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던 호수에 돌멩이 하나.
그렇지 올 때가 됐지.
이 정도 긴장감은 있어야, 워킹맘이지 싶은 그런 이슈가 생겨난 날이었다.
보통은 8월까진 '하계휴가철'인데, 우리 회사의 전사 워크숍이 무슨 이유에선지 8월 말의 어느 하루로 잡혔다.
5월에 전사 워크숍 1박 2일에 불참하며 사유를 썼던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벌써 또다시 사유를 적어야 하는 때가 돌아온 거다.
어쩌다 보니, 매번 '사유 있는 여자'가 됐다. 물론 사연도 있지만..
처음 공지를 봤을 때는 오전 7시 반 출발, 저녁 9시 반 도착 예정의 일정표를 보고 '당연히 불참'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혹시나 싶어 남편에게 톡을 보내놨다.
"혹시 이날 늦게 출근하거나 조기퇴근하거나 가능해? 회사 워크숍이라는데.."
"나 그날 외부교육이라 못 빠지는데.."
남편의 대답.
하긴 생각해 보면 늦게 출근하든, 조기퇴근하든 불가능한 일정이었고 남편이 하루를 통으로 휴가 내지 않는 한 아이의 등하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정상 스케줄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말이다.
이럴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사람마다 '선택'의 개념과 범주가 매우 다른 것 같다.
누군가는 같이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도 하루쯤은 일찍 출근하고 늦게 귀가해도 괜찮은 '선택'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원하는 선택은 아닐지언정, 정 안되면 택할 수는 있는 선택지 말이다.
나는 어떤가?
나도 한번 생각해 봤다.
내가 정말 정말 참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1번은 남편이다.
보통의 경우엔 늦게 출근하거나 조기 퇴근하거나를 미리 조정하든가, 아니면 정 안될 것 같으면 가능하면 하루 휴가를 신청하라고 한다.
실제로 이런 옵션은 내게도 있었고, 몇 번 사용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남편과도 조율이 되지 않는다면?
친정엄마를 부르거나 시어머니에게 부탁할 수도 있다.
문제는, 두 분 다 끔찍이도 사랑하는 손주지만 나나 남편 없이 아이를 혼자 돌본 적이 없으시다.
무엇보다 친정엄마는 택시를 타고 왕복 2시간 거리를 와야 하는데, 허리가 불편해서 하루 아이를 돌봐주시고 나면 분명 건강이 악화될게 뻔했다.
시어머니는 아직 일을 하고 계시니, 시어머니의 일터에 사전 양해가 가능한지 여부부터 확인이 돼야 왕복 3시간 거리를 와주실 수 있다.
아무튼 이 옵션은 사실 내게 옵션은 아니다.
써본 적도 없다.
그래서 결국 0순위는 나의 행동을 가급적 아이를 직접 케어하는 범주 안에서 결정하는 건데, 나라고 왜 인간으로서 부담이 없겠는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된 이유인즉슨,
우리 팀에 워크숍 불참자가 있냐는 팀장님의 질문에 "저는 못 갈 것 같은데요. 일정표를 보니.." 답했다.
그런데 "좀 늦게 오고, 일찍 가면 어떤가? 자차로 이동해서.."라는 피드백이 온 거다.
전혀 생각지 못한 그의 옵션(?)에 뜨악했고, 나는 팀회의를 마치자마자 네이버 길 찾기를 검색했다.
왕복 시간을 보니 최소 4시간.
이렇게라도 가야 하는 일인가, 싶은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불참자는 '불참사유'를 기재하여 내야 하는데 나는 고민 끝에 결국 '육아기 단축근무'를 사유로 덕고 불참에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나와 같이 육아기 단축근무 중인 후배와 이야기를 하다가, 워크숍 이야기가 나왔다.
"워크숍 어떻게 해요?"
"아, 저는 그냥 부모휴가 쓴다고 했어요. 저번에 워크숍 1박 2일도 참여 못했잖아요. 그런데 둘째 날 동료들이 워크숍 끝나고 사무실로 들어오는데, 뭔가 민망하더라고요. 차라리 다른 업무 출장이나 그런 일정 때문에 못 간 거면 괜찮은데 뭔가.. 저만 한발 뒤로 뺀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안 마주치게 휴가를 쓰는 게 낫겠다 싶어서.."
그렇다. 그게 그녀의 선택이었다.
나는 오히려 그날 휴가를 쓰는 게 왜곡된 이미지를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녀에게는 그게 더 나은 이미지의 선택이었던 거다.
사람이 이렇게 느낌도, 생각도, 행동도 다르다.
아무튼 그러자 갑자기 나도 갈대가 됐다.
'그러고 보니 팀장이 내가 안 간다는 걸 아나? 결국 내가 간다는 걸로 이해했나?
그렇다면 다시 한번 못 간다고 말해야 하나?'
눈치만 보다가 워크숍 날짜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고, 나는 결국 팀장님이 커피를 마시러 나가는 타이밍을 잡아 복도에서 우연인척(?)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팀장님, 그런데 저 아무래도 워크숍은 못 갈 것 같은데요"
"원래 안 가기로 한 거 아니었나? 그렇게 해요"
허무하다. 다행인 허무였지만 나의 쓸데없는 걱정이 해피엔딩을 맞았다.
그리고 다시금 일상을 지켜냈다는 위안이 들었다.
그런데 자리로 돌아오는 길에 내 앞에 앉은 초등학생과 대학생 두 자녀를 둔 동료, 아직 아이가 없는 세명의 후배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결혼을 안 한 후배들이야 애 있으면 워크숍 안 가도 되니 좋겠다고 생각하려나?
전사적인 일에 애 있는 여자선배들은 항상 빠진다고 편견을 갖겠지?
애가 좀 큰 동료는 나 때는 단축근무고 뭐고 없었는데, 세상 좋아졌다 나도 애 하나 더 낳을까 생각할 수도.
모두 각자의 입장에선 각자의 경험을 기준으로 느끼고 생각한다. 이는 자연의 이치.
내가 그들의 입장을 추측할 뿐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처럼.
니키 지오바니의 <선택>이라는 시가 있다.
사유 있는 여자가 된 지 2년 차,
오늘 그 시를 다시 한번 적어본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지 않는 것. 그 둘이 같지는 않지만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이미 갖고 있는 것을 원하는 일.
그리고 아직 원할 것이 더 남아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일.
내가 가야만 하는 곳에 갈 수 없을 때
비록 나란히 가거나 옆으로 간다 할지라도
그저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갈 뿐.
내가 진정으로 느끼는 것을 표현할 수 없을 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느끼려고 나는 노력한다.
그 둘이 같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그것이 왜 인간만이 수많은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우는 법을 배우는가의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