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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Apr 17. 2018

그럼 함께 떠나볼까?

대한민국


"우리가 살면서 함께 해볼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이 무엇일까?"

"음... 우리 둘 다 여행을 좋아하니까. 세계일주 어때?"


 신혼여행으로 갔었던 이탈리아 남부 해변 마을에서 지중해로 넘어가는 새빨간 해를 보며 언젠가는 세계일주를 해보자는 꿈을 이야기했던 것이 어쩌면 이 여행의 시작이었는지 모르겠다. 그 후로 세계일주라는 거창한 타이틀은 우리의 버킷리스트 1번에 수년간 지정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먼 미래에, 은퇴하고 나면,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등의 조건을 주렁주렁 단 체로 실현 불가능한 꿈인 것처럼 그냥 1번에 붙박이 장식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은 그런 꿈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실현시키기 위한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꽤나 나이를 먹었을 내가 결정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랬던 우리 부부는 어느 순간부터 그 생각지도 않았던 일을 하나 둘씩 준비하며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고, 많은 우여곡절 끝에 1년 2개월의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 이곳으로 돌아왔다. 우리나라와 같이 경쟁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그다지 여유롭지 않은 월급쟁이가 생업을 버리고 1년이 넘는 여행을 떠나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다.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갑자기 그런 결심을 했을까?



 우리 부부는 20대 중반에 배낭여행 중에 만났다. 나의 대학생활을 돌이켜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의 하나는 일상에 빈틈없게 빼곡히 가득했던 아르바이트 경험이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로 번 돈의 일부를 조금씩 모아서 휴학을 하고 장기 배낭여행을 떠났다. 모은 돈이라 해봐야 간신히 비행기 티켓을 사고 조금 남은 정도였기에 여행지에서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여행을 하겠다는 계획으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발급받아 호주로 떠났다. 아내 역시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들고 호주로 배낭여행을 왔었고, 시드니에 있는 어느 시끌벅적한 호스텔의 도미토리룸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다. 아내보다 먼저 여행 중이었던 나는 이미 몇몇 일자리를 거쳐가면서 모은 돈으로 중고차를 구입했다. 사실 군입대 전에 운전면허를 딴 이후로 단 한 번도 운전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처음 운전을 한다면 모든 것이 여유로웠던 호주에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덜컥 차를 샀다. 어차피 처음 하는 운전이었기에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는 것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시드니에서 출발하여 동부 해안선을 따라 호주 북부로 향하는 여행길에 기름값을 나눠서 부담하는 조건으로 동행들을 구했고, 그들 중에 한 명이 지금의 아내였다. 그러다가 각자가 원했던 목적지에 도착해서 헤어지고 아내와 단둘이 이동하던 중에 운명의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앞서 말한 갓 운전대를 잡은 초보 운전사는 갓길에 차를 대는 과정에서 그만 언덕 아래로 미끄러지고 말았고 차는 한 바퀴 반을 굴러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뒤집어져 버렸다. 다행히 둘 다 다친 곳은 없었지만 나에게 전 재산이나 다름없었던 차를 폐차시켜야 했고, 나는 내 실수로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외딴 오지에 나앉게 돼버린 동행에게 너무도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어이없는 사고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당황한 나를 위로하고 차분하게 뒷수습을 하는 아내를 보면서 처음으로 '저 사람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배려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이후에 남은 여행을 함께 하며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으면서 서로를 조금씩 더 알아갈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아내를 만날 수 있었고 우리는 이미 서로에 대한 많은 공감이 형성되어 있었기에 심한 다툼이나 감정 소모 없이 물이 흐르는 듯이 관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한국에서 연애하면서 생기는 사소한 트러블들은 함께 여행을 하면서 겪었던 이런저런 사건과 고민들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겨졌었고, 여행 중에 경비를 반반으로 나누어 사용하던 습관은 데이트 비용 정산에까지 이어졌다. 몇 개월의 배낭여행 동행 경험이 우리를 마치 오랜 연인 사이처럼 만들어 주었던 것이었다. 그러면서 누가 먼저 얘기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치 당연한 일인 것처럼 함께 사는 일을 계획하게 되었고, 내가 취직을 하던 해에 마침내 우리는 서로의 반려자가 되었다.



 결혼 이후의 생활은 연애할 때와는 많이 달랐다. 정확히는 결혼을 해서라기 보다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달라졌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둘 다 신혼 생활에 대한 아름다운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일상생활에 밀려버린 연애감정은 좀처럼 활약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에서야 만날 수 있었고, 퇴근 후에는 피곤했던 각자의 하루를 정리하기에도 바빴기에 서로를 보듬을 여유가 없었다. 아내와 보내는 시간보다는 회사 동료와 보내는 시간이 두배가 넘는 현실에서 우리 부부의 관계는 룸메이트 내지는 경제적 동반자의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비록 함께 있는 시간이 좀 부족하더라도 공동의 미래를 계획하고 가치관을 공유하는 관계라는 사실은 변함없었지만 항상 우리 둘 사이를 오고 가던 반짝이는 불꽃이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같이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인지, 돈을 벌기 위해 같이 사는 것인지 모호해지는 일상에 길들여져 수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붉게 빛나던 너도, 푸른빛이 반짝이던 나도 어느 순간 회색빛으로 바래 있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볼이 빨갛게 취한 친구가 최근에 정말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면서 호들갑을 떨며 말을 했다. "지난 주말에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와이프가 치약을 앞니에 바르고 있더라. 왜 칫솔에 안 바르고 앞니에 바르고 있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어릴 때부터 원래 그랬다는 거야. 신기하지?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결혼하고 3년 동안이나 같이 살면서도 내가 몰랐었다는 거 아니냐. 히히. 웃기지 않냐? 내일부터 유심히 관찰해봐야겠어." 그 순간에는 친구 아내의 신기한 습관에 나도 웃고 넘겼지만 뒤돌아 곱씹어 생각할수록 어쩌면 나도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온전히 다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사람을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으로 이해하면서 산다는 것은 룸메이트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에게도 아직 내가 발견하지 못한 미지의 모습이, 나에게도 아내가 미처 몰랐던 부분이 있을 것이다. 서로를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회를 지금의 일상을 벗어난 새로운 환경에서 만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다.


 그러던 중에 나에게도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다는 직장인 사춘기가 찾아왔다. 매일 야근을 하며 착취당하는 일상 속에서 직업에 대한 회의감으로 방황하는 여타의 직장인에 비하면 사실 나의 직장생활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에서 너무도 훌륭한 상사와 동료들 속에서 적성에 맞는 일을 즐겁게 하고 있었고, 매년 2~3주의 휴가가 있어서 여행에 대한 갈증을 푸는데도 문제가 없었다. 포근한 침실과 깨끗한 욕실이 있는 따뜻한 집이 있고, 손만 뻗으면 언제나 먹을 것이 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흔히 말하는 '등 따습고 배 부르니까 하는 투정'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기본적인 욕구가 만족되었기 때문일까? 내 마음속에는 다른 차원의 갈증이 생겨났다. 반복되는 일상은 그저 자본주의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소비를 위해 노동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고, 사회가 심어준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공포에 쫓겨 나의 젊음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더욱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은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는가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없었던 점이었다. 돌이켜보면, 공부를 하고,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모두 내가 선택해서 한 일들이지만 내가 정말 하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주변의 기대와 사회적 요구에 맞추어 살아왔던 게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 번쯤은 아무 이유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항상 무슨 결정을 할 때마다, 적합한 이유가 필요했었다. '~~를 위해서 ---을하겠어'라며 행동의 당위성을 만들며 살아왔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그냥 하고 싶었던 것을 순수하게 했던 적이 별로 없었다. 아무 이유 없이 멍하니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거나, 충동적으로 뭔가를 사거나 등을 하면 마음 한 구석에 불안함과 함께 일종의 죄책감이 피어났다. 입시 위주의 교육 제도,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 쉬지 않고 나아가지 않으면 경쟁에서 낙오되고 노후에 비참한 삶을 살 거라는 공포감. 아마도 이런 것들이 나에게 항상 행동의 이유를 묻고 정답을 찾아가려고 했던 거 같다. 하지만 삶에는 정답이라는 것이 없었고 그랬기에 당황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라도 나만의 답을 찾고 싶었다.



 입김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의 싸늘한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이런 나의 고민을 아내에게 처음 털어놓았다. 일을 잠시 쉬고 같이 여행을 하면서 서로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나에게 아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현실적인 대답을 했다. 모아놓은 돈을 다 털어서 여행을 다녀와서는 어떻게 살 것인가? 재취업이 가능할까? 취업이 아니라면 대안은 있는가? 일을 그만두고 수입이 없어도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기본 지출이 있는데 감당할 수 있을까? 등에 대한 걱정을 하며 철없는 나를 타일렀다. 나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경제적인 걱정들을 무시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었지만, 그 이야기가 먼저 거론되는 상황이 못내 서운했다.


"고민이 많은 것은 알겠는데, 다들 그런 고민을 하면서도 평범하게 살고 있어. 세상 일은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 법이라잖아. 지금은 우리가 준비가 덜 되었으니 조그만 더 시간이 지난 뒤에 생각해보자."


 해가 바뀌고 다시 봄이 왔을 때쯤, 나는 현실을 인정하고 꿈을 접기는커녕 조금씩 더 구체화시켜가면서 아내와 함께 할 세계일주를 그리고 있었다. 벽에 세계지도를 붙이고 여행 관련 책을 사서 모으는 동안에도 아내는 저러다가 말겠지 하는 눈빛이었지만, 어느 날 덜컥 1년 뒤에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뿌듯해하는 나를 보고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이 남자가 제대로 미쳤구나.' 그때부터 주말마다 집 근처의 호수변을 산책하면서 우리 부부는 참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구체적인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도 여행의 목적에 대한 공감을 형성하는 게 우선이었기에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삶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함께 했었다. 많은 대화 끝에 우리가 내린 결론은 지금의 생활도 큰 불만은 없지만 아직 젊을 때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 생각과 우리 둘만의 특별한 경험을 통해 서로를 좀 더 깊게 알기 위한 기회를 갖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금의 안정적인 환경을 깨고 예측할 수 없는 길에 따르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았다. 철창문을 열어줬지만 천적이 없는 안전한 사육장과 규칙적으로 나오는 먹이에 길들여져 야생으로 나가기를 두려워하는 동물 같은 나약한 모습으로 하루에도 열두 번씩 철창문을 나갔다가 들어왔다가를 반복하며 쉽사리 마음을 정하기 어려웠다. 나보다 더 현실적인 아내는 계속해서 선택에 대한 미래의 시나리오를 세우고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며, 흔들리는 마음을 잡기 위해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가늠해보려 노력했다.



 그해 여름, 뜻밖의 사건을 겪으면서 갈팡질팡하던 마음이 정리되는 순간이 왔다. 바로 두 번째 운명의 교통사고를 만난 것이었다. 아내와의 인연을 맺어준 첫 번째 교통사고 이후로는 스크래치 수준의 사소한 사고조차도 없었기에 뉴스에 나오는 큰 사고들은 마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듯이 여겨졌다. 그러던 중에 업무차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에 갑자기 끼어든 차로 인해 1차선에서 난데없이 급정차해버린 차를 발견하고 있는 힘껏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안전거리가 부족했던 탓인지 완전히 멈춰 서지 못하고 들이받고 말았다. 다행히도 거의 정지할 무렵 부딪쳤기에 나와 동료는 다치지 않았지만 차는 엔진이 밀려들어올 정도로 부서지고 말았다. 만약 뒤따라 오던 차가 나를 덮쳤더라면 2차 사고로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 정도로 끝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뉴스에서만 보던 목숨이 오가는 큰 사건 사고가 나에게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을 실감하며 '우리에게 어쩌면 내일이 없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을 즐겨라', '행복은 현재에 있다' 등의 이야기를 수없이 들어왔지만 그저 머릿속으로만 이해했던 것이 현실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당장 내일이 없을 수도 있는데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먼 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는 것은 어리석은 게 아닐까? 설령 내가 그토록 바랬던 대로 먼 미래에 유복하게 살고 있다고 한들 인생에 가장 빛나던 시기를 무미건조하게 보냈다는 사실이 후회되지는 않을까? 당장은 좀 불안할 지라도 잠시 일탈을 하는 일이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날부터 우유부단하던 나도 계획적인 아내도 불안감을 내려놓고 오늘만을 위해 마음을 쓰기로 결심했다.


 평생 기억에 남을 우리만의 시간을 만들기로 마음을 먹고 난 순간부터 회사 동료들, 친한 친구는 물론 부모님도 몰랐던 우리의 이중생활이 시작되었다. 회사 내에서는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을 살 사람처럼 평범하게 회사일을 하고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대형 세계지도가 걸려있는 서재에서 여행 정보를 수집하고 여행 경로를 수없이 다시 그리면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1년이 넘는 장기 여행을 위해서는 준비할 것이 너무도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준비할 게 거의 없기도 했다. 매번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아무리 자세히 조사하고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도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면 예상치 못했던 사건으로 인해 계획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짧은 일정의 여름휴가를 준비하듯이 꼼꼼하게 동선을 짜고 조사를 하기에는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길은 너무도 길었다. 그래서 나는 굳이 여행지에 대한 준비를 할 필요 없이 현지에서 정보를 얻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흘러 다니는 것이 오히려 더 적합하다고 주장하면서 마음만 들뜬 채 여행지 사진과 다큐멘터리에 빠져들었고, 반면에 꼼꼼한 아내는 각 국가별 출입국 정보, 환전, 안전사항 등의 최소한 준비와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공부를 이어갔다.


 여행 출발일이 다가오면서부터는 보다 현실적인 준비과정이 이뤄졌다. 일 년이 넘는 동안 모든 살림살이를 담아줄 튼튼한 배낭을 구입하는 일부터 풍토병에 대비하기 위한 예방주사, 여행 경비를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관리해줄 은행 계좌와 신용카드를 만드는 일, 여행용 노트북과 카메라를 구입하는 일, 여권 갱신, 비자 신청, 여행자 보험 가입 등등 여름휴가를 준비할 때에 비해서 할 일이 꽤 많았었다. 다행히도 오랜 기간을 두고 여유롭게 준비했기에 일주일에 한 가지씩 미션을 수행하는 기분으로 즐겁게 준비할 수 있었다. 심지어 여행 중에 스쿠터를 빌려서 다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난생처음 오토바이 운전을 배우기도 했고, 스쿠버다이빙을 대비해 평소에 끼지도 않는 콘택트렌즈도 준비했다.



 출발을 두 달 정도 남긴 시점, 세계일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두근거리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여행 계획을 알리고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었다. 마치 반전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겠다는 우리의 선언에 지인들은 놀랬었고, 부모님은 등짝을 치셨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회사에도 사직서를 제출했다. 앞서 말했듯이 오래전부터 나의 버킷리스트 1번은 세계일주였고, 2번은 유치하게도 '세계일주를 사유로 사표 쓰기'였다. 그 이유는 내가 만약 회사를 그만두고 나온다면, 무능력에 의한 해고, 처우에 대한 불만이나 인간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무언가 때문이길 바래서였고 그 무언가가 세계일주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회사생활은 고통보다는 즐거움이 컸었기에 막상 사직서를 제출한 후에는 후련함보다도 아쉬움이 더 컸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버킷리스트 2번을 지우면서 요즘 세태를 역행하는 자발적 백수가 되었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더 이상 출근할 곳이 없어진 날부터 여행을 출발하기까지 3주의 시간이 주어졌다. 충분할 줄 알았던 3주는 정말 어떻게 보냈는지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정신없이 지나갔다. 퇴사 후의 연금, 의료보험 등의 정지 처리, 여행 중에도 발생할 고정 지출을 대비한 은행 업무, 장기 여행에 대비한 건강검진, 집 및 자동차 정리하기, 관리비 및 세금 정산, 통신 계약 해지, 부재중 주소지 변경 등 해야 할 일이 끝이 없었다. 잠시 자리를 뜨려고 돌아보니 그동안 내가 알게 모르게 내려왔던 뿌리가 꽤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끊어내지 못할 만큼 뿌리가 자라기 전에 여행을 결심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평소에는 못 느꼈었지만 떠나려고 보니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여행 출발 전날에서야 온 집을 난장판을 만들어가면서 배낭 꾸리기를 끝내고 뜬 눈으로 밤을 새운 채 새벽녘에 집을 나섰다. 비행기가 지면에서 이륙하는 순간, 오래전 번지 점프대에서 발이 떨어지던 그 찰나의 순간이 문득 떠올랐다.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면서 두려움과 후회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가 몸이 점프대를 떠나 더 이상 되돌아 갈 수 없음을 인지하는 순간. 모든 두려움과 미련을 내려놓고 내 앞의 스릴을 받아들이게 되었던 그 순간.


 드디어 우리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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