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누군가를 저격하거나, 비난할 의도로 쓰이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도파민을 원하는 분들은 쇼츠를 보세요.
고백하자면 나는 비혼주의를 외치던 인간이었다.
친구들이 하나 둘 유부의 길로 떠나가는 와중에도,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혹은 최대한 늦게 할 것 같은 인물)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런 내가 결혼을 결심했(었)다. 소식을 알리는 족족 친구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더랬다.
사실 나의 비혼주의는 '완벽주의'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비혼주의는 완벽주의 때문이었다. 다들 알겠지만, '완벽주의자'란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이 아니다. 무언가 해야 하는데, 잘 못해낼 거 같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는 겁쟁이들을 말한다. 내가 딱 그랬다. 아무래도 결혼을 언젠가는 하기는 해야 할 거 같은데, 결혼이라는 놈이 도대체 정체가 뭔지 알 수는 없고, 결혼을 말리는 유부들의 썰만 도시괴담처럼 돌아다니고... 완벽한 결혼, 최선의 선택을 하지 못할까 두려워 ‘아예 안 할래!’ 선언했던 거다.
그러던 와중, 그를 만났다.
처음부터 서로에게 끌렸다. 그와 나는 공통점이 많았고 가치관도 비슷했다. 다른 사람은 더 만나볼 필요도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부터 결혼을 전제로 만남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나는 지지고 볶고 만났다 헤어지는 고통스러운 일은 이제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았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겠다, 평생 함께할 반쪽을 찾아 안정감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그 생각부터가 문제였단 걸.
결혼 준비는 빠르게 진행됐다.
프러포즈, 결혼식 준비, 신혼집 마련까지. 거침없이 진행됐다. 그와 나는 젊고 패기 넘쳤다. 누구보다 잘 살 거란 확신이 있었다. 연애 기간 내내 싸우지 않고 서로 배려하며 행복하게 잘 만나왔으니, 결혼해서도 행복할 일만 있으리라 믿었다.
(누구나 그렇듯) 갈등은 생겼다.
평생 둘만 있을 거 같던 무대에, 가족이 등장하고 돈이 끼어들며 갈등이 생겨났다. 각자가 그간 지켜온 소중한 가치들이 격렬하게 부딪혔다. 거기에 더해서 '평생'이라는 당위가 서로의 입장을 더욱 공고히 했다. 평생 살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지켜야 해. '합리성'이라는 기준은 각자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나도 이렇게 하는데, 너도 저렇게 하는 편이 합리적인 거 아냐?
갈등은 곧 극에 달했다.
그와 나 둘 모두, 상대가 자기 입장을 헤아려주고 한 발자국 먼저 다가와주길 원했다. 그러면서 한 발자국 다가가면 두 발자국 더 오라고 요구할까 봐 미리 두려워했다. 결국 둘 다 손해 보기 싫어서 계산하고 따지고 있었던 거다. 그러면서 상대가 처음의 언약을 잊은 것인지, 아니면 이제야 가면을 벗고 본모습을 드러낸 것인지 둘 다 헷갈려했다.
그렇게 빠르게 끝이 났다.
이야기를 거듭할수록 사건은 악화됐다. 의견 차이는 점점 더 멀어졌다. 멀어진 틈에서 억울함이 자라났다. ‘아, 저 사람이랑 살면 내가 고생깨나 하겠구나.’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결국 빠르게 끝이 났다. 드레스 투어로부터 파혼까지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결혼이 진전된 속도만큼 마무리도 신속했다. 처음의 요란한 결심이 우스워질 만큼, 참 변덕 같은 결말이었다.
신기하게도 슬프지는 않았다.
눈물도 안 났다.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게, 단숨에 미련이 달아났다. 오히려 상쾌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무언가 불현듯, 이렇게 넘기면 안 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이런 일을 겪게 된 이유가 있을 거다. 이 사건을 이해하지 못하면 나에게 다음은 없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게 사건 수습보다 중요한 건 벌어진 일들을 온전히 소화해 내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단순히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변 이들은 나에게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위로하곤 했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다음번에 더 좋은 사람을 만나면 되지 뭐.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오답 노트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도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내 운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운이 좋다고 느낀다) 이 글은 내가 그동안의 탐구 과정을 통해 찾은 <파혼의 진짜 원인>에 대한 시리즈물이다. 어때,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굳이 이런 치부를 들추는 이유가 뭐냐고?
우선, 나는 파혼을 치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남녀가 헤어진 거지 뭐.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번 일을 소화해 내며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일들을 오래 응시했다. 어떠한 방어 기제도, 어떠한 내적 검열도 없이. 아주 오랜 시간을 거슬러 가기도 했고, 아주 깊숙한 내면을 더듬어 찾기도 했다. 거기엔 나를 가두고 있던 생각의 울타리, 무의식과 감정의 원천, 그때 그렇게 옹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같은 것들이 웅크리고 숨어 있었다. 물론 꽤나 고통스러웠지만, 아직도 완전하게 그걸 삶에 적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전과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걸 느낀다.
나는 이제야 나의 편협함과 이기심과 비겁함을 안다. 지금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나 자신까지도) 보고 있다. 여태 어찌 그리도 비좁게 살아왔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이건 의심의 여지없이 내 에고의 껍질을 깨뜨려 준 그 덕분이다.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참고로 이 글들은 언젠가 반드시 지워질 것이다. 나도 준비가 된다면 다시(?) 결혼을 하고 싶은데, 이런 찌질한 글이 세상에 있는 한 나와 선뜻 미래를 함께하고자 하는 정신 나간 이는 없을 것이므로. 하지만 그런 날이 언제 올지도 모르고, 그런 이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니, 그때까지는 의연한 마음으로 쓰겠다. 아, 역시 글은 괴로워야 잘 써진다.
소식을 알리는 족족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걱정을 한다. 전화해. 연락해. 술 마시자. 자살하지 마(?) 워워. 걱정하지 마시라. 나는 실의에 빠지지 않고 (그렇다고 술독에 빠지지도 않고) 나의 삶을 잘 살고 있다. 오히려 좋은 일이 더 많다. 좋은 일이 뭐냐고? 시리즈를 다 읽으면 알게 된다. 커밍 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