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엄마의 육아법

아이가 그림 그려달라고 할 때

by 바이올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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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여정을 합쳐도 육아만큼 고난도인 것은 없었다. 아이를 품고, 낳고, 기른다는 것은 모든 것을 뛰어넘는 일이었다. 내 신체적, 정신적, 영적인 한계를 매 순간 마주해야 했고, 그 한계와 아무 상관없이 아이를 돌보는 일은 계속해야 했다. 반면 육아가 꼭 그렇게 거창하고 위압적이고 고된 일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생각지도 않은 순간에 큰 웃음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감동으로 눈물을 자아내게 하기도 한다. 그렇게 순간순간 반짝이는 보석 같은 시간들이 없다면 육아는 고된 노동에 견줄만할 것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흔들리지 않는 엄마의 소신이 필요한 순간들이 많다. 태교에서부터 출산, 산후조리, 신생아 돌봄, 영아, 유아시절의 교육과 훈육까지 다양한 정보와 광고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정보의 바다에서 양질의 것을 찾는 것도 엄마의 몫이고, 그중에서 우리 아이에게 적용해보는 일도 엄마의 중요한 역할이다.


나는 점점 자라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육아보다 내 삶에 더 비중을 두기로 언젠가부터 마음을 먹었다. 내가 만족스러운 삶을 살 때 나의 좋은 기운이 아이들에게 간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내가 즐겁고 신나게 일하는 모습이 아이들의 마음에 엄마의 상으로 남는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들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자기의 미래도 생각해보고, 세상의 모습도 가늠해보며 자기만의 본질을 향해 성장해갈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가 보는 전문 서적을 같이 보다.


내 욕심에 아이들 전집을 사준 적도 있었다. 내 물건 살 때는 신중하게 생각해보면서 아이들 책을 살 때는 앞뒤 가리지 않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결제한 후인 때도 있었다. 책을 많이 사주면 그중에 몇 권은 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관심은 계속 바뀌었고, 때에 맞춰 관심을 갖는 책이 단 한 권일 지라도 그 책을 엄마가 읽어주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그래서 아이들 책 사던 열정을 내가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열정으로 바꾸었고, 내 일과 관련된 전문 서적을 구매하는 데에 집중했다.


강의 준비를 위해 샀던 비주얼 씽킹 전문 서적을 내가 먼저 보고, 따라 그리고 있으면 아이들도 꼭 같이 해보겠다고 주섬주섬 종이와 연필을 챙겨 들고 왔다. 그러면 내가 보던 책을 아이들에게 주었다. 그렇게 아이들과 같이 비주얼 씽킹 책을 같이 보았다. 아이들은 나보다 더 좋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때로는 글씨에 정신이 팔려 그림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나에 비해, 아이들은 글씨를 익혀가는 중이기에 글보다 그림에 집중하며 보고 따라 그리곤 했다.


그렇게 한참을 집중해서 자기만의 세상을 그리고 나면, 내 손을 잡아끌고는 소파로 데려가서 자기가 무슨 그림을 그렸는지 꼭 설명해주곤 했다. 아이들은 어쩌면 그림 그리는 시간보다 그것을 엄마에게 설명하는 그 시간을 더 좋아하는 듯했다. 책에서 본 것을 자기 마음과 머리에 가지고 와서 보다 깊이 상상해보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든 후에 손으로 그림을 그려보고, 그것을 입으로 엄마에게 설명하면서 아이는 그 과정이 대단한 놀이인 것처럼 집중하고 몰입했고, 엄마가 손으로 가리키며 물어보는 그림은 신이 나서 설명하곤 했다.


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초등학생 시절의 내가 겹쳐 보였다. 나도 그랬다. 내가 쓰고 그린 그림을 친구들 앞에서 설명할 때 그런 기분을 느꼈었다. 우리는 모두 다른 머릿속 세상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세상은 아름다운 때도 있고, 때론 힘들고 고달플 때도 있다. 그 세상을 다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일 때도 있고, 때로는 버겁게 느껴지는 날도 있다. 다만 내면의 세상을 말로 표현하거나, 종이 위에 글과 그림으로 나타내면 그 기쁨은 드디어 생생히 눈에 보일 듯 소중한 기억으로 남게 되고, 삶의 버거움은 종이 위에서 힘을 잃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나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런 경험을 더 진하게 하길 바란다. 특히 마음이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 더욱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 인간은 불확실한 것, 막막한 것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모험심과 도전정신의 경계를 넘어가면 그것은 순식간에 두려움과 겁으로 바뀐다. 그때에 종이 위에 표현하는 지금의 경험이 꼭 힘이 될 수 있길 바란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의 대부분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표현해보면 생각보다 별 것 아닌 경우가 많다. 어른인 나도 여전히 두려움과 다투고 있지만, 계속 글로 쓰고 그림으로 그리면서 삶을 꾸려가고 있다. 아이들에게도 종이와 펜이 단단한 삶을 위한 든든한 도구가 되길 바란다.





동양과 서양의 그림


나의 취미 중 한 가지는 영어로 된 어린이 책을 읽는 것이다. 처음엔 아이들이 영어 익히는 것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재미있어서 나의 취미가 되어버렸다. 매직트리하우스 시리즈와 로알드 달 작가의 시리즈를 읽으면서 내가 이야기에 푹 빠져서 영어를 늘 가까이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는 장점 외에도, 아이들에게 삽화를 보여주며 그림책처럼 읽어주게 되었고 이 시간은 예상치 못하게 신나는 일이 되어버렸다.


생각을 그림으로 그리는 비주얼 씽킹 강사로 활동을 하면서, 그림으로 표현된 것은 늘 관심을 두는 편인데, '삽화가'라는 직업이야말로 진정한 비주얼 씽킹의 달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마음으로 느낀 후 정성을 들여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독서가에게 책의 맛을 더 깊이 느끼게 해 주고 몰입할 수 있는데 도움을 주는 귀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삽화를 연결해서 아이들에게 책 한 권을 읽어주기 시작하자, 아이들도 같이 책에 푹 빠져들었다.


한 번 마음에 든 책은 몇 번이고 또 읽어달라고 했다. 그렇게 삽화만을 연결해서 그림책처럼 읽어주는 때가 늘어나자, 아이들은 점점 삽화가의 그림을 조금씩 따라 그리기에 이르렀다. 아이의 오동통한 손으로 일곱 살의 감성을 담아서 그리는 그림에는 책에서 본 내용들이 담기기도 했고 자기만의 표현법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은 서양의 화가들이 그리는 그림 스타일을 조금씩 익혀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같은 알파벳을 써도 각 문화권마다 글씨체의 특색이 다르다. 그림 역시 마찬가지다.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각 문화권마다 다르다. 아이는 그렇게 우리나라 전래동화책의 그림 스타일과 영어권 책의 삽화를 보며 그림을 따라 그려보며 동양과 서양의 그림 스타일을 체험해보았다.


이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언어와 지리, 문화, 역사를 대체로 공유하고 있는 국가들은 서로 이해의 폭도 넓다. 하지만 접해보지 않은 문화권의 사람에게는 선뜻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쉽지 않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국력과 외교의 세계를 알아가고, 혹은 외국에서 공부하며 직접 몸으로 부딪쳐 볼 서로 다른 인종끼리의 포용과 관용의 모습을, 그림의 서로 다른 스타일을 익혀가면서 어렴풋하게나마 짐작 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잘 못했던 것이라도 아이들은 잘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욕심일 것이다. 그 욕심이 과하지 않도록, 그저 세월이 흐르고 나의 경험이 쌓여 그동안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내 눈에 보이게 된 경우가 있다면 그때 아이들에게 이런 세상도 있단다 하면서 안내만 하는데 그치길 바란다. 내가 그 길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거나 강요하는 부모가 되지 않길 바란다. 나 역시 여전히 새로운 길 앞에서는 망설이고, 자꾸 걷던 길로만 가고 싶은 습성이 올라온다. 그저 아이들에게 이쪽 길로도 한 번 걸어볼까 하면서 다정하게 물을 수 있는 부모가 되길 바란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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