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쳐 온 천국
1인 가구에게 초중고등학교는 혐오 시설이다. 차라리 화장장이 이웃 친화적이다. 초등학교는 민식이법 때문에 차가 다니기 불편하고, 마구잡이로 날뛰는 웃음소리도 새되다. 중고등학교는 청소년보호법으로 무장한 양아치 본진이다. 학교가 내놓는 평범한 학생들도 떼지어 다니는 습성으로 시끄럽고 무례할 확률이 높다. 집 근처에서 담배라도 피우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초법적 존재는 합법적 자연 재해다. 내가 잃을 게 있으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대학교는 위치 선정에 따라 극단적으로 갈린다. 학교에 가까울수록 지옥도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 초등학생이야 낮, 저녁 잠깐이고, 중고등학생 소음도 깊은 밤이면 어떻게든 자연 소멸된다. 그러나 대학생은, 이 씨발 것들은 자정을 넘겨 밤새 떠들어댄다. 내가 마동석이 아니라서 그랬을까, 말해도 소용없었다. 주변 방 중 하나가 세입자 친구들의 아지트가 되면, 마음속에서 수차례 살인이 반복된다. 봄, 가을 밤 창을 열어둘 때는 두세 건물 떨어진 곳의 술자리는 동네를 울리는 소음이다. 이런 일로 경찰 부르자니 행정 낭비다. 내가 임당동까지 쫓겨 온 이유다.
임당동은 대동/조영동으로 완충된다. 학생들이 대학교 입구까지 도보 10여 분 거리를 걷지 않는 덕분에 비교적 대학생 청정지대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집단 거주해서 완전히 조용하지 않지만, 이들은 다음날 출근해서 대체로 지켜지는 ‘선’이 있다. 내가 거주하는 건물은 방이 좁아서 집단 거주하지도 못했다. 나 같은 뜨내기나 얌전히 머물렀다. 인근에 임당초등학교가 있지만, 내 생활 동선과 겹치지 않고, 나는 애초에 차도 없어 초등학교는 내게 무해했다. 소리에 과민한 내게 천운 같은 동네다.
대학가는 이점이 크다. 우선 음식이 다양하고 저렴하다. 분식, 한식, 중식, 일식, 양식에 베트남식, 할랄 음식까지 단위 공간당 음식 다양성은 일반 주택가를 상회한다. 아침 8시에 순두부찌개나 뼈다귀 해장국을 먹을 수도 있고, 밤 9시에도 육회비빔밥을 먹을 수도 있다. 짜장면이나 돼지국밥은 대구보다 1,000원~2,000원 싸다. 교촌을 제외하면 어지간한 치킨 브랜드도 배달권에 있어 치킨은 배달앱에서 항상 할인 중이다. 내겐 무의미하지만, 누군가에겐 아기자기한 카페도 강점이겠다.
편의 시설도 넘쳐난다. 결혼해 본 적 없는 1인 가구주는 나이만 먹었을 뿐, 생활사는 대학생과 다를 바 없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헬스장, 필라테스, 세탁소, 빨래방, 코인노래방, 할인마트, 곳곳에 널린 편의점과 PC방에 다이소, 올리브영, 내과, 정형외과, 이비인후과까지 도보 거리다. 버스 정류장에 스무 개 가까운 노선이 지나가고, 지하철역 종점이라 외출할 때는 늘 앉아 간다. 한적한 전원 생활과 도시 인프라가 교차하는 곳, 임당동이다.
무엇보다도 대학교 캠퍼스가 주는 이점이 압도적이다. 캠퍼스는 무료로 운영되는 인근 주민의 거대 정원이자 안전한 산책로다. 도심에 초록이 이렇게 크고, 다양하게 빽빽한 공간도 드물다. 대학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심겨진 나무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잔디도 잘 가꿔져 있어 눈이 시원시원하다. 분지를 가로지르는 바람 덕분에 나뭇잎들이 여름에는 사각되고, 가을에는 서걱대는 소리들이 공기에 스며 공간이 촉각적이다. 캠퍼스에선 아스팔트 위에서 차보다 사람이 우선되고, 깊은 밤에도 10대 불량아들이 굳이 찾지 않는다. 밤 11시든, 새벽 5시든, 이곳에서 마주치는 사람은 덜 경계되었다. 시도 때도 없는 걷기 맛집, 대학 캠퍼스다.
걸을 때, 대학생은 맛있는 풍경이다. 내가 거쳐간 것들이자 내가 잃어버린 것들이 되새김질 된다. 내가 그랬듯, 너도 그랬구나. 내가 그랬지만, 너는 그러지 않구나. 눈으로 된 단짠단짠이다. 나이들고 보니, 젊음은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곱다. 내 주거지 주변 소음이 싫은 것이지, 초, 중, 고, 대, 어리고 젊은 것들의 ASMR은 초록보다 싱싱하다. 거리, 식당, 카페에서 소리가 풀빛이 될 때, 너희는 무엇이 되려고 하구나, 너희는 어딘가로 가려하는구나, 그 기운이 고맙다. 너희는 매년 갱신되며 내 풍경은 20대 초중반의 활력으로 한결 같다. 너희들 속에 있을 때 내 나이가 착각된다. 침몰하는 시대도 잠시 잊힌다. 너희 속으로 나도 슬쩍 휩쓸리며 원초성이 충전된다. 삶의 주름이 다려진다.
도서관은 내 숲이다. 지역 주민도 10만원으로 1년 등록 후 이용할 수 있다. 너희는 식물처럼 조용히 미래를 광합성한다. 20대로 구성된 조용함에서 피톤치드가 책 냄새로 뿜어져 나온다. 내 또래나 어르신들도 간간히 보였지만, 도서관에서는 조용하면 다 20대다. 이들 사이에서 읽고 쓰거나 수업을 준비했다. 학교 측에서 제재하지 않아도 시험 기간은 피했다. 아저씨 하나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시험 앞둔 학생들에게도 민폐다. 그러나 공부하지 않던 학생들이 모여 북적거리고 산만하면 내게도 민폐다. 너희 학교니 내가 피한다. 대신 시험 끝난 주말 도서관에 집착하는 편이다. 내 밥벌이가 주말에 몰려 있어 1년에 몇 번 이용할 수 없지만, 스케줄이 조정되면 꼭, 간다. 특히 12월 31일 24시 300석 안팎의 열람실에 나 포함 3명인가 있을 때(다들 구석 자리에 있어서 처음엔 나 혼자 있는지 알았다), 내 2025년 출발이 산뜻했다.
도서관이 내 해답인지,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단순한 생체 구조도 그 환경에 잘 적응하면 진화는 종결된다. 나는 20대에 멈춘 채 중년을 넘어가는 중이다. 생태계를 공유할 사람이 없다. 외롭진 않지만, 이렇게 살아도 되나 의구심은 든다. 상호 NPC가 되어주며 공존하되 공생하지 않는 거리감, 누구나 이방인이어서 내 삶이 이방인으로 수렴되어가는 사태가 평온하다.
여기는 임당동이다. 아직 지방대 소멸 압력을 버티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