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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낫배드파더 May 10. 2022

아이 낳으면 행복한가요?

“아이 낳으면 행복해지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맥줏집 테이블에 함께 앉은 사람 중 자녀가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내 입술에 시선이 집중됐다. 아들의 출생 이후 얼마나 행복해졌는지 대차대조표를 머릿속에서 만들어 보기 전 가수 이소라의 노래 곡조와 함께 가사 한 줄기가 떠올랐다.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왜 그랬을까. 나도 모르게 단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이를 낳는다는 건, 행복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야. 그건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행위야. 부모에게 자기를 좀 낳아 달라고 한 아이는 아무도 없어. 그저 부모들이 제멋대로 자기들이 좋아서 아이를 낳은 것뿐이야.”   

  

“아이 낳으면 행복하지. 얼마나 예쁜 줄 알아? 그 보드라운 피부 하며, 까르르 웃는 소리를 들으면 피로가 싹 가셔.”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런 면도 있으니까 거짓말도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게 다른 사람들로써도 듣기 좋았을 것이다. 분위기가 갑자기 깨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하지만 나는 계속 찬물을 부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행복한 일보다 불행하다고 느껴지는 때가 더 많아. 사는 게 다 그렇잖아. 대다수는 인생의 대부분 시간을 불행하게 보내다가 결국 마지막에는 죽으니까, 인생은 결국 불행한 거잖아. 그래서 난 행복에 집착하지 않으려고 해. 선택과 책임, 그게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야. 그러다 행복한 때도 있고, 행복하지 않은 때도 있고 그런 거지.”      


아내가 육아휴직을 끝내고 직장으로 복귀한 이후, 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부쩍 줄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 앞에서 나는 마치 사회 부적응자처럼 거친 말을 쏟아냈다. 평소 말하기보다 듣기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날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행복과 무관하게 아이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로 한 거야. 잘하든 못하든 관계없이 말이야.”라고 했다.      


폭포처럼 쏟아내는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가 한 명이 “생활에서 우러난, 진솔하고 솔직한 얘기를 해줘서 고맙다. 이런 얘기를 어디 가서 듣겠냐”라고 말해줬다. 다른 사람은 “나도 부모님한테 ‘내가 언제 낳아달라고 했냐’고 소리 지른 적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들의 따뜻한 말이 고마웠다. 겉치레가 아니라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런 위로가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앞에서 말한 노래는 이소라 7집에 있는 ‘Track 9’이다. 이 노래의 후반부에는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강하게 하고 평범한 불행 속에 살게 해’라는 가사가 나온다. 이소라의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원래 음울한 인간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가사를 곱씹으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아이를 키우는 시간 중 많은 순간은 나를 지우지 않으면 안 되는 고통의 연속이다. 나의 시간과 몸과 마음을 갈아서 아이에게 먹이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있다. 이게 불행이기만 할까. 꼭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스스로를 속이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매일 겪는 소소한 불행의 연속에서 ‘삶의 감각’을 되찾는다. ‘아, 내가 무엇인가를 선택했고 그에 따른 책임을 어마어마하게 지고 있구나’ 하고 말이다. 나 자신을 잊더라도 아이는 잊어선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아이는 금방 위태로워지니까. 아이는 연약하고 섬세해서 아직 평범한 불행에 단련돼 있지 않다. 그러니 나는 그가 조만간 겪게 될 소소한 불행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잘 돌봐줄 책임이 있다.     


밤늦게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몇 개월 치 말이 꾹꾹 밀려 있었나 보다’하고 생각했다. 지하철 문 유리에 반사된 얼굴에서 지친 내 아버지의 표정이 슬쩍 비쳤다. 대학 시절 늦은 사춘기가 찾아와서 “내가 언제 낳아달라고 했어요?”라고 뺨 맞을 소리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부모님은 내게 “미안하다. 미안하다”라고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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