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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Apr 24. 2018

함께 하고 싶었어.

네팔


 불바다가 넘실대는 듯 붉게 물든 구름 평원에 새빨간 태양이 반쯤 걸쳐있었다. 한국을 떠나 세계 여행의 첫 목적지인 네팔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유난히도 느리고 장엄했다. 비행기가 서쪽을 향하고 있어서 인지 석양의 붉은빛은 좀처럼 가지실 않았다. 긴 줄다리기 끝에 마침내 해가 지고 하늘에서 내려다본 땅에도 하나둘씩 별이 뜨기 시작했다. 여전히 전력 사정이 좋지 않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는 화려한 네온사인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대신 노란색 백열등이 점점이 자리 잡아 밤하늘의 별과 데칼코마니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전생의 고향을 찾아온 듯한 아련한 느낌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그 땅에 드디어 첫발을 내디뎠다.


네팔로 향하는 하늘에서 본 석양


 처음 네팔 여행을 계획했던 때는 20대에 인도를 여행하던 시기였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고 뒤죽박죽이던 인도를 여행하면서 다른 여행자들을 통해서 듣게 된 네팔의 모습은 무척이나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 청명한 히말라야의 고봉, 포카라에 있다는 고즈넉한 페와 호수에서의 여유로움, 힌두 문화와 티베트 불교가 섞인 오묘한 분위기의 사원을 그리면서 네팔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 시기의 네팔은 정치적으로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국왕 일가가 몰살당한 이후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틈타 마오이스트들의 게릴라 활동이 이어져 국경이 통제되는 일이 빈번했다. 나 역시 십 수 시간을 3등석 열차와 버스를 타고 힘겹게 네팔 국경에 도착했지만, 기약 없는 국경 폐쇄로 입국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못 해본 것에 대한 미련 때문일까? 이 이후로도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서 네팔에 관한 것을 볼 때마다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고, 마침내 이번 여행에서 그 한을 풀 수 있었다.


카트만두 더르바르 광장


 하지만 나의 기대와는 달리 네팔 땅에 발을 디딘 후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비효율적인 공항 시스템은 두 시간이 넘게 줄을 세웠고, 긴 입국 심사를 기다리는 동안 내 배낭은 여러 항공편의 화물이 뒤섞인 아수라장 속에 여기저기로 내던지고 있었다. 간신히 내 새끼들을 찾아서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때는 다시 눈이 부리부리한 수십여 명의 택시기사들에게 둘러싸여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승합차를 잡아 타고 카트만두 시내로 향하던 길에는 연기로 매캐한 밤거리를 폭주하던 운전기사가 경찰에 붙잡혀 실랑이를 벌이는 광경을 마음 졸이며 목격해야 했다.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로 도착한 숙소에서는 돈에 혈안이 된 숙소 주인의 예약 사기로 인해 야심한 밤중에 언성을 높이며 싸우기까지 했으니. 여행의 시작부터 이 길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 직감할 수 있었다.


마음까지 꽤뚫어 보는 듯한 신비로운 눈의 보다나트


 여행 첫날부터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긴 했지만, 다시 아침이 오자 오랜 기간을 계획했던 여행을 시작했다는 두근거림과 앞으로 펼쳐질 알 수 없는 길에 대한 설렘이 가득했다. 아침 일찍 나선 카멜 거리는 무척이나 분주했고 해가 높아질수록 점점 더 소란스러워져 갔다. 소란을 뚫으면서 사원과 왕궁이 있는 더르바르 광장으로 가는 길은 좁고 낡은 거리 사이로 흙먼지와 매연을 동시에 날리는 차와 사람들로 시작부터 우리 부부를 지치게 만들었다. 이미 인도를 여행했던 경험이 있는 나에게 이런 모습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풍경이었고 사실 인도의 거리에 비하면 상당히 양호한 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갑자기 낯선 문화를 만난 아내는 굉장히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같이 여행을 하면서 알아온 아내는 금세 적응하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낯선 문화를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는 티베트 사원의 신비로운 분위기는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망자가 불타고 있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 힌두 사원의 화장터가 주는 문화 충격까지는 극복하지 못했다.


"여기가 그렇게 오고 싶었어?"

  "응. 오래전부터 오고 싶었었어. 너도 그렇지 않았어?"

"아니, 난 솔직히 네팔이랑 안 맞는 것 같아."

  "뭐? 난 내가 좋아하는 곳은 너도 좋아하는 줄 알았어. 우린 늘 취향이 같았잖아!"


바그마티 강변의 파슈파티나트 사원에서 본 누군가의 마지막


 잡지 속의 사진이나, TV, 영화 등에 네팔의 모습이 나올 때마다 다음에 꼭 가보자고 말했었고, 그때마다 아내는 그러자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우린 서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와 싫어하는 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내가 알고 있는 아내도 역시 네팔 여행을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아내는 내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이라는 이유로 막연하게 자신도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왔다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의 취향이 비슷하다고 생각했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은 너도 좋아할 것이고, 네가 좋아하는 것은 나도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착각을 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준비를 하면서 가고 싶은 곳에 대한 조사를 충분히 했을 텐데, 큰 결심을 하고 떠난 여행을 너무 가볍게 여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태도는 그냥 나를 따라온 객관적인 관찰자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전에 같이 했던 여행에서 보여준 아내의 적극적인 모습과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하지만 평온한 일상을 보내다가 갑자기 너무도 다른 환경에 떨어져서 잠시 적응을 못하는 것이라 여기기로 했다.


 아내의 오감에 문화 충격을 안겨 주었던 카트만두를 벗어나 청정한 자연으로 유명한 포카라로 떠났다. 포카라라면 아내도 좀 더 편안 마음으로 즐길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포카라는 아주 오래전부터 여행자의 쉼터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안나푸르나를 중심으로 히말라야의 고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페와 호수에서 나룻배를 타고 호수에 비친 하얀 설산을 감상할 수 있는 곳. 복잡한 카트만두나 더 복잡한 인도의 바라나시에서 넘어온 배낭여행자들이 만든 여행자 거리에는 저렴한 숙소와 맛있는 식당이 즐비한 곳. 그 유명한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래킹이 시작하는 곳, 긴 트래킹에 지친 여행자들이 휴식을 취하는 곳. 포카라는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개미지옥처럼 배낭 여행자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나 역시 무척이나 큰 기대를 안고 포카라를 찾아 들어가는 개미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페와 호수와 히말라야가 어우러진 포카라


 카트만두에서 출발한 버스가 포카라에 다가감에 따라 점점 풍경이 변해갔다. 아수라장 같이 복잡한 도시를 떠나 나무가 빽빽한 숲길과 거친 물살의 협곡을 따라 6~7시간을 달리자 창밖의 풍경은 점점 웅장한 산세와 거대한 골짜기가 어우러진 장엄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이윽고 저 멀리 하얀 머리의 설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버스 안의 사람들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포카라에 도착해서 페와 호수 주변의 숙소를 찾아가는 길에서는 기대와는 사뭇 다른 모습에 약간의 불안감이 느껴졌다. 역시 너무 큰 기대는 실망을 불러오는 걸까? 포카라는 그동안 들은 명성과는 달리 너무나도 상업화가 되어있었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기대했건만 실상은 신나는 유원지 분위기였다. 물론 저 멀리 히말라야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잔잔한 페와 호수는 여전히 있었지만, 골목마다 새로운 호텔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라 어딜 가나 요란한 소리와 흙먼지가 날리고 있었고 청명했을 페와 호수는 곳곳에서 썩고 있는 쓰레기 때문에 더 이상 예전의 명성을 찾기 보기 어려웠다.


멀리 히말라야를 보며 즐길 수 있는 페와 호수의 뱃놀이


 약간의 실망을 했지만 그렇다고 포카라의 매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저렴한 숙소와 식당, 다양한 여행자 편의 시설이 있었고 세계에서 모여든 여행자들과 어울리는 재미는 방콕의 카오산로드에 못지않았다. 그리고 그 많은 여행자들을 불러 모으는 이유 중에 하나인 히말라야 트래킹만으로도 포카라는 꼭 찾아갈 만한 곳임이 틀림없다. 우리 역시 포카라를 찾아간 이유 중에 하나는 히말라야 트래킹에 있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히말라야 코앞까지 가서야 그 계획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나 혼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히말라야 산자락까지 온 이상 나 혼자라도 트래킹을 다녀오겠다는 생각으로 트래킹 코스를 조사했다. 짧게는 당일치기부터 한 달이 넘게 걸리는 다양한 코스가 있었다. 하지만 준비하면 할수록 점점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갔다. 아내는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고는 하지만 내 마음은 아내를 두고 동원 예비군 훈련을 떠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내 곧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상상했던 히말라야 트래킹은 그림 같은 풍경 속을 아내와 함께 걷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트래킹 준비를 더 구체화할수록 점점 그 아름다운 풍경에서 내 모습만 또렷지고 아내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트래킹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제야 아내가 네팔 여행을 선뜻 나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내는 네팔에 대해서 충분히 조사를 했었고, 네팔이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저 네팔을 꼭 가보고 싶어 하는 남편과 함께이고 싶었던 것이었다. 여행을 결심하기까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고 그랬던 만큼 각자 많은 욕심을 가지고 출발한 여행의 시작에서 '함께'를 먼저 생각해준 아내가 고마웠다. 이번에는 내가 히말라야 트래킹을 언제가 될지 모를 미래로 미루고 '아내와 함께'를 선택했다. 대신 포카라에 머물었던 열흘 동안 손잡고 포카라 이곳저곳을 함께 거닐었다. 열흘이나 시간이 있는데도 눈 앞에 보이는 히말라야를 가지 않는다는 우리 부부를 보고 다른 여행자들은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아쉬워했지만, 정작 나는 여행을 마친 지금 되돌아 생각해봐도 그리 아쉽지는 않다.


 함께 하는 여행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에 있었다. 함께 보고 듣고 느끼면서 감정을 공유하고,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생각을 나누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를 넘어 '우리'를 발견하는 일이 함께 하는 여행이었다. 네팔 여행을 통해서 그동안 '나'와 '너'가 하는 여행에서 '우리'가 하는 여행으로 생각의 전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긴 여행의 시작에서 '우리의 여행'을 깨닫게 된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


사랑콧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의 일출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새벽, 택시를 잡아타고 어둠을 뚫고 포카라의 뒷산 격인 사랑콧을 향했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작은 산의 정상에 올랐다. 히말라야 설산 틈으로 빨간 해가 머리를 내밀자 차갑게 내려앉은 공기를 가르고 빛의 줄기가 우리를 비추었다. 어둠 속에 있던 안나푸르나가 붉은색으로 물들다가 다시 은빛에 가까운 흰색으로 변하는 모습을 우리는 꼭 붙어서 함께 바라보았다. 혼자 떠나서 봤을 히말라야의 절경은 절대 사랑콧에서 함께 본 일출만큼 아름답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았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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