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의 힘
나의 강의 경력은 초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는 '괘도'라는 수업 도구가 있었다. 지금처럼 컴퓨터가 보급화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교실에 괘도 걸이가 있고, 거기에 각 과목별 괘도를 걸곤 했다. 교과서는 내 신체 크기에 맞게 손에도 쉽게 잡히고, 가방에 넣어서 보관도 쉬웠지만, 괘도는 그것을 뻥튀기한 듯이 글씨도, 그림도 더 컸었고 때로는 교과서에 없는 내용이 괘도에는 자세하게 나와 있어서 나는 그것을 참 좋아했었다.
어쩌면 배경이 되는 종이의 크기가 커지고, 그에 따라 담기는 내용이 달라지는 것에 대해서 나는 그때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눈을 반짝이며 훗날 비주얼 씽킹 강의를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나의 비주얼 씽킹 생활은 초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생 때 6명 정도가 한 모둠이 되어 조별로 함께 이야기 나눈 후 조원 중 한 명씩 나와서 발표하던 기억이 난다. 한 학년에 한 반뿐인 작은 학교에 다녔었고, 친구들은 나를 '엄마'라고 부르며 반장으로도, 조별 발표자로도 추천했었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그때부터 이미 비주얼 씽킹을 시작했었다.
우리 모둠에서 이야기 나눈 것을 귀담아듣고, 요약해서 큰 종이에 매직으로 쭉쭉 써 내려갔다. 때로는 그림을 곁들이고, 모둠원들의 이야기에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생각해서 배치하며 우리 모둠의 괘도를 완성해갔다. 그리고 교실 앞에 나가서 우리 모둠의 이야기를 요약해서 발표했었다. 이 기억이 지금도 나는 것을 보면 나는 그 시간을 사랑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반장이었던 나는 내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좋아했었고, 또 말하는 것보다 글씨로 쓰는 것을 좋아했었고, 글씨로 쓰는 것보다는 그림으로 그리는 것을 좋아했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글씨 쓰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그 세 가지를 다 모아서 비주얼 씽킹을 했고, 그것을 가지고 나만의 해석을 곁들여 발표하는 것으로 나의 열정을 표현했었다.
초등학생에게 열정이라는 단어를 쓰기엔 조금 과한가 싶기도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림 그리고, 무언가를 만들고, 글씨 쓰고, 노는 것이 내 주된 일이었다. 그렇게 그림 그리는 것처럼 발표하는 것도 좋아하던 나였다.
회사에 입사하고, 외부 전문가를 통해서 신입직원 교육을 받기도 했지만 업무 관련 내용은 사내 강사 분들이 직접 해주셨다. 대부분 업무에 정통하고 계신 선배님들께서 신입직원의 눈높이에 맞춰서 업무 노하우와 업무 밖의 유용한 정보들을 나누어 주셨다. 모든 것이 새로웠던 내 눈에 사내 강사분들은 꼭 '업무의 신', '지식 나눔의 신'처럼 보였다. 이렇게 자신의 업무에 통달해서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 되려면 얼마나 노력해야 될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놀라면서 우러러봤었다.
내 어린 시절의 발표 경험이 고개를 쏙 내밀기 시작한 것은 둘째를 낳고 회사에 복직한 후 어느 날 도착한 사내 메일을 확인하던 순간이었다. '사내 강사 모집'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나도 할 수 있을까?' 최근 몇 년 사이 내가 했던 일이라곤 두 아이를 연년생으로 출산하고, 모유 수유하고,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던 것이 전부였다. '이런 나도 강사를 할 수 있을까?' 회사에 돌아와서 업무와 분위기에 적응을 하고 조금 여유가 생기자 어릴 때의 추억과 경험이 갑자기 되살아났고, 왠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바로 도전했다. 강사 지원서를 작성하고, 강사가 되는 교육을 받고, 카메라로 촬영하며 내 모습을 바라보기도 하고, 실제 강의에서 필요한 노하우들을 전달받으며 그렇게 꿈을 조금씩 조금씩 키워갔다. 회사 업무와 병행해야 했기에 평소의 업무는 더 깔끔하게 처리하려고 노력했고, 시간이 필요한 때에는 주말에도 출근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그때가 내가 정말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순간이었다. 무료하게 느껴졌던 직장생활이 이렇게 가슴 두근거리면서 출근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껴봤었다. 준비와 동시에 강의 날짜가 정해졌고 나는 모든 것을 눈에 보이게 하면서 하나씩 준비해 갔다. 아무도 없던 주말의 사무실에서 내 자리에 스탠드를 켜고, 컴퓨터를 켜고, 내 업무 경험을 잘 정리해서 교육생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을 선별하고, 강의의 큰 줄기를 잡고, 살을 붙이고 때로는 붙어있던 것을 떼어내기도 하면서 나만의 강의안을 완성해갔다.
화면 가득 글씨를 채우기보다는 최대한 이미지와 직관적인 색을 사용해서 지루하지 않게 강의에 몰입할 수 있게 돕고 싶었고, 그렇게 눈에 보이는 화면과 나의 말이 잘 조화될 수 있게 수없이 연습해보고 시나리오를 완성하면서 나는 내 업무도 완성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학원 시절 배운 것을 말로 표현하지 못해서 워크숍 시간에 멀뚱멀뚱 앉아있던 나에서, 드디어 회사 업무 경험을 나만의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변화해가는 내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설레는 일이었다.
어쩌면 이런 모습은 나만 아는 내 모습일 것이다. 과거의 내가 어떤 취약점을 가지고 있었고, 그때 나는 스스로 얼마만큼의 수치심을 느꼈었는지는 온전히 나 자신만 아는 일이다. 그 수치심이 클수록 다음에 만회하고 싶은 욕구는 더 강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영국에서 학과 공부에 대한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 참 어려웠던 기억이 있고 그때는 그렇게 비판도, 평가도, 의견을 덧붙이는 것도 힘들었었지만, 차츰 나만의 시각, 생각 주머니를 키워가며 드디어 남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것은 내게 매우 역사적인 일이었다.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는 본성에 귀 기울이고, 그렇게 파악한 것을 나만의 글씨와 그림으로 잘 표현해서, 조리 있게 발표하는 것을 좋아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원래 모습이었을 텐데, 중고등학생, 대학 시절을 거치면서 질문을 하지 않고 암기 위주로 공부하던 방식과 주변의 분위기에 짓눌려 점점 나만의 생각과 나만의 언어를 잃어버렸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잃어버렸던 나의 본성을 조금씩 찾아가던 그 과정은 마치 잃어버린 나를 만나는 것처럼 매 걸음걸음이 산뜻하고 가벼웠다.
이후 나는 많은 강의를 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거창한 준비가 필요했지만, 두 번째부터는 계속 수정과 개선을 거듭하면서 할 때마다 이전보다 낫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때로는 강의를 망쳐보기도 하고, 때로는 생각보다 좋은 반응에 기뻐하기도 하면서 나는 마음을 다스리는 법, 강의 결과에 초연 해지는 법, 꾸준하게 강의의 질을 개선하는 법을 항상 탐구해가며 내가 생각해도 멋진 강사가 되길 바라며 그렇게 횟수를 거듭해갔다.
강의를 한다는 것은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의 폭보다 더 넓은 영역을 수렴해서 내 것으로 만들고, 그렇게 내 것으로 만든 것을 전달받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게, 혹은 그 기대치 이상으로 잘 전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늘 한다. 어쩌면 강의는 지식을 전달하고, 노하우를 전수하는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이 더 큰 영적이고 서로 소통하는 것이 우선인 정신적인 활동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의 강의에서 전하고 싶은 것은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다.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 '나도 한 번 시작해볼까?'라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 '왜 내 마음이 움직이지?'라는 내면의 움직임을 눈치채게 하는 것이 어쩌면 실질적인 노하우들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이런 내면의 질문과 호기심을 갖는 것, 움직일 동기를 스스로 찾게 하는 것이 내 강의의 목적이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나는 쓰고 또 쓴다. 강사인 내 입장에서도 써보고, 교육생의 입장에서도 강의가 어떤 식으로 다가올지 마음의 흐름에 따라 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이쪽저쪽의 마음을 오가며 강의의 분위기를 상상해보고, 구체적인 강의의 내용은 꼭 그림으로 도식화해본다. 제일 먼저 강의 전체 내용을 한 장에 그려본다. 강의의 순서와 시간 배분, 제일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생각해보고 도입부터 클라이맥스, 결말까지 흐름을 적어본다. 강의의 큰 그림이 완성되면, 각 장으로 들어가서 각 장에서 어떤 사례와 근거자료들이 필요한지 파악하고 틀부터 만들어둔다. 그렇게 큰 그림에서 점차 작은 영역까지 전부 종이에 그림으로 그려보면서 내 머릿속에서는 계속 강의를 하나의 유기체로 인식한다. 각각의 작은 조각은 전부 큰 그림에 부합되게 하고, 이 전체 그림은 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든다.
이렇게 손으로 그렸던 아날로그 활동은 고스란히 컴퓨터 화면에 표현될 수 있게 디지털 작업을 거친다. 강의안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오가는 과정에서 차츰 완성된다. 컴퓨터 화면 채우기에만 바쁠 때는 나의 아날로그 기질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아서 딱딱하고 메마른 강의가 되기도 하고, 손으로 그린 그림과 메모에 시간을 너무 투자한 경우에는 최종 전달물인 디지털 완성물이 마음에 흡족하게 들지 않는 때도 있다.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계속 개선해나가는 중이다.
강의를 한다는 것은 늘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라는 것과 동의어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의 강의가 좋았다고 같은 교안을 가지고 강의를 한다고 해서 다음에도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내가 바로 어제까지 읽었던 새로운 책의 내용, 바로 어제까지 본 새로운 신문 기사, 바로 오늘 아침까지 생각한 새로운 통찰이 녹아있는 것이 강의여야 되고, 그런 강의를 할 수 있는 강사가 되기 위해 매일 읽고, 쓰고, 생각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나는 나의 본성과 나의 어린 시절 기억과 계속 닿아있으려고 노력한다.
세상의 틀에 아직 길들여지지 않던 초등학생 저학년 시절이 자꾸 생각나는 것을 보면, 어쩌면 10살 무렵까지가 가장 철부지였지만 가장 자유로웠고 나의 본성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살았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때의 내 모습, 내 마음으로 돌아가서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을 따라서 사는 삶으로 자꾸만 나아가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