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여기 쿠킹 클래스
서울에서는 알람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제주로 이주해서는 새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그리고 이곳 치앙마이에서는? 오토바이 소리에 잠을 깹니다. 정말 깹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앙마이의 아침은 참 평화롭습니다.
어느새 일상인 듯 샤워를 하고, 가방을 메고. 커피를 마시고, 모닝 똠얌꿍을 즐깁니다.
오토바이 매연과 함께 즐기는 똠얌꿍, 나는 지금 확실히 치앙마이에 있나 봅니다.
아침부터 매운 똠얌꿍을 먹으니 시원 달달한 아이스크림이 급 땡깁니다.
아이스크림 하나 급 땡기면서 '오늘은 뭐하지?' 하다가 급 똠얌꿍을 만들어 보기로 합니다.
바로 쿠킹 클래스를 검색하고, 바로 전화를 걸어, 바로 예약을 합니다.
편하게도 숙소로 픽업까지 와준다 하니 오늘을 뭔가 편하고 재밌고 맛있는 하루가 될 듯합니다.
약속된 시간에 숙소 앞에서 한참을 기다립니다. '뭐지? 왜 안 와?' 하는 순간에 전화가 옵니다.
드라이버> 너 어디야?
나> 넌 어디야?
드라이버> 나 *** 입구
나> 나도 ***입구
드라이버> 너 없는데!
나> 나도 없는데!
알고 보니 내가 머물던 숙소는 님만헤민 말고도 칭앙마이 다른 두 곳에 더 있었습니다.
결국 요리 선생님과 따로 통화를 하고, 수업의 시작인 재래시장에서 합류하기로 합니다.
만나자마자 쏘리 쏘리를 반복하는 선생님(첫 사진에 나 귀엽지 하는 듯한 표정의 젊은이)
그런데 말입니다. 쏘리 쏘리 하는 그 말이 참 고맙습니다. 누군가의 잘못도 아닌데 그 모든 것이 다 미안하다는 그의 마음이 참 고마웠습니다.
문득, 사람의 대화에 새로운 패턴이 생겼으면 했습니다.
누군가> 쏘 쏘리
상대방> 쏘 땡큐
뭔가 이상하지만, '쏘리'의 답은 '뎃츠 오케이'가 아니라 '땡큐'였음 좋겠습니다.
그 마음이 쏘~ 고마우니까 말입니다.
수업은 재래시장을 방문해서 재료들을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대략적인 맛과 향을 익히는 걸로 시작합니다
선생님의 열정적인 설명이 끝나고 자유 탐방 시간을 갖습니다. 그 열정에 너무 쏘리 하게도 뭐가 뭔지 기억도 안나고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일단 찍어 둡니다.
재료들을 하나하나 찍다 보니 많은 순간들이 문득문득 떠오릅니다.
이태원 어느 뒷골목에서 처음으로 똠얌꿍을 먹던 날, 이건 뭔 맛이지 했던 날.
가로수길 건너편 타이집에서 똠얌꿍에 반했던 날, 이 맛 죽이네 했던 날.
제주 서쪽 바다 태국인이 운영하는 타이집에서 똠얌라면을 먹던 날, 여기는 태국이네 했던 날.
그때 그 맛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음식의 맛은 그때 그 맛인가 봅니다.
시장 투어를 마치고 클래스에 도착합니다. 이곳을 교실이라고 해야 하나? 주방이라고 해야 하나?
느낌은 요리 먹방을 찍을 것 같은 촬영장 같았습니다.
이제 재료와 주방도구와 불과 기름과 손과 혀가 그 무엇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벌써 배가 고파집니다. 음식을 먹는다의 삶에서 음식을 만든다의 삶으로, 오늘은 천재 셰프가 태어나는 날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씻고, 깍고, 자르고, 다지고, 뜯고, 찧고,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요리 준비 끝~이라는 말은 쉽게 하면 안 됩니다. 해보니 요리의 9할은 준비였습니다.
또 하나 깨닫기도 합니다. 음식은 사 먹는 게 맞는 것 같다!
여하튼 오~~~~~~랬동안 준비한 재료들을 휙~ 지지고 볶고 끓이니 진짜 요리가 등장합니다.
오 마이 갓! 내가 만든 태국 요리라니!
감히 말하건대 그 맛은 이태원, 가로수길, 제주 서쪽 바다 그때 그 맛보다 한 수 위!
각자 만든 것은 각자 먹어치운다. 그것이 이 클래스의 법칙!
그렇게 전쟁 같은 흡입의 시간이 끝나고 나니 포만감이 밀려옵니다.
배가 불렀지만, 배보단 마음이 더 불렀습니다.
처음으로 내가 나를 위해 만들어준 요리,
누굴 보여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누구보다 더 맛있게도 아니고, 오로지 온리 내가 나를 위해
마음이 터지게 불렀습니다.
경쟁, 시기, 질투, 좌절, 포기, 욕심, 거짓, 포장, 인척, 아닌 척...
늘 공허하고 지쳤던 지난날들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포만감, 마음이 꽉차오릅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치앙마이의 밤거리,
난 내 지난 인생에 진심 모아 쏘리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힘들고 지치게 살아온 나에게 나는 너무 인색했다고,
이렇게 나를 위해 내가 해준것은 너무 없엇다고,
해준것도 없이 더 달리라고 채찍만 들었다고,
나를 힘들게 한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나였다고,
쏘 쏘리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다가올 내 인생이 땡큐라고 쏘 땡큐라고 말해줄 것 같았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대한민국 모든 젊은것들에게 직접 만든 똠얌꿍 한 사발 대접하고 싶습니다.
잔소리 한 꼬집 넣어~
"음식은 사 먹는 게 맞는 것 같아. 근데 인생은 만드는 게 맞는 것 같아. 너 입맛에 딱 맞게!"
2018년 1월 어느 날 @chiangm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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