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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낫배드파더 Aug 02. 2022

아이가 깨물렸을 때 대처하는 자세

아내에게서 오후에 갑자기 연락이 왔다.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또 물렸다고 했다. 이번에도 그 아이였다. 저번에는 옆구리를 물었는데, 이번에는 등이었다. 처음에는 입질을 조금 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어린이집에서는 "살짝 피멍이 들었다"라고 했는데, 가서 보니 '살짝'이 아니었다.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길에 심장이 요동쳤다. 3분 남짓한 거리인데 숨이 가빠졌다. 머리로 '흥분하면 안 된다'라고 생각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물었단 말이야?'하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를 조기 등원시킬 때마다 눈을 마주치며 손인사를 했던 바로 그 아이였다. 쌍꺼풀 없는 눈에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 꼬마 여우처럼 귀엽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아이였다. 새까만 눈동자가 가득 찬 눈으로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게 인상적이었다. 내가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하면 마주 손을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아이들처럼 깔깔거리며 웃거나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담임교사는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아이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천진난만한 표정이었다. 윗옷을 들어 등을 살펴보니 물린 곳에 피멍울이 있었다. 이빨이 살갗에 닿은 곳은 피부가 뜯겨 피가 맺혀 있었다. 작고 앙증맞은 입으로 한 일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빨 자국이 선명해 독하게도 물었구나 싶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 문 게 그 정도였다.


머리에서 '삐'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말없이 잠시 서 있었다. 어린이집 정문 유리창 너머로 그 아이가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눈빛이 고요했다. 어린이집 문을 박차고 들어가 그 아이에게 냅다 소리를 지르는 상상을 했다. 교사는 사고 경위를 설명하고 사과한 뒤 재발 방지 약속을 했다. 그는 할 말을 다한 뒤 나의 입술을 쳐다봤다.


"A(그 아이)가 우리 아이 말고 다른 아이도 문 적이 있나요?"라고 물었다. 최대한 감정을 지우려 했다. 스스로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졌다. 교사는 "아이들끼리 부대끼면서 종종 그러는 경우가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다시 "A가 우리 아이만 무나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교사는 난감해했다. 그리고는 "꼭 누가 누구를 문다기보다는 이 무렵의 아이들이 이러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라고 말했다.


더 이상 질문을 하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는 질문이 아니라 추궁이 되니까. 아이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었다. 지금껏 겪은 아이의 담임교사는 다정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직업의식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혹시나 아이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괜히 삐딱선을 탔다가 아이가 미움을 사지 않을까, 어린이집 교사들 사이에서 우리 아이와 나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학부모와 교사는 미묘하게 '갑(甲)'과 '을(乙)'을 오가는 관계"라는 주위 선배 엄마 아빠들의 말을 흘려 들었는데, 이런 말이었구나 싶었다. 


다음 질문은 톤을 더 낮췄다. 혹시나 목소리에 날이 섰을까 싶어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려 애썼다.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를 물지는 않나요?" 그랬다면 이미 연락이 왔을 테니 실은 하나마나한 소리였다. '저는 합리적이고 대화 가능한 학부모입니다'라는 속뜻을 전하려 한 질문이었다. 울기 직전이던 교사의 표정은 내 질문에 조금 풀렸다. 그는 손사래를 치면서 "아니에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아이가 혹시 A한테 해코지를 하려거나 똑같이 물려고 하지는 않았나요?"라고 마지막 질문을 했다. 교사는 "아뇨. 물리고 난 다음 울다가 달래주니까 금방 그쳤어요. 그리고는 다시 A랑 같이 놀았어요"라고 답했다. 이 말을 듣고 안도했는데, 뒷맛이 조금 씁쓸했다. 당연히 다른 사람 해코지 못하는 부모 성격을 닮았겠지.




아이를 집에 데려와 상처 부위에 약을 발라줬다. 소독 성분이 있는 약을 바르자 아이가 "잉"하며 신음소리를 냈다. 타박상이 아니었다. "살짝 피멍이 들었어요"하는 교사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피부 재생 성분이 있는 연고를 꺼내 환부에 발랐다. 아이는 따가운지 자꾸만 등에 손을 갖다 댔다. 저녁 식사를 차리면서 아이가 잘 놀고 있나 보는데 자꾸 등에 손을 대는 장면이 눈에 밟혔다.


A의 어머니는 아내에게 연락해 미안하다고 했다. 사고 다음 날에는 영양제, 연고, 비타민, 초콜릿 같은 것들을 보내왔다. 그가 얼마나 난감했을지, 상황이 바뀌었다면 나 또한 얼마나 진땀을 흘렸을지 헤아려졌다. 그러면서도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A의 어머니는 아무 잘못이 없었고, A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어찌할 도리 없이 감정이 다스려지지 않았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애를 어떻게 가르쳤길래 이 모양인가요?'라고 소리치는 모습을 상상했다. 아, 그래도 그건 아니지. 그런 어른이 되진 말아야지. 그런데 이 슬픔은 도대체 누가 삭여 줄 것인가.




A가 아이를 처음 깨물었던 날, 공교롭게도 A모녀와 동네 놀이터에서 마주친 일이 있었다. 놀이터가 무슨 외나무다리도 아닐 텐데. A양과 그 어머니는 마침 나와 아이가 놀고 있는 놀이터로 왔다. A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어머니에게 훈계를 들으며 놀이터로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었다. "엄마가 너 이빨로 깨물면 좋겠어?"라는 목소리가 귀에 날아와 꽂혔다. 50m는 넘게 떨어져 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들렸나 모르겠다. 


A의 어머니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몰랐다. 그러나 서로의 아이 얼굴은 알았다. 나는 A의 얼굴을 매일 아침 봐서 잘 알고 있었다. A의 어머니는 가끔씩이지만 아이의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서로를 먼저 알아본 건 아이들이었다. 나의 착하고 순하고 눈치 없는 아이는 A를 보더니 반가웠는지 곧장 뛰어가려고 했다. 옆구리를 물린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내 새끼지만 답답했다.


언제 말을 붙여야 하나 난감해하면서 눈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A의 어머니가 아이 방향을 보더니 흠칫하는 게 느껴졌다. 마치 만화 속 말풍선에서 '흠칫'하는 글자가 떠오르는 것처럼. 그녀는 살짝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그 미세한 움직임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일부러 그랬는지 아니면 헷갈렸는지 모르겠지만 A의 어머니는 금방 눈을 다른 데로 돌렸다.


A모녀와 거리는 10m 정도였다. A는 그네를 타면서 어머니에게 계속 훈계를 듣고 있었다. 아이는 말릴 새도 없이 A에게 달려갔다. 어색한 표정과 목소리, 동작으로 "A야 안녕? 안녕하세요 어머니"하고 인사했다. A의 어머니는 "아, OO구나. 많이 커서 못 알아봤네"라고 로봇처럼 말했다. 그리고는 "저희 애가 OO를 물어서..."라고 말을 흐렸다.


속으로 '쿨한 표정, 쿨한 표정'하고 외쳤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아, 괜찮아요. 애들끼리 그럴 수도 있죠. 저희 애도 집에서 가끔씩 저 깨물고 그래요"라고 말했다. '아, 멍청해 보이려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아이들은 자기 부모들이 어색하기 그지없는 상황에 처해 쩔쩔 매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서로 쳐다보면서 반가워했다.




아이가 A에게 두 번째 물린 이후로 동네에서 A의 어머니를 또 마주친 적이 있다. 나는 멀리서 고개 숙여 인사하며 사람 좋은 미소를 보냈다. A의 어머니는 인사를 꾸벅 한 다음 멀리 사라져 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화를 낼 수도 없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할 수도 없고. 죄 지은 것도 없는데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 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아이의 등에는 물린 흔적이 흉터로 남았다. 아내는 "사내 아이고, 그리고 등이라서 안 보이니까"라고 말했는데, 다시 피가 정수리로 쏠리는 것 같았다. 나는 "이 흉터 어떻게 할 거냐고 가서 따지자. 우리 애 어떻게 할 거냐고. 책임지라고 하자"라고 농담을 섞어 소리쳤다. 아내는 피식 웃더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황당해했다. 아이를 목욕시킬 때면 어쩔 수 없이 등에 남은 그 흉터를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꼬마 여우 같은 그 아이의 새카만 눈망울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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