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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Jul 14. 2020

좋은 아빠가 된다는 것

5. 못다한 이야기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휴직계를 낼 때 생각했다. 이 시간 동안 단 한 가지 목표를 이뤄야 한다면,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기’여야 한다고. 다른 무엇이 이 목표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고. 하고 싶은 것 수십 개를 버킷리스트 안에 던져두고 사는 삶의 방식에 익숙하지만, 우선순위는 잊지 말라고.


수현이와 시간을 함께 보내기 시작한 첫 달부터 그런 기대는 무참하게 깨져버렸다. 아이의 행동에 나는 조건반사적으로 화를 냈고, 그는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는 읊어대기 시작했다. 그간의 내 죄목을.


“아빠는 내가 사고 싶은 장난감 못 사게 하고... 엉엉.”

“아빠는 색칠공부 그림책 사준다고 해놓고 안 사주고... 엉엉엉.”

“아빠는 내가 돈가스 먹고 싶다고 했는데 안 된다고 죽만 먹으라고 하고... 엉엉 엉엉.”

“아빠는 공룡 책 같이 읽어준다고 해놓고 안 읽어주고... 엉엉 엉엉엉.”

“아빠는 내가 탱크보이 사달라는데 빠삐코 사오고... 엉엉 엉엉.”

“..."

“아빠 올 때까지 안 자고 많이 기다렸는데 맨날 나 자고 나서 들어오고... 엉엉”

“ㅠㅠ"


항복. 항복. 


아이는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간의 서러움이 가슴에 가득 차서, 이불 위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내 심장에선 무언가가 저며지는 느낌이었다. 피눈물인가. 난 그동안 아이에게 무얼 한 건가. 끄윽끄윽 소리 내는 수현이를 토닥이며, 나는 한 해를 온전히 함께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적어도 한 가지 바람은 확실하게 들어줄 수 있을 거야. 지쳐 잠들 때까지 기다려도 들어오지 않는 아빠는 이제 없어. 매일 네 손을 잡고 학교에 갈 거고, 집에 돌아오면 네가 하고 싶은 놀이를 같이 하며 시간을 보낼 거야.


반년이 훌쩍 흘렀고, 어젯밤엔 천둥번개가 무섭게 쳤다. 장마철이 지나면 무더위가 찾아오겠지. 노력을 다했으나 아들의 평가는 여전히 박하다. 동생과 합세하여 ‘아빠는 맨날 화만 내는 사람~’이라고 놀려댄다. 혀를 삐죽 내놓은 채 메롱 하는 아이에게 ‘어이구 이것들아 그럼 화가 안 나냐. 너희도 나중에 부모 한 번 되어봐라’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울려댄다.


일 년이 길 줄 알았는데, 아이들에게는 찰나와도 같은 시간. 고작 몇 달 같이 있었다고 사이가 드라마틱하게 좋아지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데,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아빠가 웬일로 집에 있어서 포켓몬 카드놀이도 같이 하고 킥보드도 같이 타지만, 이런 생활이 계속되진 않을 것임을 아이들은 알고 있다. 아이들은 다 안다. 아이들은 눈이 맑다.  


휴직도 언젠가 끝이 난다. 다시 일터에 나가는 시간과 마주하기 전까지 나는 아이들의 평가를 조금이라도 높여놓을 수 있을까. 하루하루 조금 더 애쓰보면 가능할지도. 그런 희망을 품고 나는 잠든 아이의 얼굴을 고요히 바라본다.




아빠는 그래도 이렇게, 매일 같이 잠들 수 있어서 좋다. 머리 맞대고 오늘은 학교에서 누구랑 놀았어, 내일은 공기하며 놀 거야 같은 얘기를 나누는 것이 세상 무엇보다 좋다. 이렇게 신이 아빠에게 선물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어서, 아빠는 지금, 조금 행복하다.


...그러니까, 학교에서 써오라고 한 ‘아빠 특기’란에 ‘맨날 화내기’ 좀 지워주지 않으련?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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