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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Jan 28. 2016

몸소 겪고서야 비로소 이해했다

반 년 동안의 MBA 생활을 통해 크게 배운 것


미국 생활을 시작한 지 정확히 7개월이 되었다.  지난해 여름에 이곳 더럼에 들어왔는데, 오늘 아침에는 새하얀 눈을 밟으며 학교에 왔다. 계절이 두 번 바뀌는 사이 열 개 남짓한 수업들을 들었다.


새로운 나라에 와서 삶을 꾸려가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편안한 환경에서 살아왔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된다. 다른 문화권에서,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소통하는 것 자체가 적지 않은 부자유스러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하는 삶이라는 것을 이전에는 미처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


해외에서 장기간 살아 본 경험이 전무했던 지라, 모든 것들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처음에는 생각 외로 적지 않은 스트레스였다. 휴대전화를 개통하고, 집을 계약하고, 전기와 인터넷을 연결하고, 생활에 필요한 가구와 차량을 구매하고 하는 것들은 아주 사소한, 하지만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곳 절차에 대한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는 이방인에게, 부자연스러운 언어로 각 과정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은 말처럼 녹록지 않았다. 4수 끝에 합격한 운전면허 시험은 그야말로 삽질(!)의 정점에 있었다.


간단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조차 생각보다 시간이 필요한데, 외국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 역시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개강과 함께 미처 준비할 새도 없이 폭풍같이 과제들이 몰아쳐왔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영어였다. MBA 첫 학기는 대부분의 수업이 팀 과제로 짜여 있는데, 회의 때마다 팀원들의 대화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본의 아니게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는 시간이 꽤나 오래 계속됐다. 전략이나 마케팅 수업에서 제출해야 하는 팀 리포트와 프레젠테이션 등 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한동안 정신없이 지내다가 문득 한국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미국에 오기 전, 삼청동에 있는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이삼 년 공부한 적이 있다. 재미있었던 것은, 생각 이상으로 일본, 러시아 등 다른 나라 학생들, 그리고 북한 출신 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듣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그때는 문화적 배경과 언어에 익숙지 않은 소위 '마이너' 그룹들이 얼마나 한국에서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을까 하는 생각은 깊이 하지 못했다. 모든 게 낯선 상황에서 대학원 세미나 시간에 한국어로 발제를 하고 토론에 참여해야 했던 외국인, 북한이탈주민 학생들이 겪었을 어려움을 막상 내가 유학생 처지가 되어서야 비로소 공감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도 익숙지 않은 학술용어들을 보면서 느끼는 막막함이 과연 어떠했을까? 아마 익숙한 언어로 더욱 깊이 토론에 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을 것이다.


미국 MBA 클래스의 주류를 차지하는 것은 20대 후반, 미국 학부 출신 백인 학생들이다. 기본적으로 외국인 학생들에 대해 그들이 처한 어려움을 이해하고 배려해주려 하지만, 자신이 경험한 것과 다른 환경에 있었던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소수자가 되어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내가 다수의 위치에 있었을 때 과연 나는 어떠했는가를 거울삼아 바라보게 되었다. 다른 사회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 외국인들과 북한이탈주민들이 적응하는 과정에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것들을 보듬어 안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며, 보다 열린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데 조금이나마 더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깊어졌다. MBA 첫 학기가 그동안 고생한 내게 준 소중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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