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즈음이었을 것이다. 진지하게 퇴사를 결심한 것은. 출근길 지하철 계단 오르는 일이 점점 두려워지고, 환자들이 빚쟁이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던 그때. 여기도 아파, 저기도 아파, 왜 안 낫죠, 원인이 뭐죠, 치료받고 더 아픈 것 같아요, 별로 효과가 없어요 등등 끊임없이 내게 무언가를 호소하고 요구하는 환자들. 그리고 매일 더 쌓이는, 도저히 내가 갚아낼 수 없는 빚들. 나는 그들 앞에서 철저히 채무자가 된 느낌이었다. 말로만 듣던 '번아웃'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한편, 우리 병원에서는 자주 회의를 했다. 근데 이제 통계라는 무시무시한 자료를 곁들인. 총 예약 환자 수와 실제 내원 수, 초진 대비 재진 횟수, 총 매출액, 비급여 매출액, 환수 증감률 등등. 숫자로 뜯어보자면 나는 아주 어중간한 인간이었다. 열심히 한다고는 하는데 막상 예약 환자는 없는. 환자를 많이 봐도 실제 매출은 중간 어디쯤에서 맴도는. 가끔 심각한 컴플레인도 받고 가끔 커다란 선물도 받고 나를 싫어하는 환자도 나만 좋아하는 환자도 있는 아주 평범한 의사.
하지만 여기는 평범한 인간은 살아남을 수 없는 무한 경쟁의 사회. 사회는 더 나아가 플러스 알파를 요구했다. 단순히 치료 잘하는 의사 말고, 확실하게 환자들을 사로잡고 끌고 갈 수 있는 의사. 그러면서 더욱 많이, 더욱 빠르게 환자를 볼 수 있는 의사. <많은 예약 수―더 많은 환자 수―크고 높은 매출>의 선순환 구조를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의사. 한 마디로 영업부터 잘하고 그다음 치료도 잘하는 의사. (그게 가능한 거야?) 어쨌든 우리 병원의 정언명령, '무조건 예약, 예약만이 살길이다' 앞에서 나는 종종 슬퍼졌다. 나는 치료 계획이며 진료 퀄리티며 하는 것들을 챙기기도 어려운데. 환자를 꼬시는 게 먼저라니. 문득 드라마 <라이프>의 구승효 사장(조승우)의 대사가 떠올랐다.
영업이 부끄럽습니까? 뭐가요? 왜? 댁들한테 영업직들은 죄다 불가촉천민인가? 그 사람들도 뼈 빠지게 일해서 자기 가족들 먹여 살리는 사람들입니다. 의사는 밥 안 먹고 똥 안 싸는 신선이라도 되나 보죠? 돈 안 받고 일할 거면 영업 안 해도 됩니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말아요.
그러던 와중, 코로나 시국으로 매출이 급감하자 병원에선 비상 계엄령을 선포했다. 출근 일자를 하루 줄이는 대신 급여도 그만큼 삭감한 것. 환수를 다시 올리지 않으면, 매출을 다시 일으키지 않으면 급여는 정상화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즈음 내 실적표는 아주 바닥이었다.
그래. 먹고사는 게 먼저지. 나는 계속 되뇌었다. 나는 취미로 이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아마추어가 아니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두 개였다. 더 비굴해지거나 혹은 뻔뻔해지거나. 환자들에게 '내일 꼭 또 오세요' 하고 읍소하거나 내일 안 오면 더 아플 거라고 윽박지르거나 하는 일들 말이다. 나는 둘 다 잘 해내지 못했다. 깊은 회의감에 에너지는 점점 바닥났고 환자 수는 더욱 감소했다.
줄어든 환자 수 때문에 (원장님과) 종종 면담을 했다. 나도 궁금했다. 뭐가 문제지. 내가 환자들에게 도대체 뭘 잘못하고 있는 거지. 자아비판을 하듯 내 프로세스를 처음부터 다시 복기하곤 했다. 그러면서 나는 스스로를 못살게 굴었다. (그건 오래된 내 특기다) 나는 아무래도 비호감 의사인가 봐, 나는 개업하면 망할 거야. 망할 거야. 망할 거야.
상황은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진료를 하는 건 에너지를 나누어주는 일인데 내겐 나눠줄 에너지가 점점 줄어들었다. 환자가 늘면 힘에 부쳐서 문제, 환자가 줄면 자존감이 떨어져서 문제였다. 진료실에서 멍을 때리며 생각했다. 우산장수/짚신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나는 1년을 채우고 도망치듯 퇴사하기로 했다.
눈물 흘릴 뻔.. 감사합니다 환자분들
기다리고 기다리던 퇴사 날, 그동안 정들었던 환자분들이 선물을 하나둘씩 챙겨 주셨다. 음료며 바나나며 빵이며, 직접 만든 쿠키나 초콜릿 같은 것들까지. 병원을 옮기면 꼭 알려달라고 연락처를 주고 가시는 분들도 있었고 저렇게 정성스러운 편지를 전해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진심을 건네주시는 분들은 오랫동안 병원을 다닌 분들, 그러니까 그동안 썩 좋아지지는 않은 분들이다. 나는 의아했다. 정작 치료적으로 도움을 드린 게 하나도 없는데. 만성적인 질환으로 고생하는 분들이라 그저 얘기를 들어드린 게 다인데. 나는 의사로서 직무유기를 한 것이 아닌가. 능력 부족으로 그들에게 오히려 미안해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내게 왜 고마워하지.
지난 일 년 간의 통계자료를 돌아보면서 '나는 왜 실패했는가'를 곰곰이 돌이켜봤다. (물론 실력과 내공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직업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인데 괜한 사명감을 가져서 그런 건가. 어쭙잖은 소명의식에 젖어서 그런 건가. 남들이 다 그러는 것처럼 스스로를 잘 포장해서 파는 데에 집중해야 했던 걸까. 조금 더 힘을 빼고 적당히 타협하고 자본주의에 순응해야 했던 걸까. 그래, 아무래도 그게 맞는 것 같아, 하고 돌아서려는 찰나 저렇게 진심을 쥐어주는 환자분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어떤 의사가 되어야 하지.
퇴사 날은 일 년을 마쳤다는 후련함과 그래도 잘못 살진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이 뒤섞여 여운이 오래 남았다. 퇴근 후에도 부듯해지는 가슴을 달랠 길이 없어 한강을 달렸다. 달리면서는 어떤 확신이 들었다. 그러니까 진심은 결코 흩어지지 않는구나, 결국 어딘가에 가닿기 마련이구나, 저들끼리 보들보들 뭉쳐져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는 것이구나, 하는. 달리기를 마치고도 그 사실에 오래도록 심장이 울렁댔다. 이 풋풋한 느낌을 오래도록 잊지 말아야 할 텐데. 그동안 제게 몸을 맡겨주신 환자분들 모두 감사했습니다. 어디서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