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너 식경 후면 심천의 어머니가 죽는다. 아사(餓死)다. 65세, 가늘고 질긴 목숨이었다. 그는 어떤 기분을 선택해야 할지 몰랐다. 하계의 습관이 남아 슬프기도 하고, 10년 만에 있을 해후가 설레기도 했다. 두 감정이 섞이지 않아 무덤덤한 것도 같았다. 그는 지금, 어머니의 혼을 거두러 가는 중이다.
하필 오늘이 생일이라 아내는 미역국을 끓여줬다. 어머니를 닮아 있던 아내의 손맛은 천계에 오자 점점 아내만의 손맛을 찾아갔다. 어머니는 조갯살 몇 점 겨우 넣었지만, 아내는 소고기를 넉넉하게 넣어 국물이 진했다. 아내의 손맛을 김개똥이 먹어 심천이 살쪘다.
하계 시절 심천의 본명은 김개똥이었다. 장인에게 김개똥은 딸을 납치한 파렴치한이지만 딸의 지아비이자 세 손주의 아비이기도 했다. 장인은 하는 수 없이 김개똥을 사위로 받아들여 하늘의 마음을 깊이 새기라는 의미에서 심천(心天)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아내는 하계에 있던 시간을 산재로 인정받으면서 천궁에 복직했다. 심천은 하계 특채로 저승사자로 채용되었다. 인사 부장은 강파르고 사나운 인상 때문에 뽑았더니, 날이 갈수록 인상이 순해진다며 투덜댔다. 심천은 잘 먹고 잘 살고 있어서 하계에 두고 온 어머니에게 더 죄스러웠다.
홀어머니는 끝내 심천을 버리지 않았다. 대여섯 살 무렵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장에 가면서 엿을 줬었다. 엄마는 몇 번이나 ‘엄마 없어도 잘 살 수 있지?’라고 물었고, 심천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단맛에 혼이 빠질 지경이었다. 그날은 아주 좋은 날이었다. 멱을 감다가 바우와 싸웠는데 칠성이 형이 내 편을 들어줬고, 칠성이 아줌마는 저녁에 조린 계란을 내게만 줬다. 밤에는 모닥불을 피우고 고구마를 구워 먹다가 그대로 잠들었다. 엄마가 나를 안고 흐느끼는 소리에 깼지만 다시 잤다. 다음 날,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우리 마을에 들리던 방물장수 아저씨가 그날 이후 우리 마을을 찾지 않은 것과 엄마의 울음을 이해한 것은 심천이 천계에 오고 나서도 2년이 지나서였다.
마을 초입에 도착했다. 마을은 10년 전과 다를 바 없었다. 개만 눈길을 스치는 심천의 기척을 느껴 칼바람으로 가득 찬 허공을 향해 컹컹 짖어댔다. 저승사자가 된 이후 마을에 든 적 없었다. 싱숭생숭 해질 거란 우려 때문에 다른 구역을 배정 받았다. 그러나 장인이 인사 부장과의 친분을 이용해 어머니의 혼을 직접 거둘 수 있게 손을 써줬다. 이날이 아니면 영영 어머니를 볼 수 없었다.
심천이 살던 집은 고요했다. 자갈로 경계를 두른 남새밭, 주로 나뭇짐을 쟁여두던 광, 광에서 툇마루로 이어지는 빨랫줄, 툇마루의 끝에 찍힌 도끼 자국, 이가 벌어져 걸핏하면 떨어지던 문고리는 사람과 관계가 끊긴 사물 특유의 가벼움으로 서걱댔다. 집이 간직한 풍경은 체격이 비슷한 사람이 입던 옷처럼 몸에 맞지만 심천에게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그런데도 아내의 날개옷을 훔칠 때처럼 가슴이 두근댔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음지에 오래 고인 냉기가 심천의 얼굴까지 훅 끼쳤다. 방은 동굴 속처럼 캄캄했지만 저승사자들은 밤눈이 밝았다. 부엌으로 뚫어놓은 작은 문 앞에 소반이 보자기로 덮여 있었다. 시신은 아랫목에 펴진 요 위에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덮인 이불 아래 어머니의 윤곽이 오래 전에 버려진 무덤처럼 겨우 봉긋했다. 골목에 버려진 고양이 시체 위에 거적때기를 한 장 덮어놓은 것처럼 비루한 광경이었다.
혼령이 없었다. 혼령은 망자 근처를 배회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집안 어디에도 혼령의 기척이 없었다. 간혹 이런 경우가 있었다. 강한 염(念)을 가진 망자의 혼령은 망자의 결계를 뚫고 염을 쫓아 나돌아 다니기도 했다. 그런 혼령은 더 이상 저승사자의 소관이 아니었다. 3일 장례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못하면 승천하지 못한 귀(鬼)가 되어 구천을 떠돌았다.
심천은 급하게 뛰쳐나가 온 동네를 다 뒤졌다. 지박령도 신주도 어머니의 혼령을 보지 못했다고 하니 사실상 찾기 글렀다. 엄니는 귀가 되고 마는가…….
심천은 방으로 돌아와 어머니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어머니의 얼굴은 꿈에서 본 모습보다 더 늙고, 여위어 있었다. 뼈 위에 얇고 낡은 살가죽을 입혀 놓은 듯했다. 볼이 움푹 패여 광대가 도드라졌고, 눈도 안쪽으로 더 꺼져 있었다. 그러나 잠든 듯 평안했다. 가난지옥 속에서 잠들어서야 평안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심천이 이불 아래로 손을 넣어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손은 겨우내 언 나뭇가지 같았다. 손가락 마디는 굽어지지도 않았다. 마을 사람들에게 발견되기 전까지 며칠 동안이나 얼어 있어야 할지 가늠되지 않았다. ‘혼령이 빠져 나간 껍데기일 뿐이야.’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러나 짭짜래한 냄새가 시신에 생기를 불어 넣는 듯했다. 집에 거주하는 동안의 시간은 끼니와 끼니를 매개로 이어지며 집 안의 모든 공기는 하나의 냄새로 묶였다. 어머니의 손끝에서 출발한 시간은 하나의 음식에 배었다가 뱃속으로 분배되어 살로 차올랐다. 모든 자식들은 끼니마다 어머니의 시간을 기억한다. 닥쳐오는 살의 성분이 달랐다. 10년, 심천은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몸은 기억했다. 어머니는 모든 사람의 향수(鄕愁)이자 향수(香水)였다.
심천이 어머니의 시신에서 손을 빼 소반을 덮은 보자기를 떠들었다. 소반에는 김치 한 보시기, 조린 계란 한 알, 쌀밥 한 그릇, 그리고 미역국이 있었다. 10년째 돌아오지 않는 아들의 생일상 옆에서 어머니가 아사하셨다는 생각에 심천의 마음은 기어이 균형을 잃었다. 평정심을 찾으려고 애썼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손에 이미 숟가락이 들려 있었다.
밥은 굳고 미역국에는 살얼음이 껴 있었다. 차가운 것들을 입 안에서 오래 씹었다. 얼어버린 밥과 미역국에서 어머니의 맛이 어제처럼 살아났다. 돌처럼 얼어버려 겨우 갉아 먹는 계란에서도 그 맛이 났다. 개똥의 어깨가 들썩였다. 수저가 미역국을 뜨다말고 부르르 떨렸다. 개똥은 눈물을 흘리지 않기로 했다. 마음을 다잡고, 어머니가 10년 만에 차려준 생일상을 꾸역꾸역 먹었다. 엄니, 할 말이 많은데, 정말 많은 일이 있었는데…… 개똥의 눈에 화가 난 것처럼 핏발이 섰다.
멀리서 개가 짖다가 말았다. 바람이 문을 흔들며 방으로 스몄다. 개똥은 갓을 벗었다. 소반을 가 쪽으로 밀어 놓고 바닥을 더듬어 어머니의 시신 옆에 누웠다. 다시 이불 안으로 손을 넣어 어머니 손을 다시 꼭 잡았다. 잠깐만 잠들었다 깨면 그날 그랬듯이 어머니는 돌아와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는 절대, 개똥이를 버리지 않는다. 개똥의 입 안에서 속이 꽉 찬 단맛이 스르륵 퍼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