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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멘 May 08. 2024

엄마의 적은, 엄마다?

애정남이 필요해

예전에 개그 프로그램에 '애정남'이 있었다.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

예를 들어 연애 후 얼마 만에 다시 연애하는 게 적절한가?라는 질문에

1년 연애하면 1달, 2년 연애하면 2달.이라는 명쾌한 답을 주었다.

웃자고 한 이야기지만, 때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료한 해답에 카타르시스가 있었다.


요새 그런 애정남이 그리울 때가 있다.

애매~~~ 한데,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어서 마음 한편이 찝찝하니까.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다.


"지안이가 키즈카페에서 만나자고 했어!"


퇴근 후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나오며 대뜸 말한다.

아이의 친한 친구인 지안이가 하원하면서

"이따 키즈카페에서 만나"라고 했다는 것.


비가 추적추적 오고, 몸도 지쳐있는 터라

 "그래, 가자" 하고 바로 결정해 버렸다.


우리 아파트 커뮤니티센터엔 조그마한 키즈카페가 하나 있는데 평일엔 잘 가지 않는다.

오랜만에 가보니...

하원 후 아이들이 나뒹구는(?) 키카는 그야말로 아수라장.

아이들은 서로 엉키고 한정된 장난감 가지고 울고불고 떼쓰고 난장판.

우리 아이도 그분 위기에 질세라 한몫했다.


그러다가 친구가 형과 함께 케이크를 먹겠다며 카페로 나갔다.

(커뮤니티센터엔 카페가 있고, 카페 안에 키즈카페가 있다)


친구를 따라 나간 아이.

그 뒤를 따라가 보니 친구의 테이블엔 이미 엄마 3명 아이 4명이 모여있다.

무지개 색깔의 케이크 하나를 아이 3명이 옹기종기 나눠먹고 있었다.


"나도 케이크 먹고 싶어"

혼자 다 먹지도 못할 것이고, 곧 있으면 저녁시간이니

평상시라면 안 사줬겠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인지라 사회적 눈치를 봐서 사줘 버렸다.


이미 자리가 없는 친구의 테이블에서 먹겠다는 아이.

결국 양해를 구하고 옆자리에서 의자를 하나 빌려와 앉혔다.


서로의 포크가 오가는 사이

아이가 깨작대다 말했다.


"나도 누가 내 케이크 같이 먹으면 좋겠어."


잉?


앞에 친구 3명은 케이크 하나로 나눠먹고 자기는 케이크 하나를 통째로 먹고 있는데

그 상황이 또 못마땅했나 보다.

(엄마는 자리도 없는 테이블 옆에 뻘쭘하게 서있어서 더 못마땅)


아이의 마음을 생각해 보면, '그 안에 끼고 싶다'였을 테지.

그제야 아이들과 엄마들 얼굴을 찬찬히 보니, 원래 친한 사이의 엄마들이다.


엄마들이 친하고, 아이들도 친할 수밖에 없는.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직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보통은 엄마가 먼저다.  

짐작해 보건대 세명의 엄마는 일을 나가지 않는 듯했고, 자연스레 하원하고 그 엄마들과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 지내는걸 자주 봤다.

케이크 하나로 옹기종기 아이들이 나눠먹을 정도로.


아이는 그 아이들과 하루종일 어린이집 같은 반에 있지만,

나는 그 엄마들과 얼굴을 보며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 갑자기 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케이크를 먹으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민망.


생각해 보니 오늘만은 아니었다.

애매한 기분은.


놀이터에서도 아이는 반 친구들을 쫓아다니며 놀았고,

a의 간식도 내간식, b의 간식도 내간식, c의 간식도 내간식인 나이인지라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끼리는 모두의 간식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나도 자연스레  엄마 안면을 트게 됐지만, 이미 구성된 엄마들 테이블에 내 자리가 있진 않았다.


아주 애매한 경계선.

분명 존재하지만, 분명하게 보이진 않는 애매한 경계선.

 

인스타그램을 할 때도 그 경계는 어렴풋 존재한다.

오늘 우리 집 반찬은요, 우리 집 아이 간식은요, 똥손도 만드는 유아식 레시피는요 등등.

올라오는 육아피드를 보며 감탄한다.

피드를 보며 가끔 따라 만들다가, 또 지치다가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삐딱한 생각 하나가 올라온다.

"아니, 이 엄마는 집에서 시간이 여유 있으니 이렇게 가지각색 반찬에 간식까지 만들겠지!"


이 옹졸한 기회주의자.

내 손가락으로 '좋아요'하고 팔로잉해놓고 얻다 대고 지적질을 하고 있는 건가.  

내 마음 어느 한 자락, 이런 마음이 존재했던 건가.


생각해 보니, 이 삐딱선은 앞집 엄마한테도 세운 적이 있다.

한 번은 아이가 열이 나서 급하게 퇴근하고 집에 들러 약을 챙겨 나가고 있었다.

앞집에는 아이와 동갑내기 여자아이가 살았고, 앞집엄마는 전업맘이었다.


그날따라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걸며

"어머, 아이가 아픈가 봐요? 일하면서는 정말 힘들겠어요 아이가 아프면."

하고 말했다.


나는 기분이 나빴다.

문맥의 사실여부를 따지기 전에 뉘앙스가 기분이 안 좋았다.

나의 자격지심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아이가 아픈 위급상황에 맘이 약해졌는지 역시 모르겠으나,

아무튼. 생각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내가 힘들겠다고 진짜 위로하는 거 맞아?'



남편한테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 이런 말을 종종 듣는다.


'여자의 적은 여자다'


이 말을 들으니 번뜩 정신이 든다.


그 말만들어낸 건  누굴까.

여자가 만들어낸 말일까.


보통의 말은 그 말로 혜택을 보거나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들이 만들어낸다.

이 말로 혜택을 보거나 기분이 좋아지는 건 여자들일까.


언제부터인가 육아정보, 학습정보를 공유하는 채팅방에 끼려면 일을 할 수가 없다느니,

애초에 결성된 전업맘들 네트워크에 워킹맘들이 낄 자리는 없다느니 하는 말이 넘쳐났다.


또 브런치 가게에 가보면 팔자 좋은 여자들만 있다느니,

일 안 하는 엄마들이 꼬박꼬박 유치원은 더 잘 보낸다느니, 하는 비아냥들이 샘솟았다.


이모두 여자이자 엄마인 내가 듣기에 기분 좋은 말은 아니다.

워킹맘을 공격하는 말도, 전업맘을 공격하는 말도 다 기분이 나쁘다.


우리는 언제든 일을 할 수도, 일을 그만두게 될 수도 있는 사람이다.  

양날의 칼 같은 말들은 처음엔 상대방을 공격했다가, 이내 곧 나를 공격하게 될 수 있말들이다.


그러나 그 칼을 쥐고 있는 건 사실 전업맘도 워킹맘도 아니다.


내가 참여하는 작가모임이 있는데,

이번주말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서로의 글을 돌아봐주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오늘 아침 그 단톡방에 이런 메시지가 왔다.


'남편이 주말에 일이 있고, 경제력에서 밀리는 제가 이번 모임에 못 가게 됐다'


이 메시지를 읽고, 나는 나의 경제력과 가치에 대해 돌아봤다.

그 작가님이 일을 하는 분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자세한 사정도 알지 못한다.


다만, 손에 쥐는 월급만이 경제력인 건지 경제력이 있어야만 가치로 인정받는 건지 생각하게 됐다.

워킹맘과 전업맘 사이에 흐르는 애매한 강의 본류도 어쩌면 '가치'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이 이어졌다.


통계개발원이 작년 12월 가사노동 서비스를 돈으로 환산한 결과.

0세 자녀를 돌보는 전업주부의 가사노동과 돌봄 가치를 연봉으로 환산했더니 3638만 원,

월급으로 따지면 약 300만 원이다.


전업맘 중엔 300만 원이 꼭 필요한 엄마도 있고, 300만 원이 필요 없어서 전업맘을 할 수 있는 엄마도 있을 거다.

아이 때문에 경력이 단절된 여자도 있고, 아이와 상관없이 원래 일에 욕심이 없는 여자도 있다.


워킹맘 중엔 300만 원을 버는 엄마도 있고, 300만 원을 벌지 못하지만 꼭 벌어야 하므로 일하는 엄마도 있다.

또는 돈과 상관없이 자신의 꿈과 사회적 자아실현을 위해 일을 놓지 않는 여자도 있다.


전업맘과 워킹맘이라는 타이틀 안에는 각자의 사정이 모두 다른 엄마들이 존재한다.

전업맘 대 워킹맘이라는 구도 안에는 엄마이자 여성인 개인들이 제각각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일하는 엄마지만, 가사노동을 하는 엄마기도 하다. 보통의 전업맘들도 전업이라는 말처럼 육아와 가사라는 노동을 하는 엄마들이다.


무지개 케이크를 나눠먹고, 나눠먹지 못하고는

일하는 엄마의 노력부족 탓이 아니다.

일하지 않는 엄마들의 텃세 때문도 아니다.


여자 대 여자,

전업맘 대 워킹맘의 대치구도로는 그 누구도 케이크를 완전하게 행복하게 먹을 수 없다.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다.

우리가 갖는 애매한 감정들 너머에는 애매한 시스템과 제도의 문제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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