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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an 23. 2019

예민해도 괜찮아






  비는 자디잘게 계속해서 내렸다.  

  우산을 치는 빗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우산을 함께 쓰고 있는 사람이 말을 걸 때마다, 나는 빗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은 척을 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애당초, 어깨가 닿는 것이 불편한 상대와 한 우산을 쓸 일이 없었을 거다.  

  체스키 크룸로프로 가는 차를 셰어 했다. 네 명의 일행 중 검은 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블랙맨, 그만이 나와 잘 맞지 않았다. 블랙맨이 내게 던진 몇 마디 농담은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타인의 습격이 만들어낸 불편함을 참아내야 할 의무는 내게 없다. 블랙맨은 내가 드러낸 불편함을 예민함으로 받아넘겼다.  

  설마 체스키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릴 줄은, 그와 우산을 함께 써야 할 줄은 몰랐다. 차에 준비된 우산은 두 개뿐이었다. 일행은 둘로 나뉘었다. 왜 블랙맨이 나와 가는 방향이 같은 걸까. 차라리 비를 맞고 가겠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우산을 빌려준 사람의 호의가 있는데. 언제나처럼 수많은 ‘그래도’가 내 입을 막았다.  

  어색한 침묵 속에 체스키 크룸로프의 골목길을 걷고 걸었다. 검은 문에 빨간 판자가 덧대어진 카페의 입구가 나타났다. 나는 우산에서 뛰어나갔다. 꾸벅, 영혼 없는 인사를 건넸다. 

  웬 걸. 블랙맨은 우산을 접었다. 내 옆으로 쑥 들어와 섰다.

  “내가 우산 가져가면 비 맞고 돌아다녀야 되는 거 알죠? 커피 한 잔 사요. 한 몸처럼 다녀줄 테니깐.”

  불편함을 참고 블랙맨과 함께 차를 마실 것인가, 아니면 ‘예민한 못된 년’이 될 것인가.  








  그러니깐 그곳은, 에곤 실레의 카페였다. 

  오스트리아의 화가. 어머니의 고향을 찾아 체스키 크룸로프에 잠시 정착했던 떠돌이. 에곤 실레를 다룬 영화나 책에서 그는 ‘여성 편력이 있는 괴짜’로 묘사된다. 그가 세상에 받아들여지기 위해 타협하고 견뎠다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그렇지만 내가 본 에곤 실레는 섬세했다. 그의 작품이 그랬다.

  그런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다. 

  타인이 아무렇지 않게 던진 한 마디에도 뺨 한쪽이 계속 긁혀 있는 듯 아픔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에곤 실레는 수많은 자화상을 남겼는데, 조롱하듯 뒤틀린 웃음을 짓는 표정들이 많다. 에곤 실레는 수많은 자화상에 스스로에 대한 조롱과 이상을 욱여넣어가며 견뎠던 게 아닐까. 

  그의 자화상을 볼 때마다 그의 입가를 한참이나 바라보게 되었다. 

  미술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다. 누구든, 자기 자신의 상황을 투영해 그것을 소비한다. 

  그러니깐 에곤 실레의 초상화를 보고 있었던 때에, 나는 참고 견디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참지 않는 법을 알아가는 것. 그것이 에곤 실레의 카페를 찾아가 보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 카페에서조차 참을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블랙맨과 함께 카페로 내려갔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 내 맞은편에 앉았다. 커피를 주문했고, 나는 곧장 계산을 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블랙맨과 커피를 남겨두고 카페를 나왔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다.

  참느니, 그냥 비를 맞을 때가 나을 때도 있는 거였다.

  다시 카페로 돌아왔을 때 블랙맨은 없었다. 따뜻한 커피와 다디단 애플파이. 아늑한 카우치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제야 그곳은, 체스키 크룸로프는 온전한 나의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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