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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Oct 01. 2022

스폰이 인턴을 한다고?

방법은 늘 있다

MBA 학생들에게 여름 인턴십은 가장 중요한 이벤트다. 1학년과 2학년 사이에 있는 여름 한 철 동안 어디에서 인턴십을 했느냐가 졸업 후 진로를 결정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졸업 후 일할 직장이 정해지면 남은 2학년 1년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지낼 수 있다. 선택지가 있는 상황에서 더 좋은 제안을 모색해볼 수도 있고, 아니면 취업 준비하느라 미뤄뒀던 것들을 할 수도 있다. 어림잡아도 절반 이상이 인턴십 후 정식 오퍼를 받는다. 


반면 인턴십을 하지 못했거나, 인턴십 종료 후에 오퍼를 받지 못했다면 남은 1년이 더욱 팍팍해진다. MBA 학생들을 뽑는 기업들이 인턴십을 통해 1차적으로 포지션을 채운 상황에서, 남은 학생들은 더 적어진 일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한다. 특히 외국인 학생들은 애로사항이 더욱 꽃핀다. 졸업 전까지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학생 비자로는 더 이상 미국에 체류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모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외국인 학생에게 비자 스폰서를 해줄 수 있는 기업들 역시 대체로 한정되어 있으므로, 취업문은 더욱 좁아진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MBA 지원 전에 일하던 직장에서 스폰서를 받아 온 학생들은 이런 고뇌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졸업 후 이미 돌아갈 직장이 있는 상태에서 여름방학은 주로 그동안 일하느라 소홀했던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각자 꿈꾸던 여행을 떠나는 시간이다. 미국이나 유럽, 또는 한국에서는 거리상 엄두를 내지 못했던 남미 등지로 학생들은 여행을 떠난다. 그야말로 백인백색, 목적지는 취향에 따라 갖가지다. MBA 스쿨도 다양한 경험을 해볼 것을 권장하기에, 이렇게 방학 때 여행을 떠나는 학생들 손에 학교 깃발을 들려 보내기도 한다. 온라인상에 학교 홍보하라고 슬쩍 옆구리를 찔러주는 셈. 




나는 인턴십을 해보고 싶었다. 두 달 혹은 세 달 남짓한 기간이나마 학교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나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MBA에서 수업을 듣는 것도 결국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준비의 일환이라면, 정말 한국과는 다른 환경에서 내가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느냐'를 알아보고 싶었다. 그야말로 '인턴'이라는 본래의 취지 그대로. 


물론 스폰서 신분에서 다른 회사에서 일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우연찮게 학교 경력개발센터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방법을 찾았다.  


"JM, 소셜 앙트러프러너십(Social Entreprensurhip, 사회적 기업가정신) 전공이지? 이쪽에 관심 많나 봐?"

"네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어요."

"그럼 비영리섹터에서 인턴십을 해보는 건 어때? 외부 비영리기관에서 방학동안 인턴십을 하면 학점인정을 해주는 프로그램이 있거든. 학교 커리큘럼의 연장인 거지."

"(유레카!) 그렇군요...!" 


MBA에 대한 수요는 영리 기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영리(Non-profit)에서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점점 사회적 기업, 소셜 벤처, 임팩트 투자와 같이 영리와 비영리의 경계에서 새로운 섹터가 등장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달려가는, 여느 영리 기업들과 구분하기 어려운 형태의 스타트업도 있었지만, 생태계 전반을 지원하는 맥아더 재단이나 록펠러 재단,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 같은 지원기관들도 있었다. 그 나름대로 매우 방대한, 새로운 영역이었다. 


분야 역시 광범위했다. 예컨대 교육 분야에는 티치 포 아메리카(TFA) 같은 단체가 있었다. 미국의 공교육 현장 역시 여러 문제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존재했다. 보건 영역도 마찬가지였다. 산업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거대한 헬스케어 산업의 일부로 볼 수도 있지만, 복잡한 의료체계 내에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병원과 의료단체, 소셜벤처들이 존재했다. 


학교는 MBA에서 분명 메이저 코스라고는 할 수 없는 이러한 소셜 앙트러프러너십 영역에도 적잖은 투자를 하고 있었다. 학교 커리어 게시판에도 종종 소셜벤처 및 비영리 관련 영역 공고가 떴다. 전에는 이상하게 잘 안 보였는데, 한 번 방향을 잡고 나니 왕방울만큼 크게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인턴은 너무 늦기 전에 (이미지 출처: IMDB)




하지만 소셜벤처/비영리 섹터에서의 인턴십을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상에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 MBA 학생들 중에도 비슷한 경로로 커리어를 키워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그제야 또 한 번 깨달았다. 유수의 투자은행과 금융회사, 전략 컨설팅 회사에서 이미 충분한 경력을 쌓고 온 친구들 중에 사회적 문제 해결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어렵게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제출하고 인터뷰 기회를 잡아도, 미국에 있는 소셜벤처/비영리 단체들이 그들에 비해 나을 것 없는 경험을 가진 한국인을 뽑아야 할 이유가 내가 봐도 크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어느새 날이 따뜻해졌다. 학교에는 벚꽃비가 내렸다. 이름 모를 꽃들이 알록달록 캠퍼스에 지천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괜한 짓을 하나보다... 그러게 스폰이 무슨 인턴을 한다고...'


싶었던 봄학기 마지막 수업 날, 메일함에 알림 메시지가 떴다. 


"Congratulations and Welcome to Ashoka!"


그렇게 거짓말처럼, MBA 1학년을 마치는 마지막 날, 나는 인턴십 오퍼를 받았다. 사회적 기업가정신이라는 개념을 창안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바로 그 조직으로부터. 


* Photo by Sung Shi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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