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영감사전 25 - (12) 제값
1. 명절 때만 되면 회자되는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글로 유명한 김영민 교수의 칼럼입니다. 칼럼니스트로서 정기적으로 신문에 글을 기고하며 독자들과 만나고 있지만, 김영민 교수는 정치사상을 전공한 학자이자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기도 합니다.
2. 이번 칼럼은 본업의 영향을 받았는지 '공자'와 '논어'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김영민 교수가 짧게 들려주는 공자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3. 그 시절 정치판에서 속된 말로 '뜨지' 못하고 있는 공자님을 모시던 제자들이 보다 못해 제 스승을 슬쩍 떠봅니다. '옥이 있으면 궤에 넣어 감춰둬야 합니까? 아니면 좋은 가격으로 팔아야 합니까?'
4. 쉽게 풀이하면 '보스, 갖고 있는 콘텐츠 적당한 값에 밖에 내다 파는 게 어때요? 그래야 저희도 승승장구하고 대박 나죠!'라는 의미가 담긴 질문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짓궂은 질문에 공자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그 말을 듣는 제자들의 눈이 한순간 치켜 떠졌을 법합니다.
5. 그런데 공자님은 그렇게 제자들을 안심(?)시키고는 한 마디 토를 답니다. '다만, 좋은 가격(善賈, 선가)에 팔야야지'. 아, 제자들의 좋은 가격과 공자님의 좋은 가격에 대한 해석이 다릅니다. 제자들의 원망 섞인 눈초리를 짐짓 모른 체(?) 외면하며 웃는 공자님 모습이 떠오릅니다.
6. 공자가 팔아야 할 상품은 '자신의 역량과 생각'입니다. 공자 집단은 당시 권력자들에게 정치적 이상과 실행을 위한 방책을 팔았습니다. 요즘으로 따지면 전략 컨설팅 회사와도 일면 비슷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7. 그런데 안타깝게도 쉽사리 사주는 이가 없습니다. 공자의 꿈과 이상이 당시 군주들이 품기에는 너무 크고 원대했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꾸준한 현금흐름 없이 초기 창업팀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늘 곤궁한 삶을 살던 제자들이 자기 리더에게 뼈 있는 질문을 던진 것도 일면 이해가 갑니다.
8. 그런데 그 와중에 공자는 '적절한 가격'이 와야만 팔겠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지금 당장 생존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자신이 가진 가치를 아무 가격에나 내놓지는 않겠다는 결의가 공자의 대답에 담겨 있습니다.
9. 공자가 제자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한 것은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시장에 제값에 팔려면 제값, 즉 공정 가격이 얼마인지를 스스로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공자는 자신의 사상이 갖는 가치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고, 결국 생전에 당시 권력자들에게 파는 데는 실패했지만 사후 2천5백여 년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10. 김영민 교수는 공자를 빌어 칼럼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직장을 구할 때도 자신의 역량에 걸맞은 곳을 만나야' 하며, 반대로 사람을 뽑는 고용주도 직무에 걸맞은 적절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잘 아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공자도 그러했기에 과감한 베팅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11. 우리는 스스로의 역량과 가능성에 대해 과연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요? 때론 너무 낮게 평가하면서 지나치게 기죽어하고, 때론 너무 높게 평가하면서 과도하게 자만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참고한 콘텐츠
제 가격에 자신을 판다는 것
(조선일보, 2022년 7월 9일)
* Photo by Denise Bossarte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