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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 위의 철학

유연하게 흔들리는 중입니다

by 카르멘

영혼의 단짝.

소울메이트.


우리는 이러한 존재를 꿈꾼다.


아니, 사소하게는 여행메이트라든가 술친구라든가.

유독 어떤 상황에서 잘 맞는 친구가 있다.


맨정신에 잘맞는 친구, 술정신(?)에 더욱 흥이 나는 친구가 다르듯이

어떤 시공간, 어떤 마음 상태이느냐에 따라 유독

내 영혼을 툭! 하고 건드리고

따스이 마음을 감싸주는 누군가가 있다.


그런데 꼭 사람만 그런 건 아니다.

유독 내마음이 울적할 때 위로를 받는 장소가 있고,

내가 조금 더 에너지 넘치는 시간이 있고,

내심장을 뛰게 하는 운동이나 행동 등이 있다.


나의 경우 비오는날 괜스레 울적하면 예술의 전당 같은 새로운 공간에 나를 놓으면 좀 위로를 받는다.

식견도 배경지식도 없는 그림을 볼때 나의 새로운 영혼을 자극해서 일상의 무료함을 깨뜨린다.

나는 아침형 인간에 가까워서 일어난 직후부터 정오까지가 가장 에너지가 높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고, 그려나가는 시간대가 오전이므로 이때 창의력이나 생산성이 가장 잘 발휘된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든싫든에 상관없이 그냥 수행함으로써 내몸과 마음을 위로 받는 행위가 바로 요가다.

요새는 잘 못해서 삶의 쉼표가 줄어든 느낌이다.

삶의 쉼표인 요가를 함으로써 일상의 바쁨, 마음의 혼돈 속에서 잠시 쉬어갈수 있기 때문이다.


요가를 여러가지 이유로(?) 하진 못하지만

요가책을 읽으면서 변화무쌍한 3월의 쉼표를 찍어보고자 한다.


<유연하게 흔들리는 중입니다>

글 최예슬 그림 김민지




그러니까 나는 다른 누군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이면 된다


그러니까 나는 다른 누군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이면 된다.


나밖에 안 되는 나에게 실망하지 않고, 내가 나라는 것에 고마워하면 된다.


멀리까지 갔다가 돌아올 장소는 내가 더 나인 곳, 내몸과 내마음이라는 것을 기억한다.


매 순간의 출발점은 다른 누구일 수 없고,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 여기, 나 자신'이다.


#다누라사나(활자세)

단단함과 유연함 사이.


"배꼽만 닿고 상하체 위로 UP"


지면과 가장 가까운 복부가 단단하게 힘을 내야 흉부와 어깨가 열린다.


그런데 이자세에서 가장 힘든건 나는 '호흡' 이다.


처음 내트위에 엎드려서 발을 뒤로 차고 팔도 뒤로 보내고, 등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데.


상체 앞부분이 땅에 눌려있다 보니?


숨이 답답하다. 아마도 배에 힘이 더 있어서

진짜 배꼽만 땅에 닿는 기적이 일어나면?


흉부가 땅에 닿지 않아 시원하게 호흡할 날이 오려나.


사진처럼 엎드려서 하는 활자세가 아닌 앉아서 하는 반 활자세는 조금더 수월하고 등이 시원하다.

사람마다 체형이 다르고 호흡통과 길이가 다르니 편한 자세도 다른법.


활처럼 휘는 활자세는 현대인의 고질병인 등의 경직을 풀어내는 자세기 때문에 소화기능도 덩달아 좋아진다. (등의 경직=위의경직)


#사향노루


요가 수트라에는 사향노루 이야기가 나온다.


사향노루 몸에서 사향냄새를 풍기는 곳은 바로 머리 위인데, 사향노루는 그 냄새를 찾아서 여기저기로 뛰어다닌다.


자신의 머리 위에서 냄새가 난다는 것은 모른 채 헤매는 것이다.


행복이 꼭 사향노루의 사향 냄새 같다고, 경전에서는 이야기 한다.


#핀차 마유라아사나



기반의 위치가 변하면 거기서부터 뿌리내려야 한다.


손부터 팔꿈치까지 지면에 닿아 있을때에는 손의 기반부터 다시 살펴야 한다.


평소에 손의 기반을 잘 알고있다고 생각해도 오롯이 손의 기반에 의지할 때는 다시 봐야 한다.


어깨 관절의 제한이 팔꿈치를 자꾸만 벌어지게 하고 손 기반을 무너뜨린다. 팔뚝에서 상체로 이어지는 힘을 새롭게 느껴야 한다.


핀차마유라아사나는 나의 드림 아사나다.

결국 최종 완성을 못한채 미완인 채로 요가수련이 일시중지 되었지만.


품고있는 목표가 있다는 건 여전히 나를 설레게 한다.


#매트 위의 골목


매트 위에서 새롭게 넘어지는 일들은 골목을 기웃거리는 것과 같다.


이 골목으로 들어갈까 다음 골목인가 지금 모퉁이를 돌면되나?


몸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들. 선생님이 거기 말고, 이쪽. 하면 이쪽으로 몸을 튼다.


그렇게 골목 사이에 점을 찍으며 나만의 아사나 선이 만들어진다.


한발로 서기, 양손으로 지탱하고 서기 등 여러 동작을 시도하면서 매트밖으로 떨어지고 벗어나지만 그건 길을 잃는게 아니라 다른 골목에 발을 담가보는 것.

헤매는 만큼 나의 땅이니까.


#매트 위에서 우리들은 왜 어려운 동작을 하죠


어떤 동작은 꽤 쉽고, 어떤 동작은 어려운데.

매번 와, 이건 쉬워! 아 이건 너무 어렵잖아!


오락가락 속으로 이야기 할건가?

그냥 어떤건 어렵고 어떤 건 쉬운거다.

그게 전부다.


단순하고 깊고 다정한 인생을 살고 싶어서 요가를 한다.


생각해보면 삶도 똑같다.




그래서인가 보다.


매일 매순간 하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호흡.

요가를 하면서 그호흡을 의식하게 된다.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의 소중함.

그 호흡으로 내몸과 마음이 이완된다.


때때로 부딪치는 누군가와의 불통, 환경 곳곳에 숨겨진 답답함을

요가를 하면서 몸을 풀어내며 함께 풀어낸다. 명치끝에 걸려있던 그 통하지 않던 답답함이 근육의 이완만큼 중요하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내몸으로 또렷이 아는 어려운 아사나의 성공이 매트밖을 살아가는 나에게 성취감과 자존감을 선사한다.


그래서 내 머리위 사향노루의 냄새를 맡게한다.


요가가 인생이므로.

매트위의 철학을 배우는 시간, 요가수련의 시간.


그시간속에 내가 매트밖의 철학과 맞부딪히는 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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