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정해져 있지만 끊임 없이 끝을 부정하는 투쟁
크게 보면, 인생은 한 번의 호흡이다. 태어날 때 숨을 들이 마셨다가 죽을 때 내쉰다. 인생을 무게로 측량할 수 있다면 폐에 남은 잔기량만큼일 것이다. 다 뱉지 못한 한 줌 숨결로만 발화될 수 있는 무게를 들어보고 싶다. 생의 잔재이자 결코 몸에 속한 것이 아닌 말이 생의 마침표가 되는 서사는 1인칭이자 3인칭의 다중 시점 증언을 완성해낼 것이다. 그러나 묵비권이 완강하다. 시끄러운 고요가 시작된다.
작게 보면, 하루는 17,280번~28,000번의 호흡이다. 잔기량은 같은 무게의 다른 원소로 늘 새롭겠지만, 나는 원소들의 차이를 모른다. 일평생 5억~8억 번의 숨으로 무(無)가 담금질 된다. 말을 매단 날숨도, 말을 매달지 못한 들숨도 그 한 마디를 설명하지 못한다. 내 몸 한 가운데 있되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고요함은 부풀었다 꺼지기를 반복하는 호흡의 리듬로 지탱된다.
육체가 썩어 없어지거나 화장될 때, 고요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묻는다. - 태어나려는 새는 알을 깨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 )다. 괄호에 알맞은 말을 쓰시오. - 모든 인간이 문제를 내지만 답하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고요는 기어이 완성된다.
생명은 죽음으로 수렴된다. 우주를 상대로 확정된 파멸을 향한 성실한 반항, 호흡이다. 호흡은 꿈꾸지 않는다. 5억 번이든, 50억 번이든 굴러 떨어질 바위를 산으로 밀어 올리는 시지프처럼 반복할 뿐이다. 할 수 있으니까 한다. 생에 정답은 없지만 정체는 확실하다. 괄호에 굳이 한 마디 넣자면, 숨 한 번 크게 들이 쉬었다가 길게 내쉬는, 툭, 무의미다.
들숨은 보편적이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숨을 들이마신다. 식물은 기공을 열어 공기를 빨아들이고, 동물은 알과 양수 속에서도 산소를 받아들인다. 인간의 첫 호흡도 들숨이다. 생을 지속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우주를 빨아 들인다. 우주로 들어찬 몸통이 확장된다. 숨을 깊이 들이쉬면, 늑골이 벌어지고 횡격막이 내려가며 폐가 부풀어 오른다. 폐혈관은 우주가 생명에 내린 뿌리다.
딸꾹질은 들숨이 어긋나는 순간이다. 들이마시려는 찰나, 횡경막이 제멋대로 수축하고 성대가 닫히면서 짧고 단절된 소리가 튀어나온다. 숨이 이어지지 않고 끊기고 멈추려 하면 오히려 더 이어진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기에 강렬한 생명의 중력다. 숨은 다시 들이마셔지고, 이어진다.
날숨은 개별적이다. 식물의 날숨에는 소리가 없고 동물의 언어는 날숨에 실린다. 동물의 언어는 신호에 가깝고, 인간의 언어에서 들숨에 실리는 예외들은 정교한 의미를 담지 못하는 사회적 제스체에 가깝다. 날숨을 통해 내뱉는 인간의 말은 한 사람을 특정하는 흔적이다. 우리는 같은 공기를 마시고 다른 말을 한다. 말하며 공기를 뱉을 때 몸통이 축소된다. 우주를 쥐어짠 ‘나’는 실재보다 왜소하다.
재채기는 날숨이 폭주하는 순간이다. 내쉬려는 찰나, 예상치 못한 자극이 점막을 건드리고, 몸은 과하게 반응한다. 가슴이 요동치고 성대가 격렬하게 열리며 공기가 폭발적으로 쏟아진다. 억제하려 하면 더 강하게 터진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기에 거침없는 생명의 원심력이다. 숨은 다시 내쉬어지고, 흩어진다.
호흡은 코의 일이다. 먼지를 거르고 온/습도를 조절하고, 코 안 쪽 부비동에서는 산화질소를 만들어 호흡 효율을 높인다. 워낙 중요해서 입이 거들지만, 입은 공깃길로 작동할 뿐, 필터도 되지 못하고 부비동도 활용하지 못한다. 입으로 호흡할 경우 구강과 성대 건강이 악화되고, 부비동 기능까지 저하된다. 입은 코의 보조가 아니라 숨찰 때 산소 수급 효율을 증대시키기 위한 안전 장치일 뿐이다.
겨울에는 호흡이 어려워서 호흡이 의식된다. 건조한 겨울 공기 속에서, 들숨은 마치 생의 잔량을 확인하는 일처럼 여겨진다. 숨을 아무리 크게 들이 마셔도 숨이 모자라다. 제대로 된 것을 마시지 못하는 것 같은데 내쉬는 일은 어렵지 않아 제대로 된 것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 공기의 들고 남으로 콧속은 더 메말라 점액에 걸려졌던 불순물들이 딱딱하게 뭉쳐진다. 가습기가 없으면 나는, 코딱지다.
꽃은 콧물이다. 봄이 되면 언땅이 녹듯 콧물의 시간이 시작된다. 비강에 달라붙은 꽃가루가 면역 반응을 일으키고, 면역계는 과잉 대응한다. 호흡이 막힌다. 별 수 없이 입으로 숨 쉴 때, 생명은 우주적 무에 대한 면역 반응임을 이해한다. 우주적 실수로 유(有)가 호흡하지만, 우주는 자신의 실수를 무마하기 위해, 치사하다. 고작 콧구멍에 틀어박힌 우주에 시지프는 난감하다. 시지프가 굴리는 우주의 사이토카인은 코딱지나 콧물인지도 몰랐다. 한 달치 비염약으로 봄을 견딘다. 봄은 꽃이 아니라 약이다.
호흡은 보편성과 개별성의 왕복 운동이자 분리될 수 없는 중첩이다. ‘나’는 몸 안의 우주와 몸 밖의 우주 사이 삼투막이다. 몸 안의 우주는 고요하다. 폐 속 깊이 스며든 공기는 아무런 언어도 갖지 않는다. 들숨이 몸 안에서 기체 교환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그곳에는 말이 없다. 그러나 몸 밖의 우주는 끊임없는 소리와 파동으로 가득 차 있다. 날숨을 내쉬는 순간, ‘나’는 그 소음 속에 자신을 새긴다. 나는 들숨과 날숨 사이의 고요다. 하루오다. 숨을 쉰다, 어제도, 내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