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머리를 키우는 나만의 방법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힘

by 바이올렛


제목_없는_아트워크.png 나의 비주얼 씽킹 (바이올렛)




스물네 살에 취직을 했다. 함께 입사한 동기들은 대부분 대기업 혹은 외국계 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거나, 아니면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했다고 해도 휴학을 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나는 나이도 가장 어리고, 업무 경력도 없었고, 심지어 센스도 일머리도 없었다. 회사에 들어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눈만 데굴데굴 굴리면서 분위기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입사 후 몇 해는 일을 파악하는 것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세련되게 행동하는 것도 나에겐 큰 산을 넘는 것처럼 어렵게 느껴졌다. 동기들은 전부 회사에 잘 적응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다니는 것 같은데 나는 맡은 일만 겨우 해내며 근근이 다닌다는 기분을 스스로 느끼며 그저 하루하루 출퇴근을 반복하는 것만이 당시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랬던 내가 디자인 공부를 하고 복직을 하며, 아주 조금씩 일머리가 뭔지 찾아가며 나만의 방식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일머리는 결국 일을 보이게 하는 것이구나.


지독하게 눈치가 없었던 나는 직장 동료들의 마음을 미리 헤아려 일이 잘 해결될 수 있게 센스 있는 언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루하루 그 날 눈 앞에 놓인 일을 처리하기에 급급했었다. 그땐 나의 강점, 나만의 전략적 무기 같은 것은 전혀 생각해보지도 못했고 그저 실수하지 않고 내 일을 잘 처리하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여기며 회사를 다녔던 시절이다. 그러니 회사생활이 재미있을 턱이 없었다.


논문 통과와 대학원 졸업, 이어서 전공 분야 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한 이후에야, 직장 생활도 내 힘으로 유학 준비를 하고 타국에서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 공부를 하며 스스로의 한계에 끊임없이 부딪치며 극복했던 경험처럼 그렇게 하나씩 접근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내가 주안점을 두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회사생활을 시간이라는 선(Line)으로 인식한 것


나는 시간이 그렇게 소중한 지 몰랐다. 도리어 내가 빨리 나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철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입사 후 몇 해가 지나도 새로 들어오는 신입 후배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경우가 많았다. 수년이 흘러 겨우 나랑 나이가 비슷한 후배가 들어오는 경우에도 왠지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참 철이 없었다. 내가 나이를 신경 쓰지 않고 즐겁게 회사 생활을 했더라면 보이지도 신경 쓰지도 않았을 세상을 나는 그렇게 크게 인식하며 살아갔었다.


어서 나이가 훌쩍 들어서 후배들이 전부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로만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작은 마음 그릇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했던 나는 마음이 편했을 리가 없었다. 그런 어리석은 시간을 지나 보내며 느낀 것은, 세월이 흘러 설령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들로만 신입직원들이 채워진다고 해도, 내가 여전히 작은 마음 그릇을 가지고 있다면 또 그 나름의 불편한 점을 용하게 찾아내어 불평하며 직장생활을 했을 거라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나를 더 부끄럽게 만들었다. 결국 내 마음의 문제를 환경의 탓으로 돌리던 나를 정면으로 만난 것이다. 이후 부끄러움을 느끼고 내가 바꾼 제일 큰 것은, 회사 생활을 연결된 선(line)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현재 마음을 넉넉하게 갖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그 선은 미래의 시간과 연결되어 있어서 점점 마음이 더 편안해지고 언행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라는 것을 서서히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오늘 하루 내가 보내는 직장에서의 시간은 결국 내가 그토록 바라는 행복하고 편안한 미래의 직장 생활이라는 시간과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 업무 관계자들이 전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만약 늘 힘들다고 불평만 한다면 앞으로 이어진 시간의 끝 자락에도 여전히 불평하며 다니고 있을 것이고, 지금 마음을 바꾸어 나의 언행을 갈고 닦는다면 보이지 않는 선처럼 연결된 시간의 줄 끝에는 마음 편하게 직장 생활하고 있는 내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일을 처리해야 될 덩어리(Volume)로 인식한 것


회사에서의 인간관계에 이어, 일 측면에서도 디자인 공부했던 것을 활용해서 하나의 업무를 하나의 덩어리(Volume)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단절된 각각의 조각으로 인식하며 하나씩 겨우 겨우 처리하던 일처리 습관에서, 전체를 내가 책임지고 진행해야 될 큰 덩어리로 인식하고 시작부터 끝까지를 모두 종이 한 장에 시각화하는 일, 다양한 크기의 종이에 때로는 구체적으로, 때로는 포괄적으로 표시해보기도 하고, 그렇게 내 손으로 시각화한 것을 종이에 굵은 펜으로 써서 팀원들에게 발표해보기도 하고, 파워포인트 파일로 만들어 선보이기도 했다.


일을 흐름이 있는 선적인 존재, 복합적인 것들의 조합인 양적인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보고서를 쓰기 위해 기본 틀을 만드는 일, 보고서 상에 전체 흐름, 일 처리 도식 등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일들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꼭 보고서에 들어가는 공식적인 문서가 아니더라도 업무 노트에 하루 동안 해야 될 일을 시간과 일의 양으로 도식화하기도 하고, 일주일, 한 달, 분기, 반기, 년간 일정을 관리할 때에도 시각화의 힘을 십분 활용해서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회사 일이 허덕거리며 처리해야 될 숙제 같은 느낌이 아닌, 내가 주체적으로 끌고 갈 책임 있고 기쁜 일로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일머리와 함께 오는 것들


회사에서의 바른 처세와 훌륭한 일머리를 갖고 싶었지만 당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모르던 초기의 몇 년이 흐르고, 디자인 공부를 하며 익혔던 시각화 능력을 업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에게서 느꼈던 문화적 차이를 포용했던 경험을 직장 내 다양한 문제에 대입해보고 활용해보기도 하면서 나는 차츰 나만의 일머리도, 직장생활의 의미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자기만의 소신 있는 철학을 가지며 꾸준히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나만 힘든 줄 알았다. 어느 그룹에서나 내가 가장 취약한 사람이고, 나만 제일 힘들고, 이렇게 힘든데도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도 나 혼자인 줄 알았다. 그렇게 나만 생각했고 주변은 볼 줄 몰랐다. 그때 했던 나의 노력은 어쩌면 살고자 발버둥 치던 처절한 모습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엔 보이지 않았다. 발버둥 치던 내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선한 마음으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동료의 물장구도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첨벙첨벙 튀는 물방울들에 눈을 감고 팔다리만 휘젓던 당시의 나는 어쩌면 아무것도 듣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았을 수도 있다.


살면서 누구나 '이걸 도대체 왜 해야 되지?' 하면서도 계속하는 것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철이 없어도 한참은 없는 나는 그 대상이 '직장생활'이었다. 그렇게 불평하며 다니던 직장은 훗날 디자인 공부를 마치고 다시 돌아와서 일할 수 있게 든든한 엄마품처럼 나를 받아주었고, 나는 철없는 어린애의 모습에서 점차 내가 맡은 일의 소중함, 보이지 않던 프로젝트를 점차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의 재미, 지금 보내는 시간은 미래의 내 모습과 연결되어 있다는 나만의 철학을 확고히 하며 하루하루 단단한 직장인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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