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사전 코스에서는 강의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철저히 청자의 입장에서 필요한 구간에 정지와 재생을 반복하며 강의의 속도를 조절하기도 했었는데, 본 과정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모든 과정이 녹화되고 있으며 일방적으로 강의를 듣고 받아 적는 게 아니라, 들은 것을 바로 그림으로 그려내고, 내 그림을 명확하게 말로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그야말로 당황 그 자체였다. "내 꿈을 그리는 수업"에 들어왔다가, 갑자기 영어로 듣고, 그림으로 그리고, 쓰고, 말하는 강연자이자 화자가 된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연극 한 편 보러 갔다가, 무대 위에 올라가서 주인공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그 날은 너무 당황스러웠고,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커다란 물음표가 그려지는 날이었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왠지 지금 포기하면, 앞으로 안전한 곳에서만 살던 내 지루한 삶으로 돌아가버릴 것만 같았다. 나를 안전존 밖으로 데리고 가서, 계속 당황스러운 환경에 처하게 하고, 그 환경에서 내가 살아남는 법을 배우길 바랐다.
또 하나 당황스러운 것은, 나를 제외한 모든 수강생이 전부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나중에 보니, 프랑스인 수강생이 한 명 있었다. 서로 모국어가 영어가 아니라는 사실에 큰 의지가 되었다.) 아직 우리나라에선 유명하지 않은 TED 강연자의 교육과정이라 국내에 알려진 바가 없고, 아시아인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도 나를 위축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였다. 언어도 편하지 않은데, 얼굴색과 눈동자 색 마저 다르니 그야말로 엎친데 덮친 느낌이었다.
그래도 여기서 멈추거나, 움츠러들고 싶진 않았다. 영국 유학시절을 떠올리며, 하나씩 내가 해낼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벌써 네 번째 강의를 마쳤고, 다음 주 수강생들이 직접 시범 강의하는 것만 남겨두고 있다. 이젠 유일한 비영어권 수강생인 프랑스인 필립과 동질감을 느끼며, 마지막 시범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나를 안전존 밖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왔다.
그렇게 첫날은 최대한 강의에서 들은 것을 상기하며 노트에 다시 적어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