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때문이었다. 태우에게는 하루 한 알 강장약도, 주말에 몰아넣은 잠도 소용없었다. 왜 사느냐고 물으면 그냥 웃었다. 울 수는 없었다. 삶에 의구심을 가지며 고통 받는 것은 취업 전까지였다. 취업 후의 삶이란 절반의 자포자기임을 인정하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큰아들이 벌써 열다섯 살이었다. 차라리 간을 빼놓고 다닐 때가 좋았다.
습관적으로 간구(肝口)를 여닫았다. 거래처에서 클레임이 들어오거나 팀장에게 욕먹을 때면 화장실 변기에 앉아 간구를 벌리고 있었다. 담배 한 개비 피는 시간이면 간에 고인 열이 식었다. 옆 칸에 사람이 들어와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을 때, 태우는 그 사람도 열을 배설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빌딩 어딘가에, 전국 곳곳에, 전세계 어디서나 누군가들이 동시에 변기에 앉아 간구를 벌린 채 흐리멍덩한 표정을 짓고 있을 걸 생각하면 씁쓰레한 웃음이 났다. 변기 칸에서 물 내리는 소리 없이 나오는 사람들과 마주칠 때, 시선을 비켜줌으로써 서로의 사정을 모른 척해주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팀장이 된 이후부터 간을 빼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간이 아무리 무뚝뚝해도 오래 빼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간은 표면이 꾸덕꾸덕해지며 끝이 굳어가기 시작했다. 아내가 굳은 부분을 비스킷처럼 떼 먹어보다가 뱉었다. 흰 곰팡이 핀 귤 맛이 난다고 했다. 아이들이 퍼먹은 부분이 재생되는 데도 보름 남짓 걸렸다. 위험을 예감했다. 다시 몸속에 들어간 간은 무던하게 제 기능을 했다. 간이 없던 습관 덕분에 간이 있는 태우도 간이 없는 것처럼 그럭저럭 잘 지냈다. 간구는 잊혔고, 잊힌 사이에 사라졌다.
태우가 간구를 다시 떠올린 것은 어젯밤 장인의 입원 소식을 듣고 나서였다. 장인은 지방간 수치가 높은데도 술을 끊지 않았다. 볼 때마다 황달기가 진해진다 싶더니 기어이 간성혼수가 왔다. 아내가 차를 끌고 A시로 내려갔다. 태우는 퇴근하는 대로 고속버스로 내려가기로 했다. 혹시라도 간 이식을 해야 할까봐 불안해 어젯밤에도 한 숨 못 잤다.
출발 직전, 토끼와 거북이가 버스에 올랐다. 토끼가 앞서고 거북이가 뒤따랐다. 각자 제 몫의 톨 사이즈 냉커피를 들고서 좌석 위의 번호를 눈으로 더듬었다. 태우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 자는 척했지만 실눈으로 그들을 좇았다.
토끼는 귀를 빼면 160 언저리 키에 체구가 왜소했다. 지나치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얼굴 털이 누렇게 떠서 이마를 적신 물기가 식은땀처럼 보였다. 용왕이 간이 필요하다고 해도 이런 토끼의 간은 걸러야 할 듯했다. 거북이는 180이 넘는 거구였다. 영화 속에서 좀비를 맨주먹으로 때려잡는 사내처럼 가슴이 두껍고 팔뚝이 토끼 머리통만 했다.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 양복이 위압적이었다. 이들은 태우 뒷자리에 앉았다.
태우는 신입 시절 만난 거북이를 떠올렸다. 거래처 접대를 마친 새벽 2시, 술이 깨지 않아 길바닥에 퍼질러 있을 때 거북이가 다가왔다.
“힘드시죠?”
세련된 양복 차림의 거북이가 갯내 나는 미소를 지었다. 거북이라니, 자신이 정말 취했나 보구나, 하며 태우는 실실 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차피 곧장 집에 가기는 틀렸고, 다음 날은 휴일이어서 거북이의 말을 넙죽 받아 물었다.
“이 시간에 거리에 흘러 다니는 넥타이들,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서로의 푸념이 공유되었다. 태우의 직장 상사 욕을 거북이는 용왕을 개복치 같은 작자라며 맞받았다. 공감대가 무르익자 태우는 이미 다 아는 레퍼토리로 영업을 시도하려는 거북이가 면구스럽지 않도록 먼저 간구를 보여줬다. 요즘 사람들 다 간이고 쓸개고 빼놓고 다닌다고, 그렇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고. 거북이는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다가 고맙다고 했다. 간을 집에 두고 왔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으며 거짓말하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상했는데, 사실인 걸 보니 위로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에 어떤 말이 더 오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깨어보니 경찰서였고, 차라리 용왕에게 자기 간이라도 바쳤으면 좋겠다는 거북이의 흐느낌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실내등이 꺼진 버스 안은 깜깜했다. 창밖도 깜깜했다. 승객들은 누구도 토끼와 거북이에게 관심 갖지 않았다. 누군가가 간을 적출당할 지도 모를 기미는 모두의 묵인 하에 아직 무죄였다. 태우는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다가 눈을 감았다. 잘 수 있을 때 확실히 자둬야 했다. 각자의 피로로 직조된 까맣고 빽빽한 침묵을 담고, 버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태우는 토끼와 거북이 대화에 귀기울이느라 자지 못했다. 거북이가 친근하게 말을 붙이고, 토끼가 건성으로 받으며 맥을 끊지만 거북이가 잽싸게 말을 이어 붙이는 식의 대화가 소곤소곤 이어졌다.
“육지가 왜 좋으십니까? 토 선생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용왕님께서는 토 선생님 식구분들까지 용궁으로 모셔올 겁니다.”
거북이의 말에는 자로 잰 듯한 정중함이 배어 있었다. 토끼는 아직까지 남아 있는 커피를 한 입에 털어 넣고, 입 안에 머금은 채 조금씩 삼키며 빈 컵을 빙빙 돌렸다.
“글쎄요…….”
토끼는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몸을 돌리며 눈을 감았다. 딸이 심장 수술을 위해 가슴이 열리는 장면과 자신이 마취 없이 배가 갈리는 장면을 떠올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사실을 말할 수 없는 거북이의 난감함과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토끼의 난감함과 이들을 모른 채 하는 태우의 난감함은 다르지 않았다. 다들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보이지 않는 손을 따를 뿐이었다.
거북이는 앞자리 태우의 정수리를 봤다. 탈모는 없었지만 눈에 띄게 세었다. 하긴, 간에 기름 지는 세월이었다. 당신은 잘 버텼구나, 했다. 지금쯤 아들은 중학생이 되었을 텐데, 그 아이는 제 아비의 간 맛을 기억할까? 역시 모른 척 눈을 감았다.
태우는 오른쪽 가슴 쪽, 간구가 있던 자리에서 진동을 느꼈다. 아내의 전화였다. 아내는 울면서 떠듬떠듬 장인의 부고를 알렸다. 태우는 가슴에 박혀 있던 굳은 간 같은 돌덩이가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급격히 잠이 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