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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멘 Apr 19. 2024

영어유치원은, 유치원이 아닙니다

나의 고등학교 친구이자 초등학교 교사인 A양.

두 딸의 엄마다.

그녀는 이제 5살이 된 딸을 영유(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싶어 한다. 이유인즉슨.


"내가 영어 못했잖아. 난 아직도 그게 트라우마야. 내 자식은 안 그러면 좋겠어. 자신감이 중요하잖아. 그래서 영유 보내려고"


나의 직장동료이자 친한 언니인 B여사.

두 아들의 엄마다.

첫째 아들은 벌써 성년이 됐다. 그녀가 영유에 대한 후배들의 고민을 듣더니 일침을 쐈다.


"영유? 보내봤자야. 내가 20년 전에 영유 보냈던 선구자였잖아.

초등학교 1~2학년까진 당연히 영유 다닌애가 잘하지. 근데 보니까 고학년부턴 다 평준화되더라고.

그리고 걔가 커서 영어 안 쓴다. 쓸데없는데 돈 쓰고 맘 쓰지 마"


과연 누구의 말이 맞을까?



01. 손경제(손에 잡히는 경제) 뉴스


뉴스의 내용을 보자면 이렇다.  


내가 영어유치원에 자녀를 보내려면 121만 원을 매월 내야 한다.

이건 전국 영유의 평균 가격이다.

그래, 1년만 영유에 보내보자 하면 1,452만 원이 드는데 국내 4년제 대학 등록금이 1년에 692만 원이다.

아니지, 다닐 거면 3년(5~7세)은 다녀야지 하면 4,356만 원이 드는데 로스쿨 3년 학비와 맞먹는다.


물론 이 가격도 지역마다 다르다.

공무원들이 많은 세종시가 148만 원으로 1위다.

공공분야에 종사하는 부모들이 사교육 시장의 선두주자란 말이기도 하다.

아무튼 인천이 142만 원, 서울이 141만 원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은 아니다.

서울 목동에서 영유를 보내려면 교재비가 한 달에 15만 원, 분기별 활동비 50만 원까지

총합 한 달 평균 원비는 170만 원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끝은 아니다.

한 달에 140~170만 원 낼 의향과 능력이 있어도 줄을 잘 서거나 시험점수가 높아야 한다.

인기 유치원은 형제자매가 다녀야 접수 우선권을 주고, 1분 만에 선착순 마감되니 엄마의 손가락이 얼마나 빠른지가 관건.

영유의 17%는 신청자 대상 레벨테스트도 본다. 이쯤 되면 '영유고시'라는 말이 농담이 아니다.

만 3세 영어 레벨테스트를 3만 원의 비용을 보고 봐야 하는 현실.


이게 말이 되는가?

된다. 영어유치원은 유치원이 아니기 때문.


영어유치원은 학원법에 적용을 받는 학원으로 간판에 '유치원'이라고 쓰면 불법이다.

학원들은 유아발달 특성에 따른 과정을 따르지 않아도 되므로 유아발달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

또한 유치원은 유아교육 전공자만 교사가 되지만 유아대상 영어학원(속칭 영유)은 그 의무를 안 져도 된다.

원어민 교사들의 경우 더욱 사각지대에 있어,  교육부 점검 결과 이들에 대한 범죄경력 미조회 26건이 적발되기도 했다.  


때문에 유아대상 영어학원(속칭 영유)은 철저히 학습 위주다. 5세~7세의 학습량이 하루 5시간, 집에 와서도 2시간가량 할 영어숙제가 매일 있고, 당연히 부모가 도와줘야 한다.


이쯤 되면 무엇이 우려될까?

돈보다도 아이들의 안녕이 걱정되는데.. 뉴스에 따르면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틱장애, 정서불안이 생기기도 한다고 한다.


그럼 도대체 왜 이다지도 인기가 있을까?


자신과 달리(?) 아이가 원어민처럼 영어를 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 때문이다.


기자가 말했다.

"사교육은 부모의 불안을 먹고 자란다".


언어적 감각이 높고, 실수에 따른 좌절감이 낮은 아이들은 괜찮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영유는 아이들의 자존감을 낮추는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세계에선 영어를 잘하는 애, 못하는 애로 이분법화 되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규제를 안 할까?

최근 정부는 영유들을 대상으로 교육청에 등록한 과목만 가르치라는 공문을 보냈다.

실용 외국어 과목을 등록해 놓고 미술이나 체육을 껴넣어서 유치원인 척하지 말라는 말.

간판은 학원으로 해놓고 네이버포털 장소 소개에는 영어유치원으로 쓰는 눈속임도 단속 강화한다고 한다.


또한 유아교육법을 개정해서 학원이 유치원처럼 운영되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학원이 유치원처럼 운영하면 행정처분하도록 법개정도 예정돼 있다.



02. 뇌와 감정 이야기(<기분대로 아이를 키우지 않겠습니다/곽윤정> 일부 발췌)


부정적 정서를 경험하면 아이들의 뇌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이 방출된다.

불안, 짜증, 분노, 불쾌함 등을 느낄 때 이 호르몬이 아이의 뇌에 전달된다.


코티졸은 감정뿐 아닌 기억력 저장장치인 해마에 영향을 준다. 뇌세포를 망가지게 한다.

그리고  10세까지 발달하는 시냅스의 발달 과정을 방해, 전두엽의 기능이 악화된다.

전두엽은 감정을 관리하고 조절하는 능력, 도덕성과 판단력을 관장한다.


우리는 우리 아이의 뇌를 영어만 잘하는 뇌로 키우고 싶은 걸까?

혹은 영어만 잘하면 다른 능력은 일부 발달이 저해돼도 상관없는 사회에 살고 있는 걸까?

유독 한국에서 조기교육열이 높은 이유가 뭘까?


고려대 심리학과 연구팀이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다.

fMRI(기능성 자기 공명영상)으로 뇌의 반응을 비교한 것인데,

한국엄마들에게 '자기 자신'에 대한 단어들을 판단하라고 하고, '자녀'를 판단하라고도 했다.

놀랍게도 자기 자신을 생각할 때 활성화되는 뇌는 '내측전전두엽'인데

자녀를 생각할 때도 이 부위가 활성화됐다.

즉, 우리 엄마들의 뇌는 자신과 자녀를 동일하는 여기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


그래서 우리 엄마들은 아이의 성적이 곧 나의 성적,

아이의 유창한 영어 실력이 곧 나의 실력인 것처럼 인지하나 보다.



03. 책임의 영역


최근 도곡동의 한 유아대상 영어학원(영유)이 폐원 문자를 날리고 학부모들의 돈도 날려버렸다.

이사장이 학원강사와 학부모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돌연 문을 닫아버렸기 때문.

1년 치 학습비(월 150)를 선불한 학부모들은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다.


본래 유치원 폐원 규정은 매우 엄격하다.

유아교육법에 따르면 유치원 폐원 일자는 ‘매 학년도 말일’로 정해져 있어 학기 중 폐원 자체가 안된다.

또한 교육청에 폐원에 대한 학부모 동의서와 유아 전원 조치 계획도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학원은 이러한 법적 의무가 없다.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만 따르기 때문.

학원생이나 학부모 등에게 폐원을 미리 통지하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폐원에 따른 소송을 할 각오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선택이다.

이 모든 것은 자원과 가치의 선택 문제다.

내 아이를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보낼지, 말지.

이건 분명히 부모의 선택 문제다.


'선택'인데

'부모의' 선택이다.

그러니까 '부모의 자원과 가치'의 선택이다.


그러므로 잘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 아이의 뇌는 영어학습 능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우리 아이가 인생의 수많은 상황 속을 헤쳐나가기 위해 감정 조절능력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 아이의 뇌구조는 부모인 나의 뇌구조와 다르다.

우리 둘의 뇌는 이어져 있지 않다.


우리 아이의 인생은 부모인 나의 인생이 아니다.

부모인 나조차 아이의 1분 1초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두 가지를 착각하거나 혼돈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책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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