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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Oct 17. 2024

자살 근처의 풍경

햇빛이 사윈 원룸은 어스름했다. 불을 켜지 않아 사물은 윤곽으로 존재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숨은 쉬고 있었다. 윤곽들이 시간차를 두고 문득문득 희미해졌다. 있다와 없다는 어둠 속에서 몸을 섞어갔지만 눈앞의 내 왼 팔목은 끝내 윤곽을 잃지 않았다. 정맥은 더 검은 선으로 살을 가로질렀다.


부엌으로 가서 과도를 꺼내왔다. 칼날이 손가락만 한, 과일이나 야채의 살만 가르던 칼이었다. 그것밖에 없었다. 칼끝을 왼 손목에 대었다. 일종의 자기 조롱이었다. 나는 내가 그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과도 따위로 동맥을 끊을 수 있다는 확신도 없었다. 거봐, 죽을 푼수도 없잖아. 기껏 한숨만 쌓다가 칼을 제자리에 갖다 두었다.


다음 날 신경정신과에 갔다. 의사는 내가 하는 말을 듣고는 내가 아는 말만 했다. 교과서를 읽는 초등학생처럼 형태와 통사 중심의, 그저 소리로 된 구조였다.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결국은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정도는 이미 내 머릿속에 박제된 문구였다. 애초에 의사에게는,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도 기대하지 않았다. 당신은 자판기처럼 내게 약만 처방해주면 된다.


우울증 약은 의외로 효과적이었다. 표정이 지어지지 않아 부동의 근육들에 몰렸던 무게감이 갰다. 사람들과 주고받는 말의 빈도도 늘어나면서 어조에 탄성이 실렸다. 무엇보다도 집으로 가는 길이나 취침 전 베갯머리에서 뜬금없이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았다. 미니홈피 대문에 잘려진 남자의 머리를 무표정으로 끌어안고 있는 여자 그림과 ‘아무도 없다’를 걸어 놓았었는데,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 그림과 ‘감사합니다♡’로 바꾸었다. 과도를 과도로 만들어준 알약에 감사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빨간 약과 파란 약을 내민다. 빨간 약은 매트릭스 밖의 진실을 볼 수 있게 하는 약이고, 파란 약은 매트릭스 속에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약이다. 네오는 빨간 약을 택했고, 그것을 처음 본 고등학생 시절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은 주인공의 의무이자 권리였다. 하지만 이제는 반문한다. 진실과 나의 삶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가? 진실보다는 행복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내 삶에 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은 위대한 착각 아닐까? 나는 진심으로 파란 약이 먹고 싶었다.


병원에서 준 약은 흰 색이었다. 저녁에는 캡슐에 든 알약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약효는 전반적인 기분을 바닥에서 끌어올리긴 했지만 그게 ‘살고 싶다’를 선택할 정도는 아니었다. 여전히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의욕 결핍상태였다. 투명한 공기가 모여 하늘이 파래지듯, 흰 알약을 모으면 파래질 수 있을까. 약을 먹은 지 사흘째 되던 날 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에서 깬 아침은 살아나버린 아쉬움이 참을 수 없음은 여전했다.


요즘 잠을 잘 못 자는데요. 일주일 후 다시 찾은 병원에서 나는 거짓말을 했다. 의사는 순순히 우울증 약과 함께 수면제 일주일 분도 처방해줬다. 수면제의 위력은 내가 잘 알고 있었다. 2년 전 불면을 겪을 때 복용한 적이 있었다. 먹으면 기억이 싹둑 끊기듯 잠들었고 컨디션에 따라 다음날 오후까지 몽롱할 정도였다. 열 알을 한 번에 먹어도 나를 잠재우지 못한 수면 유도제와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언젠가 수면제 5일치를 먹고 이삼일을 내리 잤다는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었다. 마찬가지였다. 죽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며칠 동안이라도 깨어 있고 싶지 않을 뿐이었고 어차피 주말이었다.


마음이 바뀔까봐 그날 저녁 약은 건너뛰었다. 그리고 인터넷 속에서 시간을 죽이며 음울한 기분을 키워갔다. 엄마한테는 미리 안부 전화를 드려 삼일 정도는 내게 전화할 일 없게 만들었고, 벨소리는 무음으로 설정하고, 알람도 해제했다. 11시가 넘어 7일 분을 한 번에 털어 넣었다. 화장실에서 오줌을 짜내고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나를 깨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확신이 편안했다.


깼을 때, 선선한 기온으로 아침을 직감할 수 있었다. 오래 자면 허리가 뻐근해지는 편인데 뻑뻑한 차이를 느낄 수는 없었다. 대신 약기운에 젖은 몸은 무거웠다. 휴대 전화로 시간부터 확인했다. 6시 21분에, 날짜는 겨우 하루가 지나있을 뿐이었다. 7일 분 수면제의 단단한 잠허리를 누가 싹둑 끊었을까.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목이 말랐다.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는 스칠 만한 현기증도 없이 멀쩡했다.


물 한 잔을 들이켜고 다시 누웠다. 잠은 돌아오지 않았다. 배가 고프다 못해 쓰라렸지만 일어나기 싫었다. 몸만 좌우로 뒤챘다. 9시를 넘겨서야 이불 속에서 빠져나왔다.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애초에 그 시간에는 자고 있어야 해서 해야 할 것이 없어야 했다. 갑자기 주어진 시간은 또 다른 형벌이라는 생각에 울컥했다.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켜고 살아나는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 순간 칼을 잡지 않은 것은 순전히 귀찮아서였다.

배고픔을 가장했던 속 쓰림이 점점 짙어졌다. 평소 징징대던 허기가 다섯 배쯤 농축된 열상 같았다. 물부터 마셨다. 밥 짓는 시간을 기다릴 수 없어서 라면을 끓였다. 국물이 마시고 싶기도 했다.


첫 젓가락에 속이 따가웠다. 아무튼 빈속은 채워 놓자는 생각에 억지로 처넣었다. 면발에서는 습한 고무줄 맛이 났다. 속이 점점 더 따가워지며 매스꺼워졌다. 약이 집중된 곳의 위벽이 상했나 하는 걱정이 들자, 쓴 웃음이 지어졌다. 아무도 보는 사람 없는데 연극하듯이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젓가락을 상에 놓았다. 라면을 냄비째로 들고 화장실로 가 변기에 쏟아 부었다.


그래도 뭔가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냉장고 앞으로 갔다. 냉장실 문을 열었다가 닫았다. 냉동실 문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냉동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주방용 비닐에 쌓인 채로 단단히 얼려 있는 것을 집어 들었다. 시래기 국이었다. 원룸에 이사 오던 날, 집에서 냉동고에 꽁꽁 얼려 아이스박스에 담아서 챙겨왔었다, 엄마가. 배를 잡고 토했다, 울음을. 아픈 곳도, 고픈 곳도 뱃속이었다.


이날 나는 집에서 밥을 먹지 않았다. 집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밖으로 나갔다. 아직도, 국은 냉동고에 있고 약은 서랍에 있다. 틈틈이 냉동실을 여닫아서 며칠 후, 나는 칼 대신 펜을 잡고, 이렇게 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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