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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an 16. 2019

카페가 있다면 어디에서든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이든, 혼자 하는 여행이든, 한 번은 꼭 혼자 카페에 가게 된다. 우습게도 이유는 정반대다. 다른 사람과 함께 여행을 할 때는 혼자가 되고 싶어 카페를 찾고, 혼자 여행을 할 때는 누군가 이야기하고 싶어서 카페에 들어선다.

  그 상반된 이유를 모두 포용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카페의 매력이 아닐까.

  카페는 광장이었다. 보통 사람들의 광장. 그것은 귀족들의 살롱과는 정반대의 지점에 있었다. 철학자들과 예술가들은 삼삼오오 모여 사회와 인생,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투덜거림과 잡담도 함께였을 거다. 

잡담과 토론은 결코 경계선이 확실하게 나누어진, 그런 것이 아니니깐. 일상이 뒤섞여야 예술이 태어나게 마련이다. 동시에 카페는 은밀한 다락방이기도 했다. 카페테라스에 자리 잡고 앉아 혼자 차를 마시거나 글을 쓰는 동안 한 평의 공간은 오직 자신만의 것이 되었다. 

  오죽하면 장 폴 사르트르는 카페를 자신의 집이라고 말하기까지 했을까. 

  혼자 카페 ‛레 되 마고’를 찾아간 날은 비가 내렸다. 

  헤밍웨이가 ‘커피 한잔하고 싶은 유혹을 피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카페’라고 평했던 곳이다. 

  한동안 내게, 파리의 카페란 어니스트 헤밍웨이였다. 








 잘 팔리는 책을 쓸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속물주의 작가가 되는 것을 경계했던 작가. 돈이 없어 공원에 앉아 시간을 때우다가 원고료를 받아 아내와 레스토랑에 갈 수 있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줄 알았던 사람. 헤밍웨이의 에세이집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처음 읽었을 때는 놀랐었다. 날카롭고 사실적인 그의 소설과는 느낌이 무척이나 달랐던 것이다.  

  헤밍웨이가 파리에 머물었던 건 1921년부터 1926년까지였다. 19세기 말, 문화와 예술의 중흥기인 벨 에포크(좋은 시대)가 끝나가는 시기였다. 파리에 모여든 예술가들은, 벨 에포크가 꽃피운 문화의 수혜자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전쟁의 상실감과 허무함을 겪어내야 했던 로스트 제너레이션(길 잃은 세대)이기도 했다.

  헤밍웨이의 에세이는 그랬다. 따듯하면서도 어딘가 서글펐다.  

  처음 헤밍웨이의 에세이를 읽었을 때, 나는 그 서글픔은 다시 찾아오지 못할 세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라 여겼다. 내가 파리에 가도 그곳은 헤밍웨이의 글 속에 나오는 파리가 아닐 터였다. 그것이 슬픈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 다시 헤밍웨이의 에세이를 읽었을 때는 생각이 바뀌었다. 그것은 그리움이 아니었다. 오히려 동질감이었다. 어느 시대든 낭만과 혼돈 그 중간쯤을 헤매고 있는 사람의 뿌리를 톡 톡 건드리는 힘이 그 글에는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파리에 가면, 헤밍웨이의 글에 나온 카페에 들러보고 싶었다.

  레 뒤 마고에 들어서면 벽에 매달린 중국 인형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근엄하게 카페 안을 내려다보고 있는 목재 인형은 레 뒤 마고의 상징이기도 하다. 카페의 머그잔과 냅킨에도 그려져 있고, 초콜릿 포장지에도 이 인형 둘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잠깐 동안 중국 인형을 그렸다. 툭. 내 자리 모서리에 무언가 놓였다.

  초콜릿이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 한 분이 내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내가 그림을 그리던 수첩을 가리키며 웃어 보이더니 자리를 떠났다. 

  그날 내내 찐득하게 달콤한 초콜릿의 냄새가, 비에 젖은 파리의 골목을 따라다니며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헤밍웨이의 말대로였다. 파리는 그 자체로 축제였다.  

  움직이는 축제처럼, 남은 일생 어디를 가든 곁에 머물러줄 것만 같았다. 

  길을 잃어도 그곳이 축제라면. 그렇다면 어디서든 춤출 수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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