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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Jul 13. 2021

면접, 합격했는데요, 까였습니다



면접 본 곳에서 합격 전화가 왔다. 언뜻 듣기로는 경쟁자도 많았고 인기도 꽤 있는 곳이었는데 최종 1명에 내가 뽑혔다니. 그러나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왜일까.


지난 면접은 순조로웠다. 대표님은 나와 사는 곳이나 출신 학교 등에서 공통점이 많았고, 면접자인 나 편안하게 만들어주려 부단히 노력하시는 등 기본적으로 젠틀하고 호의적인 분이었다. 덕분에 이력서에 미처 쓰지 않은 사소한 에피소드나 내밀한 이야기들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한 시간 가까이 즐겁게 면접을 봤다. 하지만 문제는 연봉 협상 때 발생했다. 대표님은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며 온화하지만 단호하게, 지난 직장에서의 경력은 인정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래, 직무 연관성이 떨어지니 그럴 수 있지 싶었다. 그러나 그걸 감안했다손쳐도, 업계 기준 급여에도 못 미치는 계약 조건이 돌아왔다. 거기에 길고 긴 수습 기간은 덤. 다른 직원들도 기본 시작은 이러했다, 형평성 문제 때문에 어찌할 방도가 없다, 수습 기간이 지나면 충분한 인센티브가 발생하니 걱정마셔라, 는 말을 덧붙이면서. 이게 말로만 듣던 후려치기라는 건가.


돈으로 모욕해주실 분 구함


내가 아예 경력 제로의 신입이었다면 '이 업계가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급여는 다소 적더라도 배울 것이 있다면 감수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충성을 서약했을지 모른다. (실제로 이 직장은 매력적인 듯 보였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중고 신입이었다. 급여는 생각 이상으로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단순히 돈을 떠나서 자존심이기도 하고 내 값어치에 대한 세상의 평가이기도 하다. 나는 비슷한 업계에 있는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해보기도 하고, 아예 다른 직종의 지인들에게도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일단 해보고 아니면 나온다는 마음가짐으로 들어가 보라'는 찬성파와 '그런 곳은 눈길도 주면 안 된다'는 반대파가 첨예하게 부딪혔다.


결론은 뭐냐고? 나는 협상을 시도했다. 합격 전화를 받고 당돌하게 대표님께 질문을 드렸다. 많은 지원자 중 나를 뽑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많은 이유가 있지만 특히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으려 노력한 점을 높게 평가하셨다고 했다.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추진하고 결성하는 능력이 돋보였다고 했다. 다른 분야로의 확장성이 있고 파급력이 있는 인재를 뽑으려는 회사의 니즈와 일치했다고 했다. 나는 거기에 대고 아주 발칙하게 딜을 넣었다. "맞다. 잘 보셨다. 나는 실제로 그런 사람이다. 아마 대표님께서 기대하신 것보다 더욱 성실하고 창의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고 자신한다. 그러니 제가 제안을 드리고자 한다. 급여 부분에서 조금 더 인정을 받고 싶다. 많이 바라는 것도 아니고 업계 최저선 수준으로만 주셔라. 나머지는 내가 열심히 일해서 인센으로 받아가겠다."


나름 배짱을 부린 내 요청에 돌아온 대답은 '어렵다'였고, 나는 고심 끝에 거절의 의사를 보냈다. 정말 가고 싶은 곳이었는데 아쉬웠다. 쩝.




사실 사측 입장도 이해가 간다. 자신의 업장을 맡길 사람을 고작 한 시간의 면접만으로 판단하기는 이르니 긴 수습 기간을 둔 것일 테다. 업무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매출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급여를 줄인 것일 테다. 일단 뽑는다고 뽑긴 했지만 막상 내 능력이 그 값어치를 할지 의심됐을 수도 있겠다. 나 역시 언젠간 업장을 운영할 입장으로서 그런 리스크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회사와 함께할 수 없다고 판단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직군 특성상 폐쇄적인 커뮤니티에서 구인/구직을 하는데, 명시된 급여 기준 하한선이 있다. '그 이하의 급여로 구인을 하고 싶다면 해당 커뮤니티를 이용할 수 없다'는 확고한 룰이다. 대표님은 두 가지 꼼수를 부렸다. 양질의 이력서를 많이 받기 위해 회원수가 가장 많은 커뮤니티를 이용하면서, 기본이 되는 급여 규칙을 위반한 것. 그리고 기존 직원과의 형평성을 운운하며 그것을 정당화한 것. 그 자명한 사실 앞에서 어떠한 감언이설―'우리 회사는 얻은 것을 직원과 합리적으로 나누려고 노력한다(실제로 한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스스로가 그 급여보다는 나은 인재라고 생각한다.




업계 최저선을 지키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그 제안에 응하는  나 역시 거기에 동조하는 꼴이니까. 만약 내 케이스가 다음 구직자에게 후려치기의 수단으로 사용된다고 생각하면, 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물론, 내가 거절한 그 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갈 것이다. 어떤 누군가는 그 정도만 받고도 거기서 일하는 것만으로 감사할 수도 있다. 아무래도 그 회사가 업계 최저선을 지키지 않아서 구인이 어려워질 일은 없을 것이다. 여태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계속. 잘 먹히니까 그렇게 하는 거겠지. 그러나 나무 심는 인간이 턱없이 부족한 세상이라고 해도, 혹은 나무 심은 인간이 그 열매를 맛볼 수 없다고 해도, 여전히 나무는 필요한 법이다.

요태까지 그래 왔~고 아패로도~ 켸속.


대표님은 면접 당시 이런 질문을 했다. "이건 정말 사람 대 사람으로서 궁금해서 여쭤보는 건데, 혹시 꿈이 뭔가요?" 그때 나는 이런 심오한 질문을 받을 거라 미처 예상치 못해 어버버 하며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까 이런 말을 할 걸 그랬다. 제 꿈은, 어떤 순간에도 결코 비겁해지지 않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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