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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속에서 조립한 어떤 베트남 부부 이야기

삶의 고지서를 당신은 받들었고, 나는 피하는 중이다

by 하루오

이것은 쓰레기 속에서 건진 이야기다. 버려졌다는 사실만으로 끝나버린 줄 알았던 기록에서, 나는 아직 마르지 않은 목소리를 들었다. 2022년 7월 17일, 하노이 공항에서 란은 자신의 운명을 예상이나 했을까. 1년 8개월 후, 란은 임신한다. 2001년생 덕과 2003년생 란은 25년 3월 10일, 득남했다. 베트남에서 22세 여성의 출산은 약간 빠른 평균에 속했다. 가스, 전기요금 및 각종 고지서 무더기를 주워 올 때, 나도 이런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지는 상상도 못했다.


평소 버려진 것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버려진 것은 사물의 종말이 아니라 이야기의 종말이기도 하다. 구매-사용-배출의 서사를 상상하면 버려짐은 대체로 타당하지 않다. 나는 버려지는 택배 박스의 효용이 아깝다. 그래서 이야기라도 남기려고 한다. 이야기되는 한 그 무엇도 완전히 버려질 수 없으므로 부당함이 약간이나마 위무된다. 쓰레기화(話)는 버려진 것에 대한 예의이자, 버려졌던 내 이삼십대가 동료에게 건네는 생화(生話)다.


처음에 눈이 간 건 K-POP 노트였다. 80년대 홍콩 배우 사진이 들어간 학용품처럼, 블랙핑크 사진이 들어간 노트 표지가 눈에 띄었다. 쓰레기 더미 옆에 쪼그려 앉아 펼쳐 봤다. 한국어 공부 흔적이 있었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봤기에 시시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노트 아래 무더기 단위로 버려진 고지서는 낯선 이야기였다. 외국인의 가스요금과 전기요금 사정은 어떠할까, 주변 뭉텅이까지 통째로 들고 집으로 왔다.


세 개의 주소지에 여러 이름이 보였다. 일단 이름별로 분류했다. 덕, 란, 푹, 꽝과 한국인 규민으로 나뉘어졌다. 덕, 란이 중심이었고, 푹, 꽝, 규민은 몇 장 안 되었다. 덕, 란의 생년월일을 정확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의료보험증까지 함께 버린 탓이다. 덕은 2025년 4월 1일, 란은 2025년 9월 5일에 갱신되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분류하다가 푹의 가스요금에 의문이 생겼다. 24년 10월 8,640원, 11월 14,040원, 12월 26,110원은 계절과 맞았다. 베트남에서 왔으면 같은 겨울도 조금 더 춥게 느껴질 텐데, 알뜰하게 살았구나 싶었다. 1월 38,210원으로 50% 가까이 증가한 건 뭐, 사정이 있을 수도 있었다. 유학생이라면 방학이라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을 테고, 노동자라면 일이 줄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2월부터 5월까지 줄곧 5만 원이 유지되었다.


이 의문이 풀린 건 인근 산부인과에서 받은 선천성 기형아 선별검사 결과 보고서 덕분이었다. 모든 항목이 정상이었지만 다운증후군 위험도에서 ‘고위험군 [1:6]’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끝내 출산한 걸 보면 문제없는 모양이었다. 이런저런 검사 비용은 덕과 란에게 벅찼을 것이다. 포기한 내 결혼이 쑥쓰러웠다. 그들보다 내가 더 벌 테지만, 나는 더이상 돈에 쫓기고 싶지 않았다.


2022년 5월 비자 발급을 위해 받은 란의 건강검진 기록표에 따르면, 란은 호치민시 경계에 살았다. 한국 기업, 공단 근로자, 유학생, 국제결혼 중개 중심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고향 여부는 몰라도 베트남에서 마지막으로 거주한 곳인 점은 분명했다. 란은 고등학교 때부터 한국행을 계획했고, 이후 비자 심사도 순조로운 모양이었다. 7월 17일 부산행 베트남 항공사 이코노미 티켓도 함께 발견했다. D4비자(어학연수)였다. 서울도 아니고, 부산도 아니고, 대구도 아니고, 경산으로 온 것인지는 모른다. 어느 학교로 진학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보다 조용한 곳을 찾을 자신이 없어 16년째 머문다.


란의 남편이 될 덕은 경산 안쪽으로 더 들어간 사립대 어학연수생(2022.09.26. ~ 2024.02.28.)이었다. 어학연수생 신분으로 불법 취업했으리라는 예측은 한국 경제 하부에서 발생하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였다.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도 밤에 구미에서 물류를 나르고 낮에 학교에 나와서 잤다. 출석만 하면, 학교는 아는 듯 모르는 듯 묵인했다. 어학연수생 신분이 끝난 다음에는 F2비자를 발급받은 모양이었다. 이때부터 덕이 수상해졌다. 25년 3월 자동차세, 4월 과태료 고지서가 있었다. 차량을 소유하려면 F2 비자가 있어야 하고, F2 비자를 받으려면 한국에서 통상 5년은 체류해야 하는데, 01년생 덕과 시기가 맞지 않았다. 좀 일찍 한국에 온 걸 가정해도 2019년-2020년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였다. 1999cc 차량을 소유하고, 원룸에서나마 결혼 생활을 영위할 정도인데도, 의료보험료는 지방 가입자 최저 수준으로 잡혀 있었다. 내 상상 속에서 덕은 불법과 탈법 사이에서 아등바등했다.


란이 같은 학교에 입학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추론하고 싶진 않았다. 한 여성이 성인이 되어 처음 만난 남자와 몇 년, 혹은 몇 달의 연애만에 가정을 꾸리기는 청춘이 아까웠다. 20대 초는 생물학적으로 육아를 감당하기 적합한 나이지만, 란의 세계에서 란은 조금 더 나은 사람을 만날 기회를 놓쳤다. 외국인 유학생, 노동자 등 같은 국적의 남성이 많으므로, 연애 시장에서 베트남인 여성은 절대 갑이었을 것이다. 물론, 진실은 모른다.


한국에 온 이후 란의 기록은 2024년 5월에서야 등장했다. 종합소득세 고지서였다. 2,100원을 환급받는다는 내용은 별 거 아니었지만, 주소지가 덕과 같았다. 그 시기 덕과 란은 조영동(스카이빌)에서 동거했다. 5월에 임신했으니 설득력 있었다. 직면한 외로움에 쫓긴 결과라면 큰 기회비용을 놓친 셈이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게, 이리 재고 저리 재는 것보다 일단 저지르고 책임지는 게 낫지 않은가, 내 신세를 보면 란이 타당했다.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임당동(그린빌)으로 주소지가 바뀌었다. 원룸촌에서 이사는 흔한 일이었고, 아이가 태어날 테니 조금 큰 집으로 옮기는 것의 개연성도 충분했다. 그러나 푹의 자료가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든다.


응우옌 딘 푹 자료는 두 개밖에 없다. 앞서 말한 푹의 가스요금 고지서는 임당동 것이었다. 나머지 자료 하나는 5월 10일에 4월분 가스요금을 결제한 카드 영수증이었다. 이걸 왜 푹이 내느냐는 것이다. 고지서대로라면 2025년 4월 임당동에는 덕과 푹이 함께 살고 있었다. 그 주소지에 란은 6월부터 등장했다. 란의 6월 가스요금 고지서에 1-5월은 0원이었다.


이야기를 다시 짰다. 이 부부는 조영동에서 동거하다가 결혼하면서 실거주지를 임당동으로 옮겼다. 푹이 살던 집을 바꿔 준 모양이었다. 그러다 6월 푹의 월세 계약이 끝나는 지점 란이 정식으로 계약한 것이다. 그렇다면 푹이 가스비를 대납해준 셈이다. 실제로 덕의 벌이가 시원찮고, 그걸 푹이 우정으로 메꿔주는 모양새면 납득 못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푹과 꽝은 형제로 예상했다. 응우옌 딘 푹, 응우옌 반 꽝. 응옌은 한국의 김 씨만큼 베트남에 흔한 성씨지만, 딘은 장남에게 주로 붙이고 반은 둘째나 셋째에게 붙이는 가운데 이름이라고 했다. 꽝은 조영동 다른 원룸에 살았다. 꽝도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 만큼 F2비자를 받았을 것이다. 꽝은 25년 1월 경기도 이천시 중리동에서 주차 위반을 했고, 4월에는 이천에서 중리동 방면 고속도로 통행료를 미납했고, 6월에는 평탱시에서 과속했다. 경산을 거점으로 하되 경기도를 오가며 일하는 모양이었다. 푹과 꽝의 교류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 고지서 무더기가 함께 있는 걸 보면, 푹과 꽝이 친구든 형제든, 베트남인 커뮤니티가 작동함은 분명해 보였다.


재밌는 건, 꽝과 김규민이 함께 사는 사실이었다. 2025년 2월, 3월분 전기요금 고지서 두 개가 같은 주소였다. 김규민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노동자 그룹이 아닌가 싶다. 저녁 5~6시면 봉고차들이 오가며 남성 노동자들이 우르르 내리곤 했다. 임당동-조영동은 인근 공단, 농장의 외국인 숙소인 셈이다. 김규민이 십장 노릇한다는 생각은 어쩌면 자국우월주의적인 편견인지도 몰랐다. 임당동에서 한국인은 개인으로 살지만, 외국인들은 집단으로 산다. 10년 이상 갖춰진 베트남 커뮤니티 안에 김규민이 소수자로 함께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뭐가 됐든, 덕과 란의 결혼식에 김규민이 뻘쭘하게 앉아 있는 상상을 하면 재밌다.


물론, 결혼식 자체가 없었을지도 몰랐다. 임당동에서 월세를 살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예식장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소나무 동산에서 웨딩 촬영하던 부부 중 하나가 어쩌면 덕과 란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나도 먼 하객이었다. 축하 선물이라도 보낼까 하다가 괜한 오지랖을 접었다. 그들의 부주의 때문이긴 하지만, 내 주소를 아는 낯선 이가 내 사정까지 아는 건 끔찍했다.


KBS는 성실하게 계약자불명에게 TV 수신료를 요청했다. 덕과 란은 안 낸 모양이었다. 미납 요금이 1년치를 넘었다. 그리고 민동식 씨, 당신은 어떤 사람일까. 2016년 10월~2017년 1월 KT 미납 요금이 아직도 임당동에 청구되고 있었다. 3월 31일 납기일 때는 170,970원이더니 8월 29일 납기일에는 139,200원으로 줄었다. 찔끔찔끔 내는 건지, 깎아주는 건지, 이 세계의 숫자는 모르겠다. 이걸 왜 덕과 란이 보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이걸 왜 이제야, 그것도 신생아 선천성 대사이상 선별검사 보고서까지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검사 결과, 아이는 건강해서 다행이다. 2032년, 그 아이가 임당 초등학교에 건강하게 입학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아이는 알아야 한다. 너를 낳은 이상 네 엄마는 아주 오랫동안 여기에 그곳에 갈 일은 없을 것이다. - 다음은 혹시 놓친 게 있을까봐 다시 쓰레기장에 가서 주워 온 쪽지에 있던 기록이다. (란의 비자와 비행기 티켓도 이때 건졌다.) 란의 한국어 숙제인 모양이었다. 오타 그대로 옮긴다.


안녕합니다. 오늘 제가 자주 가는 커피를 소개하겠습니다. 그 가게는 대구의 유명한 소핑물 심해있습니다. 그 상점은 커피 케이크와 꽃을 팝니다. 메뉴에는 케피, 복숭아치 케이크 아이스크림, 밀크티 등이있다. 장미꽃, 튤립 꽃 그리고 카나리아 같은 꽃들이 있다. 거계 안을 꽃과 인테리어, 그리고 책상이 미니멀 한 현대적인 스타일로 꾸며져 있어 편안한 아늑한 공간을 제공합니다. 나는 커피숍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물과 케이크는 있맛있고 사진찍 사진찍는 코너가 많고 직원들이 친절하고 열정적이 기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좋 아하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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