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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Sep 26. 2016

사과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

MBA에서의 글쓰기 수업 

이번 학기에 듣는 수업 중에 Managerial Writing이라는 강의가 있다. 외국에서 온 나 같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미국 학생들도 많이 듣는 나름 수강신청 경쟁률이 높은 인기 강좌이다. 글쓰기라는 소프트 스킬을 가르치는 2학점짜리 수업이지만 매시간마다 작문 과제가 있어 여느 3학점 수업들만큼이나 품이 드는 과목이기도 하다. 매 시간마다 글쓰기에 관련된 주제, 이를테면 ‘간결하게 내용 전달하기’,  ‘수동태 문장 줄이기’, ‘전치사 최대한 덜 쓰기’ 등을 놓고 여러 나라에서 온 다른 학생들과 같이 토론하다 보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정작 글을 쓸 때는 여전히 놓치고 있었던 게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수업을 담당하는 Lewis 교수님은 항상 이 강좌의 요지가 법률가나 작가가 아닌, 비즈니스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맞는 글쓰기 방법을 가르치는 것임을 강조하곤 한다. 이런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지난 수업에서 다뤘던 ‘사과 편지(Apology Letter)’는 꽤나 인상 깊었다. 사실 기업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고객들에게 불편을 초래하여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만나게 된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최근에 일어난 삼성 갤럭시 노트7 리콜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사과 편지’에도 널리 회자되는 ‘모범 예문’이 있다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2007년 2월 JetBlue의 CEO가 New YorkTimes 지에 게재했던 사과 편지는 기업이 어떻게 고객에게 글로서 진심을 표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글의 핵심은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것’에 있다. 당시 창립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은 신생 항공사였던 JetBlue는 폭설로 인한 결항 사건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실수를 발 빠르게 인정하며 위기를 넘겼다. 그 과정에서 창립자이자 CEO인 David Neeleman은 직접 사과 편지를 공개했는데, 악천후 등 다른 핑계를 댈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편지에서 ‘We’라는 주어를 반복하여 사용함으로써 고객에게 불편을 초래한 근본적인 책임이 자사에게 있음을 기꺼이 인정하고 있다. 당연히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하는 수동태 표현 역시 글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글뿐만 아니라 영상을 통해서도 CEO가 직접 고객들에게 다가섬으로써, 고객들이 보다 친밀한 느낌을 갖고 회사의 사과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과하는 것도 방법을 배워야 비로소 좀 더 잘할 수 있다는 것, 평소에는 쉽게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를 입은 상대방에게 합당한 보상을 약속하며, 너그러이 용서를 구하는 것은 얼핏 쉽게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지난 과거의 역사가 말해주듯 정말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진정성이 우선해야 하겠지만, 사과를 표현하는 방법 역시도 세심히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아닐까. 마지못해 사과하는 모습을 취하기는 하나, 오히려 그 속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책임을 면피하고자 애쓸 때가 많다. 때론 배울 필요가 없어 보이는 것도,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에게 ‘잘’ 사과하는 법도 그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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