하게 편하게 읽은 책은 한 권이다. 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는 독서 그 자체다. 독서는 인간이 원숭이가 아님을 증명한다.


독서의 바깥에서 집중력 감퇴를 체감한다. 글을 쓸 때도 생각을 정리할 틈에 어김없이 스마트폰으로 손이 간다. 릴스가 아니더라도 SNS, 블로그, 브런치, 주식 상황을 확인한다. 5-10분 단위로, 내가 미친 것 같다. 생각이 깊어지지 못해 글이 단순하고 가벼워졌다. 똥 묻은 개 주제에 선생이랍시고 학생들에게는 겨 묻었다고 나무란다. 부끄러운 줄 알지만, 나이 덕분에 뻔뻔하다.


의지 감퇴도 체감한다. 의지란 잘 누벼진 집중력이다. 성적, 도덕, 다이어트의 공통점은 의지를 통해 금기를 지키는 것에 있다. 금기에 대한 집중력이 흐려졌다. 불매 중이던 SPC 프렌차이즈 빵을 구매하기 시작했고, 먹성이 터져 급격히 살이 쪘다. 내 몸은 무절제의 폐허에 수렴해 갔다. 시발점은 역시 스마트폰이다.


독서가 건강한 학업 습관을 기르는 것은 확실하다. 텍스트를 읽는 동안 자신을 통제하며 집중력을 유지하는 형태는 성적쟁탈전의 필수 태도다. 초중등 학부모님들 중에 편독을 걱정하시는 분들도 있다. 편독은 좋은 습관은 아니지만, ‘텍스트를 붙들고 가만히 있는 것’ 자체가 이미 효용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니 안도해야 할 일이다. 추리소설이나 무협지만 읽어대더라도 체내에 쌓인 글밥은 학업 태도로서 공부력으로 환원된다. 나도, 릴스를 끊어내기 위해 [피를 마시는 새]라도 읽어야 할까 싶다.


글밥의 양은 어휘력에도 영향을 미쳤다. 책을 많이 읽은 학생들은 어휘의 뜻을 명확하게는 몰라도 맥락에 따라 파악하는 언어 직관이 좋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학생들의 어휘력에 놀란다. 최상위권에서 중상위권 학생들을 주로 겪는데도 해가 지나며 앙상해지는 어휘력이 체감한다. 어휘는 공부의 뿌리다.


한자 공부를 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들 정도다. 그동안 한자 공부는 시간 낭비라 생각해 왔다. 한국어 화자라면 공생의 ‘공’과 공동체의 ‘공’이 같은 뜻임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언어 직관은 무뎠다. 수업 중 ‘이것도 몰라?’가 잦아지며 이해가 어휘에 걸려 넘어졌다. 한자어 어휘가 개념어의 다수를 차지하고, 사고는 개념어의 연쇄로 구축되기에, 나도 자식이 있다면 초등학생은 선행을 당길 게 아니라 어휘부터 다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공부는 결국 텍스트 해독 작업이고, 텍스트 해독의 반복 작업이 독서다. 반복에 장사 없다. 낙수가 바위를 뚫고, 수능도 양치기고, 수학도 암기 과목이다. 독서는 경험의 양만으로도 유의미한 것이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다독이 왕도일 수 있다. 그러나 공부 습관과 어휘가 몸에 익고 나면, 질적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줄거리를 기억하는 것이 독서는 아니다.


독서의 끝은 글쓰기다. 사실 모든 학문의 끝도 글쓰기다. 사고력 신장은 글을 쓸 때 시작된다. 책을 읽다가 기습하는 영감은 사고력이 아니라 일회성 아이디어다. 아이디어가 내 사고망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서술되어야 한다. 글을 쓸 때, 머릿속에 있는데 표현을 못하겠다고 하는 건,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머릿속에 없는 거다. 내가 고3 상위권 학생보다 많이 아는 건 아니다. 이것저것 쓰다보니 아는 것을 연결해 생각을 만들어 내는 것에 능숙할 뿐이다.


글을 못 쓰는 학생도 객관식 세계에서는 각광 받을 수 있다. 객관식은 정보를 종합하길 요구하지도 않고 연계될 만한 실마리를 보기에서 제시한다. 실마리 덕분에 정보의 편린을 활성화 한다. 그러나 주관식 세계에서는 반드시 도태된다. 다른 정보와 통합되지 못하는 정보의 편린은 무의미하다. 중학생이 주식 종목이고 성적이 주가라면, 현재 성적 대비 글을 잘 쓰는 학생에게 투자할 것이다. 저평가 우량주다.


모든 독서는 독후감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어리다면 간략한 리뷰라도 좋다. 대학 4학년 때, 1년에 책 100권을 읽어보자 싶어 무작정 123권인가를 읽었었다. 100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두께와 깊이가 얇은 것들만 읽어댔과 생각이 숙성될 시간도 주지 않았다. 20대 중반, 독서량을 채워야 할 나이는 아니었는데, 헛된 시간이었다. 지금 나는 당시 무슨 책을 읽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독후감을 써 보면, 독후감을 쓰지 않는 독서의 휘발성을 실감한다.


예비 중학생들의 독후감은 대체로 처참하다. 주제가 없어 글이 아니다. ‘도입-줄거리 요약-인상 깊은 부분-결말’로 정형화된 구조는 글쓰기 기초를 잡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러나 문단별 개별 기능은 수행하되 문단이 연결되지 않는다. 표지가 예쁘거나 선생님이 시켜서 읽었다는 동기와 친구들에게 권하겠다는 결말은 획일적이고, ‘참 재밌었다’ 수준의 인상 깊은 부분은 조잡했다. 줄거리 요약은 필요한 정보를 선별해서 재구성하는 작업으로서 교육적 가치가 있었지만, 주제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토끼와 거북이가 육지에서 달리기 하는 이야기도 성실함을 주제로 요약할 때와 공정 경쟁을 주제로 요약할 때는 구성이 달라진다. 그러나 학생들은 책에서 전개 된 순서대로 요약한다. 중하위권 학생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만 상위권 학생도 다르지 않다. 초중등학생의 독후감은 주제에 대한 고려 없이 요약된 줄거리에 못생긴 허식을 두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책읽기는 진정한 의미에서 독서가 아니라 텍스트 접촉 체험이다.


학생 잘못이 아니다. 가르치지 않은 학교 잘못이다. 사교육이 사회 암적인 존재임을 부정하지 않겠지만, 사교육의 부모는 부실한 공교육이다. 덕분에 내가 먹고 산다. 고등/대입에서 글이 길어질 수행평가와 논술형 문제가 예고되었지만 초중등 학교에서 글쓰기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사교육에 손내미는 것이다. 실제로 요즘은 독서논술이 내포하는 사고력보다는 내신에 직결된 글쓰기 관련 문의가 더 많다. 학부모님 입에서 드디어 ‘수행이 다 글쓰기더라고요.’가 나온다. 입시 체제 내에서 학생이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현실적인 시간은 초중등 때뿐이다. 고등학생은 성적 이외의 모든 것에 신경을 꺼야 할 때다.


초중등 학생은 학부모님들과 종(種)이 다르다. 싸이월드와 인스타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인류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문어(文語)의 세계를 살았다. 책을 통해 정보를 습득했다. 구글링도 문어의 유물이다. 싸이월드에서는 가끔 눈물을 흘리더라도 기본적으로 게시판에 글을 쓰는 형태였다. 문어의 세계는 이성적 합리성이 중요했다. 그러나 초중등 학생은 구어(口語)의 세계를 산다. 이들은 숏폼, 유튜브를 통해 정보를 습득한다. 인스타는 기본적으로 구어다. 스토리의 휘발성은 구어의 전형이다. 구어의 세계는 감성적 직관성이 중요했다.


학생의 속성이 어떻든 공부는 문어로 구축된다. 초중등 학생의 공부는 구어 시민의 문어 세계로의 문화 격변이다. 그래서 공부하는 사람이 되겠다면 독서가 더 중요해지는 수밖에 없다. 구어로 구성된 도파민에 중독된 상태라면 독서는 해독제다. 공부를 지키는 가장 깊은 힘은 독서고, 뿌리 깊은 공부는 입시 전형에 아니 휜다.


(표지 : 시험 중 지우개똥 대량 생산하는 성당중1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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