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아재로드_여덟

나는 지금 여기서도 꼰대

by ki




#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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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앞 작은 포장마차,

하루하루 여행을 마치고 들어가는 길, 나는 여기서 꼬박꼬박 야식을 챙겨 먹습니다.

오늘도 보람찬 하루를 마치고 이곳에서 야식을 먹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하나는 부족해서 먹고 바로 또 하나를 주문합니다. 바로 그 순간!


보기 드물게 덩치 큰 태국 젊은것이 옆에 앉습니다.

약간 술냄새도 납니다. 그리고 덩치가 내게 말을 건넵니다.


느낌은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건 알겠는데...

뭔가 영어를 하고 싶어서 시도하는 느낌은 알겠는데...

알딸딸 적당히 취한건 알겠는데...


덩치> 불 좀 빌려줘~

나> 뭘 빌려줘???

덩치> 담배 피우려는데 불 좀 빌려줘~


'아... 요 쒹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어디 어른한테'

그래도 여긴 한국이 아니니까, 말을 걸려고 하는 노력이 보이니까, 뭐 그럴 수도 있지라고

세포 곳곳에 숨어있는 긍정에너지를 쥐어짜서, 너그럽게 꼰대 감성을 짓누르며 불을 빌려줍니다.

그러면 그냥 담배나 필것이지 요 쒹끼가 자꾸 말을 겁니다.


덩치> 어디서 왔어?

나> 한국.

덩치> 오~ 나 한국 가봤는데

나> 그러냐

덩치> 작년에 대구 갔었는데 fucking 더웠어


갑자기 귀에서부터 짜증이 확 밀려옵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될 것을 짓누른 꼰대 본성이 폭발합니다.


나> 요 쉭끼야! 말할 때 fuck거리지마! 그렇게 fuck거리며 말하면 니가 fucking 쿨한 줄 알지? 내가 이렇게 fuck fuck 거리니가 내가 fucking 쿨해보이냐? 니 fucking 프랜드랑 얘기할 때나 fuck fuck 거리면서 말해.

니가 fucking 아메리칸도 아니고 fucking 흉내 내지 마. fucking 영어로 말하고 싶어? fuck 빼고도 fucking 대화되거든!

덩치> 쏘리


태국 청년과 한국 꼰대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습니다.

덩치 녀석은 피던 담배까지 조용히 끕니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 나란히 앉아 각자 주문한 것을 말없이 없었습니다

나도 태어나 처음으로 그렇게 많은 fuck을 말속에 밀어 넣어 봤습니다.

근데 솔직히 그렇게 fuck fuck거리며 말해보니 은근 쿨한 듯 ㅋ


그냥 맛있게 먹으며 fucking 더운 대구 이야기나 할걸...

그냥 같이 담배나 피우며 fucking 젊은 녀석과 이야기나 해볼걸...

오래전 fucking 젊은 나로 돌아가 fucking 그 시절이나 느껴볼 걸...


술에 취했는지 내 꼰대질에 취했는지, 얼굴 빨갛게 달아오른 덩치가 먼저 그릇을 비우고 떠납니다.

덩치에게 미안한 밤입니다. 그리고 돌이켜 생각해 보면 덩치에게 안 맞은 것이 다행인 밤입니다


"덩치야 fucking 쏘리해. 진심이야"




2018년 1월 어느 밤 @chiangmai

* https://www.instagram.com/ki_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