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명 받지 못한 그림자들
별로 주목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비둘기 개체수가 급감했다. ‘닭둘기’라 불리며 세균을 퍼뜨리는 오염원 취급받았지만, 막상 안 보이니 허전했다. 사람이나 차가 지나가도 뒤뚱뒤뚱 걷는 걸 보며 처음, ‘새도 사실은 날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새들에게 하늘이 날아야 하는 감옥이고, 땅이 걸을 수 있는 해방구라면, 비둘기와 나란히 걷고 있을 때, 하늘을 날지 못하는 나는 덜 하찮았다. 비둘기는 자유롭게 땅을 거닐다가 고양이에게 잡아 먹혔을까. 골목 전봇대 아래에서도, 캠퍼스 잔디밭 위에서도 자취를 감췄다. 나는 실업에 먹히지 않고 임당동에서 자취 중이다.
로드킬 당한 새는 대체로 비둘기였다. 로드킬은 문명의 폭력이었으나 차의 크고 사나운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인과응보 아닌가, 비둘기의 납작해진 사체를 볼 때마다 아직 살아 있는 나를 생각했다. 원룸 옥상에서 죽은 비둘기 앞에서도 나는 잠깐 머뭇거렸다. 발견했을 때는 이미 살이 썩어 뼈대와 뱃속의 플라스틱 이물질이 드러난 채였다. 방치된 빨래 건조대 아래 날개가 눌려 있었다. 수명을 다한 후 건조대에 눌린 건지, 건조대에 눌려 죽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죽음이 드러날 만큼 비둘기가 흔할 때였다.
비둘기 자체보다는 비둘기가 사라진 사태가 뜨끔했다. 멍청해질 자유란 없다는 통보 같았다. 닭둘기 이전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자 부산 용두산 공원의 낭만이었다. 그러나 닭둘기 이후 비둘기는 한없이 멍청해 보였다. 멍청한 자유, 멍청한 평화, 멍청한 유유자적, 비둘기였다. 비둘기가 싫었다면 그건 질투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부자유로 오염된 밥벌레였다. 닭둘기 시절, 나는 내 입에 풀칠하기 급급했다. 제대로 된 성인으로 변신하지 못할 바엔 나놈, 빨래 건조대 아래 비둘기처럼, 그래 고히 잠자라, 그런 기분이었다. 먹고 살 만해지니, 세상 멍청한 얼굴의 비둘기가 보고 싶다. 그리고 나도 무언가가 닥쳐 오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괜히 하늘을 올려다 봤다.
백로도 줄었다. 아니, 왜가리인지도 몰랐다. 백로는 희고 무리 생활을 하고, 왜가리는 회색에 단독 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내가 본 것은 희고 혼자였다. 사실 비둘기보다 크고 목이 긴 흰 새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 없었다. 비둘기가 도시형 새라면 백로나 왜가리는 자연형 새였다. 비둘기와 왜가리, 3음절 운율을 맞추고 싶지만, 수면 위 흰 그림자가 부러웠기에 일단 백로이기로 한다. 나도 초록 사이에 혼자 고고할 수 있는 흰빛이 되고 싶었다. 백로든 왜가리든 여름철새지만 점점 텃새화 되어 가고 있다. 나도 단칸방을 뜨지 못하고 열심히 인생 나가리 중이다.
자연판 [난쏘공] 같은 흔한 이야기다. 대임지구 개발 때문에 백로가 쫓겨 났다. 논밭이 있을 때, 백로는 그 길을 관통할 때 흔히 보던 자연이었다. 백로를 잡새 취급할 수 있는 풍부한 ‘자연감’이 든든했다. 가로등 하나 없이 달빛에 의지하며 논길을 걷던 밤, 벼 사이에서 튀어 나온 흰 빛이 한 줄기 선으로 밤하늘을 가로지르던 장면을 기억한다. 달빛으로 광합성하는 생명 현상이라도 목격한 것 같았다. 언젠가 이 길을 연인과 같이 걷고 싶었지만, 나가리되던 인생은 계발되지 않았다. 달빛이 스산해졌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지만, 새는 날개가 있었다. 옮겨 가면 그뿐이었다. 백로는 남천과 금호강에 여전히 흔했다. 대임지구 개발은, 백로 입장에서는 별 볼 일 없는 휴양지 하나 잃은 것인지도 몰랐다. 드문드문 남매지까지 날아오기도 했다. 물가에 앉은 백로를 길고양이가 노리며 은밀히 다가갔지만, 백로는 작은 기척에도 날개짓 툭툭, 몇 번 만에 저수지를 가로질러 가버렸다. 백로의 꽁무늬를 보며 고양이의 기분을 이해했다. 백로가 잡히길 바란 건 아니지만, 날개가 없어 땅에 달라붙어 있을 수밖에 없는 고양이와 나의 신세가 적막했다. 그래도 아직 우리 동네 허공에 그어질 흰 빛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달빛 하나 켜둔 것 같았다.
비둘기와 백로가 사라진 자리를 까마귀가 채우는 중이다. 잡식성과 높은 지능 덕분에 도시에 살아남기 용이한 모양이었다. 까치는 행운, 까마귀는 악운을 상징하는 문화적 편견을 씌우지는 않는다. 나는 설이 번거로우므로 까치에게 갖는 어드벤티지도 없다. 까치가 운다고 좋은 소식이 온 적도 없었다. 그래도 까마귀가 좀 더 탐탁치 않다. 까치보다 더 시끄럽다. 까마귀는 더 자주 울었고, 그 울음은 노래가 될 수 없었다.
나는 숲세권에 산다. 창만 열면 길 건너 작은 숲이다. 새들은 유독 아침에 기운 찼다. 참새의 합창 위에 비둘기보다 작은 이름 모를 새들이 제각각 화음을 얹었다. 나는 직박구리, 찌르레기를 구분할 줄 모른다. 왕관을 쓴 것 같은 후투티는 본 적 있지만 소리를 모른다. 모르는 소리로 된 아침은 신선했다. 계절 따라 뻐꾸기인지 소쩍새인지 모를 소리도 가까이에서 들렸다. 새소리를 듣고 있으면 수면과 각성 사이의 지저분한 경계가 정돈되었다. 생이 재시작되는 감각이었다. 그러나 까마귀가 등장하면 난장판이 되었다. 까치는 간간히 스타카토로 짧게 치고 빠져 임팩트를 더했지만, 까마귀는 밑도 끝도 없이 울어댔다.
까마귀는 ‘까악, 까악’ 울지 않았다. 그릉그릉, 갸릉갸릉 등, 새들 중 가장 많은 알파벳을 가진 새가 아닌가 싶었다. 까마귀 본연의 탁성 때문에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한 번은 고장난 기계처럼 소리를 마구잡이로 쏟아내기에 까마귀를 지켜본 적 있었다. 까마귀는 공원 가로등 위에서 한참을 울어대더니 똥을 쌌다. 맑은 물에 은행 껍질이 섞여 있었다. 덜 익은 은행을 먹고 배탈난 듯했다. 똥 싸는데 내가 방해되었던 것 같아 그날만큼은 인간을 대표로 까마귀들에게 미안했다. 까마귀가 울어댈 때 ‘똥 쌀 때는 까마귀도 안 건드린다.’가 속담처럼 들렸다.
까치는 가장 호전적인 새다. 까치 두 마리가 밥 먹는 고양이 꼬리를 집요하게 공격하는 걸 본 적 있다. 캠퍼스 내에 설치된 고양이 밥센터를 까치는 자기네 밥센터로 여긴 모양이었다. 2미터쯤 떨어져 밥 먹는 고양이 꼬리를 찧고 빠지는 형태로 공격했다. 시끄럽게 울어대면서 거리를 조금씩 좁히고 공격 빈도를 높였다. 고양이가 마음 먹으면 까치를 잡는 건 일도 아닐 텐데, 고양이는 성가셔 할 뿐 그냥 제 밥 다 먹고 유유히 사라졌다. 고양이가 물러서도 까치는 쫓아가며 한참을 울어댔다. 이 성깔을 까마귀한테 푸는 걸 종종 봤다. 까마귀는 덩치도 더 컸지만 번번히 피했다.
까치가 까마귀를 쫓아낼지는 글쎄다. 도시화된 까치는 제 집도 제대로 못 지었다. 지난 봄, 스타벅스 3층 창가에 전봇대에 까치 한 쌍이 나뭇가지를 물어와 집을 짓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집이 모양새를 갖춰 가는 걸 보는 재미가 생기겠구나 기대했는데, 이 녀석들은 며칠 깔짝대는 듯하더니 나뭇가지 몇 개만 남기고 사라졌다. 너희도 집이 없다면, 번식이나 제대로 하겠니, 하며 내 신세를 돌아봤다. 뭐, 나도 새됐다. 우리는 동류였다.
우리 동네엔 새가 많다. 제비도 있다. 나도 있다. 아마 당신도 있을 것이다. 별로 주목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