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여기 요가 매트 위
하늘이 줄어듭니다. 그리고 그림자는 늘어납니다.
치앙마이의 하늘은 조금씩, 꾸준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3년 전 치앙마이는 오늘의 치앙마이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방콕 사람들이 몰려오고, 어느 날부터인가 중국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흙만 있던 빈 땅은 건물들로 가득해집니다. 마치 제주도처럼 말입니다. 누군가는 득을 했을 테고, 누군가는 실을 했을 것입니다. 자연의 이치가 있듯 사람 사는 것에도 이치는 있겠지만 채워진 건물 수만큼 아쉽고 아쉬운 만큼 그립습니다. 그때 그 치앙마이...
아침 햇살, 아니 아침 그림자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치앙마이의 재미 중 하나는 곳곳에 숨어있는 요가원을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남자로 태어나 주먹 하나 믿고 도장깨기를 하는 멋진 남자는... 난 모르겠고, 난 요즘 요가가 재밌습니다. 배가 나왔어도 배가 접히지 않아도 발끝이 멀어도 너무 멀어도 요가가 은근히 재밌습니다. 그래서 이곳저곳 요가원을 기웃거립니다. 치앙마이의 요가원은 참 재밌습니다. 한국의 요가원은 왠지 날씬해야 할 것 같고, 좋은 요가복을 입어야 할 것 같고, 왠지 잘 해야 할 것 같지만 전 세계인이 모이는 이곳 치앙마이의 요가원은 음... 뭐라 할까? 음... 여하튼 볼만하고 가볼만합니다.
저마다의 복장과 저마다의 몸매와 저마다의 땀냄새,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 요가 매트 위에 펼쳐집니다. 마치 세계지도 같기도 하고, 해적선에나 있을 법한 오래된 보물지도 같기도 하고 여하튼 참 묘합니다.
대부분 특별한 일정이 없긴 하지만 오늘도 특별한 일정이 없어서 요가원을 향합니다.
특별한 일정이 없으니까 요가 원에 제일 먼저 도착합니다. 꽤 넓은 곳 많은 매트가 깔려 있습니다.
'오 넓은데~ 저 매트가 다 찰까?'
어느새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옵니다. 처음 온 사람도 있고, 종종 오는 사람도 있고, 매일 오는 사람도 있는 듯합니다. 국적은 다 달라도 인간의 본성이 그런 건지 너무 재밌는 현상이 보입니다. 누구도 앞자리와 가운데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구석부터 하나둘씩 자리를 매워갑니다.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긴 가 봅니다. 물론 난 제일 먼저 갔으니까 명당을 차지합니다. 제일 뒤.
요가가 시작되기 전 파란 셔츠 요가 선생님이 강의를 합니다. 뭐 자세히 알아들은 순 없지만 좋은 얘기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지도 하에 요런 저런 자세를 잡아가며 전 세계가 하나로 통일됩니다.
잘은 모르지만, 요가도 마치 종교의 종파처럼 다양한 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그 다다른 모든 요가의 시작과 끝은 호흡인 듯합니다.
또 잘은 모르지만, 그 호흡은 자신을 만나러 가는 통로인 듯합니다.
각자의 매트 위에서 각자의 호흡으로 각자의 자신을 만나러 가는 듯합니다. 아니 만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자세가 어려워질수록 호흡에 집중하고, 그렇게 자신에게로 조금씩 조금씩 다가서는 것 같습니다.
'나는 나를 만나면 뭐가 달라질까? 뭐가 달라지기를 바라는 걸까? 난 누굴까?'
개인 강습도 받아보고, 그룹으로도 받아 보고, 이렇게 단체로도 온몸을 접어도 보고 당겨도 보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도 해보지만 나는 내게서 참 멀리 있나 봅니다. 내 손으로 내 발끝도 닿지 못하는데 내 안에 나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합니다. 잠시 손발을 풀고 편안히 앉아 세상 사람들을 구경합니다.
내가 제일 잘해라고 보란 듯이 자세를 취하는 사람, 이런 게 요가야? 하듯 어색의 끝은 달리는 사람, 낑낑대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 꼭 반대 방향으로 하는 사람, 한 템포씩 느린 사람, 한 템포씩 앞서가는 사람, 딱 정석대로 하는 사람, 자꾸 남의 눈치를 보는 사람, 자꾸 옷에만 신경 쓰는 사람...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유심히 보다 보니 나도 저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 안에 나는 누군지 모르겠지만 저 사람들 안에 나는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는,
누군가의 가족, 누군가의 동료,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아는 사람...
어느 회사를 다니는 사람,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 얼마큼의 연봉을 받는 사람...
안정된 미래를 위해 오늘도 불안정된 하루를 사는 사람, 더 높이 오르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을 밟는 사람...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 어떤 시선을 가진 사람, 어떤 꿈을 쫓는 사람...
아니 나는, 그저 지금 여기 저 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 왠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느낌이 듭니다.
묘한 해방감이 듭니다
나를 만나 무언가를 느끼고 깨닫고 달라지고... 글쎄 입니다
굳이 이렇다 저렇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
그냥 수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 그냥 나,
내가 찾던 나는, 내가 만나고 싶던 나는 그런 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넌, 니가 누군지 아니? 너도 그냥, 너야"
2018년 1월 어느 날 @chiangm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