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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에서 헤어지는 어떤 대학생 연인 이야기

서사 최소 수혜자의 최대 행복

by 하루오

사람은 저마다의 소설을 산다는 말은 소설에 대한 모독이다. 아둥바둥 반복되는 노동에 서사는 없다. 범인들은 돈에 질질 끌려다니며 월화수목금토일의 순환 고리 속에 갇힌다. 주인공이라면 응당 가져야 하는 주체성은 돈의 개연성 앞에 납작 엎드리고, ‘남들 만큼’의 클리셰도 따라 가기 벅차다. 서사 결핍을 도파민으로 위무하다가 밈 수준의 일화 몇 개 건진다. 꾹꾹 눌러 쓴 문장으로 구축된 서사의 결정체 앞에서 사람은 사소하다.


내게서 서사가 소멸한지는 오래 되었다. 2014년 이후 시간은 대체로 뒤죽박죽이다. 코로나 팬데믹 덕분에 2020년 전후가 그럭저럭 구분되었다. 돈을 벌었다. 돈을 벌지 못하면 글을 벌었다. 돈도, 글도 신통치 못하고 성실히 나이만 먹었다. 나이 상승선은 일정했으나 연봉 그래프는 급등락했다. 급락 때 우울했고, 급등 때는 급락을 기억했다. 잠시 머물다 갈 간이역이라 생각한 원룸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곳이 임당동이다. 내 먹고사니즘 그래프에 예외처럼 일화 몇 개 찍혔다. 17년째, 나는 간이인간이다.


2025년은 일화마저 부족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봄가을이면 자전거를 타기도 했고, 경주나 포항에 당일이라도 가서 이곳이 아닌 곳을 충전하기도 했다. 최소한한 출근길을 크게 우회해 팔공산 갓바위에라도 들렀다. 올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작년보다 연봉 총액은 떨어질 예정이고, 브런치에 글은 몇 편 더 올렸지만 덜 주목 받았다. 일하지 않을 때면 집, 스타벅스, 도서관 삼각지대에 밀폐되었다. 친구나 지인도 ‘다음에’로 미뤘다. 왜 이렇게 살았느냐면 그러게 말이다. 살만 조금 더 쪘다.


남매지 옆 카페 폰드 3층 테라스가 유일한 차이다. 기온 25도를 넘지 않는 비 오는 날 1년에 두어 번 가곤 했다가 올 가을에는 날씨가 우중충한 덕분에 자주 갔다. 낮 최고 기온 19도인 날, 이젠 쌀쌀해져 올 가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간 날, 그들을 만났다. 내게 오전은 타자 불가침 시간이다. 집중이 잘 될 때라 글을 쓴다. 이날은 글은커녕 오전 내내 수업 준비만 해서 짜증이 신경을 긁을 때였다.


그들은 내 하루치 일화로 충분했다. 그들이 떠난 오후에 별 일 하지 않았지만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내 카페 체류 시간은 다른 손님이 결정했다. 나는 시끄러우면 자리를 떴다. 테라스에는 나와 연인들 두 테이블뿐이었다. 우리는 두 테이블 거리에서 각자 자기 얘기했다. 나는 경북대 AAT 2021년 모의 논제제를 재확인 했고, 연인들은 보기 드물게 조용했다. 속닥속닥, 도란도란, 카페라는 게 본래 그래야 했다. 안심하고 AAT로 지긋지긋해지는데, 어, 남자가 흐느꼈다. 괜한 사연 옆에 멀뚱히 앉아 있자니 어색했지만 내가 여기 먼저 왔다. 나는 일을 끝내야 했다.


여자도 흐느끼기 시작했다. 공공장소의 개연성이 무시되고 주체성이 부각되며 중요한 사생활이 합성되는 모양인데, 어이, 여기 사람 있다. 나는 졸지에 NPC로 전락했다. 아직은 괜찮았다. 그들의 사연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나긋나긋했다. 조용하면 우리는 상호 NPC로 공존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이별 중이라는 걸 추론하지 못할 정도로 나는 무심했다. AAT는 논술의 탈을 쓴 서술형 시험이라 투덜대기 급급했다. 숙고할 필요 없어서 제시문만 많아서 성가셨다. 나는 매년 AAT 수업이 끝나는 수능 다음주 금요일 저녁을 기다린다. 이날도 어서 11월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의자가 빠르고 소란하게 움직였다. 반사적으로 그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여자가 뛰쳐 나갔다. 그때서야 이들이 대학생 연인이라는 걸 알았다. 여자는 회색 후드티 차림이었고, 남자는 통넓은 카고 바지 차림이었다. 둘 다 책가방을 들고 있었다. 처음으로 남자의 혼잣말이 들었다. 울먹임에 짜증이 배어났다.


“아, 또 저런다.”


잔잔하게 마무리되나, 그렇구나, 하며 해외원조에 대한 (가), (나)의 태도 차이를 분석했다. 원조 목적이 체제 안정과 가난한 개인 공리 증대로 차이나는 것은 제시문에 드러났지만, 원조 대상이 체제와 개인이라는 것까지 써야 하는 건 다소 억지스러웠다. 목적에 이미 함의 되어 있었다. 함의된 정보를 굳이 나열해야 하는 게 타당한지 따지며, 정답을 정의하는 교수님의 권력을 부러워 할 때, 남자에게 이끌려 여자가 돌아왔다. 헤어짐을 무기로 투정부리는 여자와 달래는 남자 클리셰 정도로 생각했다.


사회 체제가 안정된다고 해서 내 연애 서사가 복원되지 않을 테니 체제 차원의 지원이 타당하지 않다는 (가)와, 서사빈곤자는 돈/글로만 구성된 신념 체제가 바뀌지 않을 테니 외부 지원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나)가 대립했다. 나는 (가)와 (나)가 복합된 구제불능이라는 케케묵은 정답으로 귀결되었다. 그들은 여전히 조용했다. 1차전보다 언성이 높아졌지만, 내용이 들리지 않았다. 지나치게 얌전한 연인이었다. 나는 이미 귀가 그쪽에 쏠려 있었다. 역시 들리지 않아 논제를 보는 둥 마는 둥했다.


“아, 좀 놓으라고.”


남자가 고함쳤다. 의자와 테이블이 쓰러질 듯 어수선했다. 남녀 모두 감정이 격앙되어 있었다. 바라볼 수 없었지만, 여자가 남자의 옷자락을 붙들려 하고, 남자가 뿌리치는 모양새는 감지되었다. 모른 척, 저수지나 바라봤다. 윤슬은 못 본 채 올해 카페 폰드는 마무리되겠구나 생각하면서도 따귀 때리는 소리가 예감되어어 불안했다. 테이블과 의자가 바닥에 함부로 끌리는 소리, 울음이 밴 투닥임은 몸싸움의 개연성으로 흘러갔다. 내 매뉴얼에 없던 상황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들의 개연성보다 내 주체성을 존중해야 했다. 나는 판단을 내릴 수 없어 심리적으로 엉거주춤했다.


이번에는 남자가 뛰쳐 나갔고, 여자가 뒤따라 나갔다. 여자가 뒤따를 때 의자에 놓아뒀던 가방을 챙겨 드는 모습이 귀여웠다. 남자가 여자에게 매달리는 서사 아니었던가? 여자가 먼저 헤어지기를 선언했고 남자가 슬퍼하자 여자가 미안해서 남자 곁을 뜨지 못하는 서사로 정정했다. 둘 다 첫 연애이려나. 남자는 어려 보였다. 요즘은 군대 다녀온 대학생도 어려 보여 확신할 순 없었다. 아무튼 마무리 되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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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원조를 롤스의 차등의 원칙으로 설명해야 할 때, 남자가 저수지 쪽으로 다가갔다. 뭐지, 저수지로 들어가려나.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지켜봤다. 남자는 저수지 경계 바위에 주저 앉아 울었다. 내 자리에서 들릴 정도로 토했다. 그래 뭐, 이 순간 너에게 이 세상 주인공은 너일 것이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멀리서 지켜 봤다. 뒤따라온 여자가 가방을 길가에 던져두고 남자 곁으로 가서 토닥였다. 저 가방에 책은 몇 권이나 들었을까까, 궁금해 하는 사이, 남자는 여자를 거부하며 저수지로 걸어 들어갔다.


어라, 물이 차가울 텐데? 지금 중간고사 기간일 텐데? 112와 119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내가 남자를 구할 수 있을지 계산했지만 답은 서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헤엄친 게 10년도 넘은 것 같은데 할 수 있으려나. 그나저나 20대 초반의 연애 치고는 지나치게 격정멜로 아닌가? 여기 오래 전에 끝난 세상도 있는데 뭐 그리 세상 다 끝난 것처럼 구나. 여자가 뒤따라 가 남자를 붙잡았다. 격정은 무릎 아래 정도까지였지만, 조금 부러웠다.


저수지에서 남자가 먼저 나왔고, 여자가 뒤따랐다. 남자의 바지가 진하게 물들었고, 여자는 티나지 않았다. 비련의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을 뿌리치며 달렸고, 여자 주인공은 바닥에 놔 두었던 가방을 챙기고 남자를 따라 갔다. 남자가 쫓아오지 말라며 뭐라 소리쳤지만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리 투닥대다가 허리 아래 개연성으로 관계가 잠깐 회복되더라도 결국 헤어질 것이다. 너희는 이별이 낯설 뿐이다.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어쩌면 내가 될 수도 있다. 세상과 끊어지는 건 별일 아니다.


20년 전, 장거리 연애하던 시절, 우리는 헤어지기 위해 굳이 만났다. 우리가 완전히 끝내지 못한 것은 늘 전화상으로만 헤어지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우리는 헤어짐의 의례가 필요했다. 그날 우리는 클리셰를 따랐고, 내 모습은 딱 저수지 남자 같았다. 내 감정에 못 이겨 카페에서 뛰쳐 나갔다. 돌아가는 시외버스인지 고속버스인지 안에서 창에 머리를 박고 울었다. 대낮이었다. 나중에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여자친구는 그날 헤어질 생각은 없었고, 우는 남자가 뛰쳐나간 자리를 수습을 하며 부끄러웠다고 했다. 나는 미안했다. 어이, 남자야. 나는 그랬다. 그리고 나는 같은 이유로 끝내 헤어졌다.


논제는 바다에 물방울 하나 떨어뜨리는 정도의 원조를 공리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논술 준비한 학생이라면 당연히 맞춰야 하는 변별력 없는 문제였다. 갑자기 쌀쌀해진 탓인지 아무도 테라스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일화 한 방울이 흡족해 하며 그날의 수업 준비를 마무리했다. 최고 기온 19도라도 그늘에 바람이 불어 손이 조금 시려웠다.


그들 자리에 음료가 남아 있었다. 반납은 셀프였지만, 뭐, 경황이 없었을 것이다. 남자는 연한 초록색을 거의 마시지 않았고, 여자는 연한 노란색을 반 이상 마신 상태였다. 둘 다 얼음이 가득했다. 이런, 나는 연세대 2021년 모의 논술 문제를 생각했다. 추울 때는 따뜻해야 상대에게 더 온화해진다.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들의 의자를 정리하고, 그들의 흔적을 들고 1층으로 내려 왔다. 직원은 음료 제조 중이라 내가 뭘 갖고 왔는지, 내가 나갔는지조차 모른다.


방으로 돌아왔다. 세상이 이런들 어떠하지도, 저런들 어떠하지도 않는 물속 같다. 이 방에서 만든 마지막 서사는 애엄마가 되어 있으려나. 올해의 일화라면 에프킬라를 녹일 듯이 분사해 지네 잡은 정도. 사람은 저마다의 소설을 산다는 말은 소설에 대한 모독이다. 소설은 서사 최소 수혜자를 위한 시간 복지다. 나는 또 독자이고 말았다. 여기는 임당동이고, 나는 17년을 멈춰 있었다. 그뿐이다. 천장 LED 전등 안에 죽은 날파리들의 잔해가 지저분하게 끼어 있다. 숨이 막힌다면 기분 탓이다.


저수지 밖을 나간 남자의 바지 아랫단을 기억한다. 새 여자친구 만나라. 나는 글렀다. 언제나 따뜻한 아메리카노만 마시는 불구의 진심이다. 편입 논술 필요하면 연락하고. 영남대생을 경희대생으로, 충북대생을 고려대생(경영학)으로도 만들어봤다. 그들의 서사는 비약했을 것이다. 계명대생과 어느 수도권 4년제 대학생은 연세대 간호학과 1차에 논술 합격했지만, 둘 다 자소서에서 떨어졌다. 서사 결핍이 이렇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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